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동네산

도덕암에서 도덕산까지

728x90

 

아무도 없는 산길, 홀로 낙엽을 밟으며

겨울이 성큼 다가온 도덕산의 빈 가을을 거닐다. 

 

 

■ 언제 : 2013. 11. 17.(일)

■ 어디로 : 도덕산

      위치 : 경북  칠곡군 동명면 구덕리  산20-5      ☏(054)976-8380 

■ 누구랑 : 나홀로

■ 산행코스 : 도덕암 - 1.4km - 도덕산 - 1.4km - 도덕암

     도덕산을 중심으로 좌측 시계방향으로 한 바퀴 휘둘러 내려옴

 

 

 

발자취


햇빛은 좋은데 바람이 많이 분다. 성주에 있는 독용산을 가려다 혼자 나서는 길이라 멀리 가기가 왠지 꺼림칙하다. 오늘 상태가 좋지 않은 옆지기는 함께하지 못하는 미안한 마음에 오전 한 나절은 집에서 쉬었다가 오후에 잠시 함지산이라도 다녀오자고 한다. 어찌할까 잠시 망설이다가 어차피 오늘 아내는 쉬는 것이 좋을 것이라 판단되어  가까운 칠곡 동명에 있는 도덕산이라도 다녀오마 하고 길을 나섰다.


도덕산은 우리 동네 함지산에서 산행하면 꽤나 먼 거리에 있다. 함지산에서 도덕산 가는 산행길은 팔공산 마루금을 마주하며 능선길을 걷는 맛이 그런대로 걸을만한 길이다. 물론 수려한 경관과 유명한 명승고적이 산재한 길은 아니지만 아무런 생각 없이 걷자고만 한다면 산행하기 좋은 이런 길도 흔치 않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이 길을 택하기엔 바람이 너무 거셀뿐만 아니라 먼 길 을 나설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햇빛은 좋은 편인데 유달리 바람이 너무 많다. 그래서 오늘은 가벼운 마음으로 도덕산을 다녀오기로 하고 도덕산을 가장 가볍게 접근할 수 있는 도덕암으로 향했다. 


오늘은 산행을 하는데 비교적 시간적인 여유가 많다. 산행지가 집에서 가깝기도 하지만, 산행 코스도 짧고 더구나 산행 중에 빼앗기는 잡다한 시간도 줄어드니 여유로울 수밖에 없다. 거기다가 홀로 왔으니 활동에 구애됨이 없어 더욱 좋다. 오늘은 도덕암을 살펴보기에 더 없이 좋은 기회라고 볼 수 있다. 그동안 도덕암을 몇 번 다녀갔지만, 세세하게 살펴볼 여유가 없었다. 그런 도덕암을 오늘은 산행 시작 전부터 먼저 낱낱이 훑어본다.

  

도덕암은 천년고찰이다. 신라 눌지왕대에 창건 되었다고 하나 정확한 기록은 알 수 없고, 고려 광종19년(968) 혜거국사(惠居國師)가 칠성암(七星庵)이라는 사명(寺名)을 가지고 중수했다는 사적만이 남아있다. 훗날 조선 철종 4년 몽계스님에 의해 도덕암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하는데, 이 조그마한 암자에는 의외로 조선 철종 13년에 그려진 몽계당 선의대사(夢溪堂 善誼大師)의 진영이 보관되어 있고, 조선 후기에 조성한 것으로 보이는 16나한상이 나한전에 봉안되어 있다. 그뿐만이 아니라 고려 광종이 이곳에 와서 도덕암(道德庵)의 약수를 마시고 지병이 나았다는 유명한 어정수(御井水)가 있으며, 800~1,000년을 묵었다는 모과나무가 아직도 건장한 모습으로 도덕암의 극락보전을 사수하고 있다.


조계종 제9교구 동화사의 말사인 도덕암은 동명면에서 차량으로 불과 10여 분 거리에 있는 도심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어 비교적 순조롭게 방문할 수 있는 곳이다. 크게 화려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없어 보이지도 않는 고즈넉한 산사에 천년의 기운이 서려 있어 누구라도 방문한다면 그 가치를 충분히 인지할 것이라 생각한다.


산행을 하기 위해 산행길이 안내된 등로로 접어드는데 갑자기 드센 바람이 불면서 앙상한 가지에 억척스럽게 목을 매달고 있던 색 바랜 잎들을 우수수 떨어뜨리고만다. 바람 앞에 등불이라더니 그야말로 부지불식간에 극락보전 앞 빈 하늘은 바람에 휘날리는 낙엽으로 뒤덮인다. 때 마침 주지 스님으로 보이는 분이 극락보전의 문을 열고 나오시더니 낙엽이 휘날리는 앞 마당에 빈객이 홀로 서성거리는 모습을 보고 좋은 시간되시라며 합장을 해 주신다. ‘예, 스님 감사합니다.’ 하며 등로를 접어드는데 스님의 인사를 받아서인지 아무도 없는 산속을 홀로 들어가는 기분이 평안해지며, 살짝 내포되어 있던  빈객의 가슴 한 켠에 남아 있던 괜한 두려움이 사르르 사그라진다.


도덕산은 도덕암을 중심으로 좌측 시계방향으로 한 바퀴 휘둘러 나오는데 그리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 않는다. 물론 주차장이 있는 우측 반시계 방향으로 돌아도 괜찮지만 조금이라도 수월한 길을 택하자면 왼쪽 시계방향으로 돌아 나오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산길이 그리 험하거나 시간이 많이 걸리는 구간이 아니기에 이리가나 저리가나 별반 차이는 없겠지만, 걸어보니 내가 간 경로가 조금 수월한 것 같아 하는 말이다. 산행길이래야 도덕암을 중심으로 도덕산 정상까지 왼쪽으로 1.4km, 오른쪽으로 1.4km 지점에 있으니 어디로 가든 한 바퀴 돌아내려오는데 도합 2.8km로 1시간 30분이면 충분하다.


오늘 도덕산에는 아무도 없다. 오직 등로에 쌓인 낙엽만이 바람에 흩어질 뿐이다. 겹겹이 쌓인 낙엽을 밟고 지나는 산길은 오히려 눈 쌓인 길보다 더 조심스럽고 위험하다. 특히 내리막길을 갈 때는 떨어진 낙엽도 미끄럽거니와 낙엽 밑에 깔린 눈에 띄지 않는 작은 돌멩이를 밟는 것은 더더욱 위험하다. 낙엽에 가린 돌멩이가 미끄러지는 바람에 몇 번이나 중심을 잃고 넘어질 뻔 했다. 눈밭이라면 오히려 조심할 것을 낙엽이라 가볍게 여기고 내려왔다가 큰 코 다치기 십상이다.


도덕암에서 도덕산 가는 길은 비교적 여유롭게 다녀올 수 있다. 오늘 산행은 일부러 가볍게 하기 위해 도덕암 주차장까지 차를 가지고 올라왔다. 무리한 일정에 빠듯하게 산에 오르는 것보다 때로는 가벼운 마음으로 산을 오르는 것도 여유가 있어 좋다. 아무도 없는 텅 빈 산속으로 들어가 어느 누구한테도 구애받지 않으며 혼자 맞는 바람이 좋다. 센 바람이 불어 가지 끝에 달랑 붙어 사력을 다하던 나뭇잎이 생명의 끈을 놓치고 허공을 가르는 서글픈 모습 또한  무위자연으로 다가온다.


오늘은 산도 말이 없고 나도 말이 없다. 오로지 낙엽 밟는 소리와 바람에 낙엽이 휘날리는 소리 외에는 산새 소리마저 없다. 이렇게 산 중에 혼자서 자유로운 영혼을 만끽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오늘 도덕산은 나를 품고 나는 도덕산을 안았다.

 

도덕암으로 하산하면서 800년이 넘은 모과나무를 다시 한 번 더 눈 여겨 보며 끈질기고 모진 생명의 기를 이어 받고 말없이 도덕암을 돌아섰다.  

 

 

 

 

 

도덕암 (道德庵) 극락보전.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동화사(寺)의 말사

도덕암은 신라 눌지왕대에 창건되었다고하나 정확한 기록은 알수없고, 고려 광종19년(968) 혜거국사(惠居國師)가 칠성암(七星庵)이라는 사명을 가지고 중수했다는 사적만이 남아있다. 훗날 조선철종4년 몽계스님에 의해 도덕암이라 고쳐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도덕암에는 수령 800~1,000년 된 모과나무가 있다.

 

보호수로 지정된 수령 800년된 모과나무

 

모과나무에서 천년고찰 도덕암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아직 수피도 건강하고 잎도 윤기가 좌르르 흐른다.

 

가까이 들이대고 보니 더욱 더 세월의 깊이가 실감난다.

 

앞으로 만년은 더 버텨 주었으면 좋겠다. 지난 번 청송 주산지 갔을 때 노쇄현상으로 시들어 가거나 이미 목숨을 다한 왕버들을 보았을 때 얼마나 가슴 아리었나. 

 

지금처럼 영원히 천년만년 지속하여 도덕암을 찾는 불자나 혹은 탐방객들에게 천수를 나누어 주시오소서. 

 

다음에는 천년묵은 모과나무에 노란 모과가 주렁주렁 달렸을 때 다시 와봐야겠다.

 

도덕암 범종각 뒤에 늠름한 자태로 우뚝 서 있다. 

 

 

 

 

암자 탐방을 마치고 이제 도덕산 텅 빈 속으로 들어가기 전에 도덕산 전모를 담아본다. 천년의 세월을 안고 있는 사찰답지 않게 참으로 소담스럽고 소박하기까지 하다. 

 

이제 산으로 막 들어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드센 바람이 불더니 빈 하늘에 낙엽을 날린다. 엄청나게 많은 낙엽이 소낙비 쏟아지듯 했는데 타이밍을 놓쳐 좋은 그림을 얻지 못했다. 

 

도덕산 극락보전을 바라보는 방향에서 왼쪽으로 갔다. 물론 오른쪽 주차장에서 가는 길도 있지만 난 왼쪽 시계방향으로 돌아 정상에서 오른쪽 주차장 방향으로 하산했다. 오른쪽 길은 계속 오르막길이나 왼쪽 길은 오솔길 같은 숲길도 걷고 하니 왼쪽으로 가는 것이 나을 것이다.  

 

고운 옷 벗어 던지고 앙상한 가지와 낙엽만이 나그네의 발걸음을 맞이하고 있다.  

 

바위에 앉아 잠시 쉬고 있는데 쬐그만 보라색 열매가 아직 남아 앙징스런 모습을 보여준다. 열매의 색깔과 크기로 보아 작살나무로 여겨지는데 아마 저 열매마저 떨어지고 없다면 내 수준으로는 어떤 나무인지 감히 예감도 못해 보겠지. 

 

열매가 너무 작아 똑딱이를 들이댔더니 작살나무 열매가 퍼졌다. 

 

서어나무.  자작나무과에 속하는 낙엽교목으로 재질이 치밀하고 굳으며 탄력성이 좋지만 잘 쪼개지지 않는다. 기구나 농기구의 자루 및 땔감으로 쓰이며, 표고버섯을 키우는 골목감으로도 쓰인다.

 

 

요놈의 이름과 용도는 명확치는 않지만, 아마 바람의 세기를 가늠하기 위한 도구가 아닐런지... 나뭇가지와 억새가 넘어가고 잠자리채 같은 도구가 활짝 펼쳐졌으니 아는 사람은 바람의 세기를 짐작 하실란지요. 

 

도덕산 정상석. 조그만 화강석에 글씨가 꽉찼다. 크고 높지 않아 오히려 더 다정스럽다.

 

정상은 헬기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늘 팔공산에서 바라보던 도덕산을 오늘은 도덕산에서 팔공산 비로봉과 동봉을 바라본다.

 

정상에서 왔던 길로 되돌아 가야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혹시 되돌아 가지 않고 쭉이어서 내려가는 길이 있지 않을까 싶어 정상에서 계속 가던 길로 가본다. 아니나 다를까 조금 더 가보니 하산 방향을 가르쳐 주는 이정목이 떨어진 채 내가 가야할 길을 가르쳐 주고 있다. 

 

쉬어갈 수 있는 긴의자가 있는 곳에 도덕암으로 가는 방향이 있다. 

 

나뭇가지는 앙상한 채 뼈만 남기고 온 산은 낙엽으로 뒹굴고 있다. 미끄럽지만 혼자 이 길을 걷는 기분은 걷는 자만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오늘 도덕산은 내가 임자다. 

 

이 지점에 오면 도덕암과 대구 방향으로 하산하는 길로 나누어진다. 

 

박부장, 성부장 내외랑 대구체고 있는 곳에서 시작하여 도덕산 정상을 넘어 도덕암을 들린 후 송림사 닭집에서 백숙을 먹은 적도 있었는데 그때 그 길은 이 길이 아니다. 그때는 도덕암에서 임도로 내려갔다. 

 

 

산벚나무.  장미과 속한 낙엽 교목. 여러 가지 분야에 재능이 있는 사람을 비유하여 팔방미인이라 한다. 나무 중에서도 어느 하나 버릴 것 없이 쓰임이 많은 팔방미인과 같은 나무이다. 잎은 향수원료(큐마린 향)가 되며, 봄에 피는 꽃은 상춘객을 유혹하는 관상수로, 꽃잎은 약용효과를 겸한 차(?)로, 열매는 식용, 약용으로 직접 먹거나 차와 술을 담아 마신다. 목재는 가구, 고급 무늬판, 목공예품 등에 쓰이며, 팔만대장경 목판의 일부도 이 산벚나무의 목재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산벚나무

 

하산하는 등로도 낙엽이 쌓여 길을 분간하기 어렵다. 

 

 

 

주차장에 주차한 내 차가 보인다. 한 바퀴 돌아 내려오는데 대략 1시간 40분 걸렸다. 

 

시간이 많아 노송인 모과나무를 또 만나러 가야겠다.

 

꽃송이로 봐선 감국인가? 아직도 생생하다. 

 

단청이 단풍보다 곱다. 단풍이 고울 때는 단청보다 자연미가 돋보인 단풍이 더욱 고울텐데... 

 

그래도 사찰의 단청은 언제봐도 곱다. 색이 바래지면 바래진대로 역사가 깊어 보여 좋다.

 

장독대의 규모도 소담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