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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방

[스크랩] 2004. 9.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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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rint hotel」2004. 9. 8.  21:55  「Novotel社」에서 운영하는 호텔 도착, 호텔 앞은 드골 공항으로 쉴새없이 비행기들이 이착륙. 명실공히 국제공항으로서의 위용을 과시함. 여장을 풀기 전 하차 후 단체 사진 촬영. 지금 보니 참으로 그리운 얼굴들이네요.

 

 룸메이트인 외고 국어 선생님과 함께 숙소 배정하는 틈을 이용하여 호텔 로비에서...

 

셍 프랑슈아 학교  2.5세부터 초등5학년생까지 가르치는 학교.  47세인 여교장「마담 폴네」는 이 학교 교육목표가「상상적인 것 가르치기」라고 하였다.

 

아이들의 작품

 

생각보다 학급 구성원 수가 많았으며 계단은 높고 가파르며 복도와 교실은 미로처럼 얽혀있어 교육환경 시설 측면에서는 어린아이들이 생활하기에는 많은 위험이 내포되어 있는 구조였다. 마담폴네 교장의 친절한 안내가 인상 깊었다. 47세에 교장 경력 20여년이 되었단다. 우리와는 달리 폴네교장은 시작부터 교사가 아닌 관리직을 선택하여 부임과 동시에 교장으로 출발하였다.

 

천사의 모습을 담고 있는 천진난만한 아이들 

 

식당 규모는 작았으나 청소와 식사 준비가 가지런히 정리가 잘 되어 있었다.

 

점심 식사를 위해 들어간 프랑스식 식당. 대한민국 짜짜짝짝짝하면서 박수를 치고 환영을 해 주는 점원을 보면서 한국 월드컵 4강 진출의 위업을 실감할 수 있었다. 달팽이 요리는 짜고 생각보다 그렇게 취향에 맞지 않았다. 

 

물랑루즈  프랑스 파리 몽마르트르의 번화가 클리시거리에 있는 댄스홀. 1889년 개장하였다.프랑스어로 ‘붉은 풍차(Moulin Rouge)’라는 뜻으로 건물 옥상의 크고 붉은 네온사인 풍차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몽마르트를 보고 난 후 개선문을 향해 가는 차량안에서 찍음

 

성심성당(Basilique du Sacre-Coeur 사크레 쾨르 대성당) 몽마르트르 언덕 위에 서있는 로만 비잔틴 양식의 성당  19세기 말 보불 쟁 후 시민들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건립된 것이다. 빨간색 페인트 자국은 가이드의 설명으로는 순교자들의 피를 상징한다고 하였으나 어떤 이는 작업 인부가 페인트를 쏟아 생긴 자국이며 현재는 지워졌다고 함. 

 

몽마르트르 파리 시내에서 가장 높은 해발고도 129m의 언덕을 이룬다.  ‘순교자의 언덕(Mont des Martyrs)’에서 유래하였다고도 한다. 언덕에 올라 서면 파리 시내 전경이 마치 파노라마 처럼 한눈에 들어온다.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들의 성화에 발길을 옮기기가 어려울 지경이다. 마음 약한 사람은 거절하지 못해 대충 그려 주는 초상화에 돈을 지불해야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몽마르트 그 옛날피카소를 비롯한 여러 화가들이 사랑 한 언덕. 무명화가들의 강요를 정중히 거절한 후 인증샷 

 

몽마르트 언덕에서 바라본  파리 시내 전경

 

개선문 / 나폴레옹 1세가 군대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하여 1806년에 세운 파리의 에투알 개선문. 파리 개선문은 나폴레옹이 로마 곳곳에 세워진 개선문을 보고 더 크고 웅장한 규모로 만들었다고 함

 

샹젤리제거리 / 콩코르드 광장에서 북서쪽으로 향해 뻗어 있다. 개선문으로 유명한 드골 광장에 이르는 길은

1,880m의 직선도로로서, 도로의 양쪽에는 마로니에, 플라타너스 등의 가로수가 울창하다. 특히 플라타너스는 공기정

 능력이 우수하여 가로수로 많이 정비되어 있다.

 

샹젤리제거리 / 파리는 눈에 보이는 사물 모두 역사로 이어져 있다.

 

 

멋진 사나이와 함께.  당신이 있어 푸근했습니다.

 

거리의 파라솔 그늘 밑에서 잠시 피로를 풀며

 

 오벨리스크/ 콩코드 광장 고대 이집트에서 태양 숭배의 상징으로 세웠던 기념비. 네모진 거대한 돌기둥

으로, 위쪽으로 갈수록 가늘어 지고 꼭대기는 피라미드 모양으로 되어 있으며, 기둥면에는 상형 문자로 국왕의 공적이

나 기타 도안이 그려져 있다. 

파리 중심부에 있는 콩코드 광장. 큰 규모를 자랑하며 프랑스 혁명 당시 이곳에서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 등

1,000여 명이 처형되었다. 당시에는 ‘혁명광장’이라고 불리었으나, 후에 ‘화합’을 뜻하는 ‘콩코드’로 개칭되었다.

 

 

오페라하우스 거리/ 차량 뒷자석으로 자리를 옮겨 촬영 윤정희씨의 부군인 피아니스트 백건우씨가 공연했던 곳. 이 거리의 특성을 살리기 위하여 신호등과 가로수 등 주변을 가리는 시설을 설치하지 않음

 

 

오페라하우스거리/ 조금씩 멀어져 갑니다.

 

오페라하우스거리

 

루브르박물관/  루브르 박물관(Le musée du Louvre)은 프랑스 파리의 중심가인 리볼리 가에 있는 국립 박물관이다.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궁전을 미술관 건물로 사용하고 있으며, 소장된 미술품의 규모는 세계 최대이다.

 

 

모나리자 / 관광객이 모나리자 앞에 너무 많이 움집하여 사진을 잘 찍을 수가 없네요. 모나리자의 초상은 눈썹이 없는 것으로 유명한데, 이에 대해서는 당시 넓은 이마가 미인의 전형으로 여겨져, 여성들 사이에 눈썹을 뽑아버리는 일이 유행하였기 때문이라는 설, 미완성작이라는 설, 원래 눈썹이 그려졌으나 복원 과정에서 지워졌다는 설 등이 있다.

 

‘모나리자의 미소’보는 사람에게 신비성을 느끼게 하여 많은 풍설과 함께 ‘모나리자의 수수께끼’로서 오늘날도 적지 않은 문학적 관심거리이다. 요컨대 이 그림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인간에 대한 오묘한 감정과 관능의 표현이라 볼 수 있다.

 

모나리자의 모나는 이탈리아어로 유부녀에 대한 경칭, 리자는 피렌체의 부유한 상인 조콘다의 부인 이름이다. 조 콘다

부인은 G.포지의 조사를 통하여 피렌체의 안토니오 마리아 디 놀드 게라르디니의 딸임이 판명되었다. 본명은 리사 게

라르디니(LisaGherardini)이다.

 

라파엘로 /세례 요한과 함께있는 성모와 아기/  예수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와 함께 르네상스의 고전적 예술을 완성한 3대 천재 예술가의 한 사람이다. 당시 피렌체 화가들의 작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피라밋 구도로 배치되어 있다. 가운데 있는 성모는 아기예수를 그윽한 사랑의 눈빛으로 바라보나 아기예수는 세상을 구원해야 할 허공을 바라보고 있다. 십자가를 들고 있는 세례자 요한은 무릎을 꿇은 채 아기예수를 경배하고 있다.

 

비너스/ 밀로/ 가이드의 실수로 자칫 보지 못할 상황에 이르렀으나 교사 집단인 우리 일행을 위하여 멀어져 간 비너스 상을 정지하여 먼발치에서나마 간신히 볼 수 있게 해 주었다. 줌을 최대한 당겨 잡은 사진 한장이라 더욱 귀중하다.  높이 204cm. 프랑스 루브르미술관 소장. 멜로스의 아프로디테라고도 한다. 1820년 4월 8일 에게해에 산재하는 키클라데스제도의 하나인 밀로스섬에 있는 아프로디테 신전 근방에서 밭을 갈던 한 농부에 의해 발견되어 마침 이 섬에 정박 중이던 프랑스 해군이 이것을 입수하여 루이 18세에게 헌납되어 왕명으로 루브르미술관에 소장되었다.

 

보르게즈의 검투사 / 사람과 사람 또는 사람과 맹수를 싸우게 하여 시민들의 구경거리로 삼았을 때 칼을 가지고 싸운 사람들이다.

 

루브르/ 유리피라미드/ 루브르 박물관 앞의 유리 피라미드 조형물은 근대에 건설된 것으로 한 때 어울리지 않다

는 평이  많았으나 현재는 루브르를 대표하는 조형물이 되었다. 피라미드는 과거를 상징하고 투명유리를 통하여 루브

르로 향하면 과거 역사를 들여다 볼 수 있다는 의미의 상징적 조형물

 

에펠탑 / 프랑스 혁명 100주년인 1889년에 세운 높이 320.75m의 탑으로 구스타프 에펠이 만국박람회를 기념하여 세운 파리의 상징이다. 꼭대기 전망대에는 에펠탑에서 각 나라의 수도까지 거리가 표기 되어있는데 유독 우라나라는 서울, 부산 그리고 평양까지의 거리가 표시되어 있다.  

 

에펠탑/ 착공 당시 에펠의 설계 구상은 먼저 파리의 전통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았고 미학적, 건축적 측면에서 많은 반대를 받았지만 현재로서는 파리의 상징이 되었다. 전망대 너머 보이는 세느강과 역사의 도시 파리 시내

 

에펠탑/ 전망대에서 찍은 세느강과 파리 시내 전경

 

세느강 유람선/ 유람선을 타고 어두운밤 세느강을 유람하며 불켜진 에펠탑을 바라보자니 탄성이 절로 쏟아진다.

 

베르사유 궁전/ 프랑스의 베르사유에 있는 왕궁이다. 베르사유는 원래 파리의 시골 마을 중 하나였으나 이 궁전이 세워진 이후부터는 자치권을 가지는 파리 외곽의 도시가 되었다.  1682년 루이 14세는 파리에서 이 궁전으로 거처를 옮겨서, 1789년 왕가가 수도로 돌아갈 것을 강제될 때까지, 베르사유 궁정은 권력의 중심지였다.

 

베르사이유/ 왕비의 침실

 

베르사유/ 거울의 방/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내에 있는 방중에서 제일 유명한 방. 거울의 방은 절대주의 화려함의 극치라 할 수 있고 578개의 거울로 장식됨. 길이 75m 폭 10m, 높이 12m의 방을 모두 거울로 꾸몄으며 대형거울이 천정에 걸려 있는 샹들리에와 함께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

 

베르사유 정원/ 잘 다듬어진 나무와 꽃밭, 각종 정원, 분수들이 조화를 이룬 모습은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준다. 궁전 뒤로 펼쳐진 광활한 정원은 탄성이 절로 나올 정도로 그 규모가 장엄하다.  영나고 선셍님과 함께

 

 

 

 

노트르담 대성당 (프랑스 파리 성당)/ 중세 고딕 양식의 대성당 가운데 가장 유명한 대성당. 이 성당은 나폴레옹의 대관식(1804), 파리 해방을 감사하는 국민예배(1944. 8. 26) 등 여러 가지 역사적 사건의 무대가 되었다. 빅토르 위고의 작품 〈노트르담의 꼽추〉의 무대이기도 했다. 일정이 여의치 않아 방문 탐방은 하지 못하고 아쉽게도 차를 타고 가면서 촬영함

 

팡테옹 / 팡테옹은 국가를 빛낸 인물을 기리는 사당으로 프랑스의 위대한 시인·학자·정치가 등의 무덤이 있다. 퀴리부인, 볼테르, 루소, 에밀 졸라, 빅토르 위고, 알렉상드르 뒤마, 장 모네, 앙드레 말로, 미라보 등 역대 위인들이 이곳에 묻혀 있다.

 

소르본 대학/ 팡테옹 맞은편에 있고 파리1대학 앞에서 마음이 잘 통했던 현 경원중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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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박선상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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