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번째, 국립공원 막내둥이로 재탄생한
광주 무등산 기행
광주(빛고을) 무등산(無等山) 1,187m
▣ 소재지 : 광주광역시와 전라남도 화순군, 담양군의 경계에 있는 산
▣ 찾아 가는 길 : 증심사지구호남고속도로 문흥JC → 제2순환도로 → 학운IC → 증심사지구 주차장
▣ 언제 : 2013. 2. 18.(월)
▣ 누구랑 : 아내
▣ 산행 코스 : 증심사 상가단지 - 0.6Km - 증심교 - 0.7Km - 증심사 - 0.4Km - 당산나무 - 1.1Km - (구)대피소 - 0.5Km - 중머리재 - 1.5Km - 장불재 - 0.4Km - 입석대 - 0.5Km - 서석대 - 0.5Km - 입석대 - 0.4Km - 장불재 - 0.5Km - 군부대입구 삼거리 - 0.5Km - 중봉 - 1.0Km - 중머리재 - 3.3Km - 증심사 상가단지
총 11.5Km
▣ 산행 지도<펌> : 파란선 화살표 방향이 아니고 위에 나타낸 코스로 산행함.
무등산 개요(다음 백과사전에서 펌)
높이 1,187m. 소백산맥에 솟아 있으며, 산세가 웅대해 성산(聖山)으로 알려져 있다. 백제 때는 무진악(武珍岳), 신라 때는 무악, 고려 때는 서석산(瑞石山), 그밖에 무정산·무당산·무덕산 등으로도 불렸다. 능선을 따라 천왕봉·지왕봉·인왕봉·안양산 등이 북동-남서 방향으로 이어져 있으며, 주위에는 신성봉·수래바위산·지장산 등이 있다. 산의 북부에는 중생대에 관입한 화강암, 남부에는 신라층군 퇴적암이 분포하며, 산정 부근의 암석노출지를 제외하면 산 전체가 완경사의 토산(土山)을 이루고 있다. 동쪽 사면에서 발원하는 계류들이 동복호로 흘러든다. 산기슭에는 약 900종의 식물이 분포하며, 산정부의 백마능선 일대는 억새밭이 펼쳐져 있다. 구릉지에서 재배되는 수박과 차는 그 맛과 품질이 뛰어나며, 특히 차나무 재배단지에서는 춘설이라는 녹차와 홍차 등이 생산된다.
봄 철쭉, 여름 계곡, 가을 단풍, 겨울 설경 등의 사철경관과 다양한 형태의 기암괴석 등이 절경을 이루고 증심사(證心寺)를 비롯한 많은 절과 유적 등 명승고적이 많아 1972년 5월 산 일대가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총면적 30.23㎢로 기둥 모양의 바위가 많아 암석병풍·암석원 등의 명소가 많다. 산의 남서쪽에는 넓은 고산초원지대를 이루는 장불재가 있으며, 동쪽 사면에는 선돌이라 불리는 서석대·입석대·광석대 등의 3대 석경과 풍혈대 등이 있다. 입석대는 대표적인 경승지로 10~15m의 돌기둥이 여러 모양으로 깎아 세운 듯이 서 있다. 광석대는 산정에서 남동쪽 1㎞ 거리에 있으며, 규봉 등이 아름답다. 또한 산중턱에 있는 지공 터널은 큰 돌들이 약 2㎞에 걸쳐 있다. 원효계곡은 북서쪽에 위치하며, 소나무숲, 폭포, 깊은 웅덩이 등이 조화를 이루고 있어 피서지로도 유명하다. 이곳에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창건한 원효사(元曉寺)가 있다. 용추계곡은 남쪽 기슭에 있으며, 증심계곡이라고도 한다. 울창한 활엽수림과 계곡물이 어우러져 경치가 아름다우며, 특히 가을 단풍과 겨울 설경이 좋다. 계곡 내에 있는 증심사는 806년(애장왕 7)에 철감선사가 창건했으며, 경내에는 철조비로자나불좌상(鐵造毘盧遮那佛坐像:보물 제131호)·오백나한전(五百羅漢殿)·3층석탑·5층석탑 등 많은 문화재가 있으며, 주변에는 석조여래좌상(보물 제600호)이 있는 약사암을 비롯해 백운암·천문사 등이 있다. 충효동에는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김덕령 장군의 넋을 기리는 사당인 충장사(忠壯祠)와 취가정이 있다. 그밖에도 송강 정철이 자랐던 환벽담과 식영정·성산별곡비 등이 있다. 무등산장-꼬막재-규봉암-장불재-중머리재-증심사, 바람재-천제단-중머리재-용추폭포-교리로 이어지는 등산로가 있어 많은 등반객이 찾아든다. 7월에 광주광역시 민속대전, 10월에 무등문화제, 가을의 무등산갈대제 등의 민속축제가 열리며, 주변에 광주호·국립광주박물관·담양호 등의 명소가 있다. 호텔을 비롯한 각종 숙박시설과 위락시설 등이 갖추어져 있다. 광주에서 증심사와 원효계곡으로 연결되는 시내버스가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흔적
박부장 내외와 함께 하기로 한 2박 3일간의 무등산·월출산 산행 및 남도 지방 여행은 박부장 가정에 예기치 않은 일이 발생하여 동행을 못하게 되었다. 함께 하기로 했던 벗이 동행하지 못해 그런지 일기예보 마저 들쑥날쑥 한 것이 불순하기 짝이 없다. 상황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이번에는 무등산과 월출산 두 마리 토끼를 잡는다는 계획이 순조롭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진작에 계획했던 일이라 쉽게 포기하기란 어쩐지 너무 아쉬운 감이 든다. 미리 포기할 일이 아니라 내일 아침 일기 상태를 보고 최종 판단하기로 하고, 포기하기 보다는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지고 일단 내일 아침까지 유보를 해 두자.
이런저런 이유로 무등산과 월출산 산행 계획이 무산될 조짐이 있어 이러다 아무데도 못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앞서 어제는 세계 최대의 복수초 군락을 자랑하는 내 고장 가까운 가산을 찾았다. 선행 계획이 공염불이 되면 어쩌나 싶은 마음에 시기가 이른 감이 없지 않았지만, 혹시 복수초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지고 가산을 찾은 것이다. 그러나 역시 팔공산 가산의 복수초는 시기가 너무 이른지 복수초는 커녕 아예 그 비슷한 냄새도 풍기지 않았고, 꿩 대신 닭이라고 덕분에 너댓시간 정도의 산행만 즐기고 왔다. 그러니까 어제는 내일 남도로 가는 산행이 무산되면 아무 소득도 없을까 봐 팔공산 주능의 끝자락에 있는 가산산성 산행이라도 미리 하고 온 셈이다.
오늘 새벽 일찌감치 일어난 아내가 날씨를 간파하더니 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의지를 표명하며, 어제 챙기다만 준비물을 주섬주섬 주워 담는다. 걱정이 되어 '가겠나?'하고 물었더니 한 치의 의심 없이 갈 수 있다는 확고한 의지를 내비친다. '좋다 그럼 가자.' 날씨가 부조를 하지 않으면 남도여행이나 하고 오지란 생각으로 장도에 오를 채비를 갖추었다. 포기하다시피 망설이고 있던 무등산과 월출산 산행 여부는 이렇게 새벽에 눈을 뜨자마자 부지불식간에 판정이 나버렸다. 날씨는 자신할 수 없었지만, 한 번 마음 먹기 쉽지 않은 이 기회를 놓치면 언제 갈 수 있을지 몰라 일단 과감하게 장도에 올랐다. 일단 가보자, 그렇게 가고팠던 무등산과 월출산으로...
결국, 아침 일찍 무등산을 향해 88고속국도에 차를 얹고 어제까지 갈까 말까 망설이던 남녘의 명산 기행을 위해 새벽 안개를 헤치며 달렸다. 늘 그랬지만 요즘 국도 수준의 절반도 못 미치는 88고속도로는 붐비는 시즌이 아닌 이런 날은 한산하기 그지없다. 더욱이 새벽 안개가 자욱할 때면 몽환적인 분위기가 조성되어 많은 위험이 도사리는 길이기도 하다. 담배도 한 대 피우고, 잠시 쉬어갈 겸 거창휴게소를 들렀더니 지난번 산행했던 오도산과 미녀봉이 운무에 젖어 고속국도의 아침을 쉬 열어 주지 않는다. 거창휴게소 주변의 아침은 늘 이런 분위기를 연출한다. 매일 다닌 것은 아니지만, 이 길을 따라 산행을 갈 때면 어김없이 거창휴게소에 들러 담배를 한 대 피우고 간다. 그때마다 거창휴게소의 아침은 벌거벗은 미녀가 요염한 자태로 드러 누워 아침부터 오가는 행락객의 기분을 마법처럼 묘하게 끌어 들인다.
광주의 무등산은 월요일이라 그런지 주차장과 상가는 비교적 한산하다. 오늘 아침, 무등산을 가기 어려울 것이란 생각에 길 떠날 채비를 충분히 하지 않아 점심을 알뜰하게 챙기지 못했다. 그래서 이른 점심이지만, 미리 속을 든든히 채우고 가야할 것 같아 차를 맡길 수 있는 식당을 찾았다. 공영주차장이 꽉차 주차가 가능한 식당을 찾아 간단하게 보리밥 비빔밥을 시켰는데 가격 7,000원에 각종 산나물을 비롯한 다양한 음식이 한 상 가득 채워진다. 가격에 비해 큰 상차림이었지만, 비교적 가볍게 속을 채우고, 점심을 먹은 식당에 애마를 맡긴 채 무등산을 찾아 들어갔다. 무등산은 작년 12월 31일 국립공원으로 재탄생 후 휴일에는 산객들을 태우고 온 관광버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고 한다. 한산하기 이를데 없는 오늘 무등산을 찾게 됨이 정말 다행스럽다. 날씨도 우려했던 것과 달리 산행하기 딱 좋다.
무등산 산행은 증심사를 기점으로 새인봉을 거쳐 장불재에 이르러 입석대와 서석대를 보고 중봉을 지나 증심사로 다시 회귀하는 코스로 잡았다. 그러나 막상 현장에 와보니 새인봉을 거쳐 위 코스대로 움직이자면, 어제 칠곡 가산산성을 다녀왔는데다가 내일은 월출산 산행을 해야 해 다소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오늘 산행은 코스를 조금이라도 줄이는 것이 내일 월출산 산행에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런 생각이 들자 우리는 무등산 증심교 갈림길에 서서 이리 갈까 저리 갈까 쬐끔 망설이는 척 하다가 의심 없이 증심사로 해서 당산나무가 있는 곳을 따라 중머리재로 갔다. 오늘 무리해서 내일 월출산 산행에 차질이 빚어져서는 곤란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무등산은 산줄기와 골짜기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은 홑산이며 크게 흐트러짐이 없는 육산이다. 코스 선택을 잘하면 그리 큰 고생하지 않고 오를 수 있는 광주 시민의 요람인 산이 바로 무등산이다. 증심사에서 중머리재로 올라가는 길은 그리 험하지 않다. 다만 눈 녹은 등로가 질퍽질퍽하여 걷는데 애로가 많아 그렇지 산이 높다고 오르기가 힘든 곳은 아니었다. 증심사에서 조금만 올라가면 수령 450년 된 보호수인 당산나무가 있고, 조선시대 이전부터 화순 동복현과 이서면 주민들이 광주 읍성으로 넘나드는 나들목에 솔바람 향기를 마시며 쉬어갈 수 있는 송풍정이 있다. 우리는 웬만하면 쉬어갈 수 있는 곳에선 맘 편히 쉬어 간다. 곧 잡아먹힐 듯 산을 오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 형편에 맞춰 쉬엄쉬엄 늘보 산행을 즐긴다. 물론 아내는 나보다 올라가는 속도가 빠르지만 웬만하면 나한테 맞춰 준다. 어쨌거나 쉬어가든 자고가든 달팽이 처럼 느릿느릿 가다 보니 어느 틈에 중의 민둥머리를 닮아 이름을 지었다는 중머리재까지 와 있다.
중머리재는 새인봉과 장불재 그리고 중봉으로 바로 치고 올라가는 여러 갈래길로 나누어지는 지점이다. 중머리재에서 우리는 광주 역사의 증인인 나이 지긋한 어르신 한 분을 만나 서석대까지 함께 동행을 했다. 중머리재에서 장불재까지 다소 지루한 구간인데 다행스럽게도 광주를 잘 아는 산전수전 공중전을 모두 겪은 노인네를 만나 담소를 나누며 가다보니 장불재까지 의외로 수월하게 갔다. 노인네가 간간히 한 마디씩 던지는 말씀엔 질곡의 삶이 배어있고, 모두 비워 버린 무소유의 삶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무소유가 유소유’란 말씀은 가슴 저리도록 폐 속 깊이 스며들었다. 등산화도 아닌 그것도 밑창이 닳아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운동화를 신고 장불재로 오르는 얼어붙은 빙판 길을 유유자적하게 그것도 허트러짐 없이 걸어간다. 오르내리는 대부분의 산우들은 장불재 아래 얼어붙은 등로에서 아이젠을 착용하고 스틱을 짚고도 헤메는데, 그 어른은 그냥 물 흐르듯 가만가만 올라간다. 우리는 이쯤에서 아이젠을 착용해야 하는데 괜히 미안하고 눈치가 보인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안전을 위해 우리도 결국 아이젠을 착용하고 걷는데, 그 사이에 그 어른은 벌써 고갯마루가 보이는 장불재 가까이 다가가 있다. 마치 도인 같은 걸음걸이로 장불재에 올라선 노인네의 뒷모습에서 빛고을 광주의 피비린내 나던 아비규환의 환영이 보인다.
중머리재에서 장불재로 오르는 막바지 오르막은 빙판이 심해 길이 상당히 미끄럽고 볼거리도 없다. 이 구간은 그저 장불재를 가기 위한 코스로 보면 된다. 막바지 지루한 오르막길을 지나 장불재에 도착하니 눈앞에 정체를 드러낸 입석대와 서석대의 거대한 산정 주상절리가 먼 길 달려온 길손을 반갑게 맞이한다. 먼발치에서 봐도 ‘과연 소문대로 무등산 주상절리구나’ 라는 탄성이 절로 나오는 순간이다. 장불재는 천왕봉과 입석대와 서석대 그리고 중봉 가는 길 등으로 나누어지는 무등산 산행 요충지다. 이런 장불재는 넓은 쉼터와 공터가 조성되어 있어 많은 산객이 쉬어갈 수 있는 충분한 휴게 공간이 있고 그 옆에는 더 넓은 터에 세워진 방송기지국이 있다.
장불재에서 입석대와 서석대는 지척에 있다. 데크로드를 따라 입석대 전망대에 오르니 비로소 다른 방향에서 올라온 산우들을 만날 수 있었다. 모두 천연기념물 465호인 입석대를 바라보며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 채 서로 사진을 찍고 찍어 주기 바쁘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내륙에 있는 산 중 어디에서 이런 거대한 주상절리를 볼 수 있단 말인가? 문득 21번 째 국립공원 지정을 축하하는 무등산 소개 방송을 보고 아내와 함께 가고 싶었던 순간이 떠오른다. 방송에서 보던 그런 무등산 입석대 앞에 서서 셔터를 누르는 감회는 또 다른 느낌으로 내 가슴 속 깊이 파고든다. 입석대엔 오늘 유난스러울 정도로 칼바람이 분다. 나는 칼바람이 부는 입석대에서 모진 바람을 맞고 섰다. 피바람을 맞으며 피비린내 나는 역사의 뒤안길을 잠시 돌아 보고 있는 것이다. 만년의 세월을 비바람을 맞고 우뚝 서있는 고대의 신전처럼 입석대의 주상절리는 광주의 민주지상을 그대로 담고 있다.
서석대는 무등산을 찾는 이들에게 천왕봉을 대신하고 있는 곳이며 입석대 바로 위에 있다. 서석대에 올라서면 서석대가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뒤로 돌아가면서 봐야 서석대의 전모를 볼 수 있다. 서석대에 서면 모두 한결 같이 느끼는 아쉬움이 바로 앞에 우뚝 솟은 천왕봉을 보고 발걸음을 떼지 못한다는 점이다. 군사시설보호구역이라 민간인 출입이 통제되고 있기 때문이다. 아쉽지만 할 수 없는 노릇이다. 서석대에서 눈요기라도 실컷 하고 가자니 여기는 입석대보다 더욱 매서운 칼바람이 분다. 스마트폰으로 파노라마 사진을 찍기 위해 장갑을 벗고 몇 장 찍자니 손이 시리다 못해 따가울 정도의 찬바람이 피부를 파고 든다. 그래도 언제 다시 올 수 있을지 몰라 꾹 참고 찍고 또 찍어댄다. 이렇게 촬영한 파노라마 사진은 별로 신통치 않지만, 그래도 아쉬운 대로 블로그 상단 스킨용으로 꽤 쓸만하며, 현재 요긴하게 활용하고 있다.
서석대에 서서 먼발치에서나마 천왕봉을 원없이 바라보고 무등산을 두루 조망한 후 장불재로 다시 내려왔다. 중봉으로 가기 위해서다. 장불재와 중봉으로 이어지는 길은 방송기지국과 군사시설지역이 많은 곳이라 업무용이나 군용 차량 통행이 가능한 작전도로로 조성된 길인가 보다. 길이 넓게 잘 닦여져 있다. 그런데 길은 좋지만 문제는 장불재에서 중봉으로 가는 길이 온통 빙판길이다. 그냥 빙판길 정도가 아니고 유리알 같이 투명하고 매끄럽게 얼어 있다. 가장자리로 조심해서 가다가 아내가 빙판길에 미끄러지고 나서야 정신을 차리고 아이젠을 착용한다. 아내는 팔뚝에 멍이 들고 가벼운 찰과상을 입었다. 아이젠 착용이 한 템포 늦었다. 아마추어 산꾼인 우리는 늘 이렇게 산에 다닌다.
중봉에 도착하니 메마른 억새가 자리 잡은 넓은 고원지대가 나오고 역시 방송기지국 같은 송신탑이 보인다. 중봉 역시 조망이 좋았기에 멀어진 천왕봉과 서석대를 한 번 더 바라보고 중봉에서 중머리재로 내려간다. 중봉에서 중머리재로 내려가는 길은 다소 가파르나 돌산의 비경을 즐기며 가노라면 지겨운 줄 모르고 내려온다. 중머리재에서 장불재로 올라갈 경우에는 지금 우리가 중봉에서 중머리재로 내려왔던 길로 올라가지 말고 중머리재에서 데크로드가 깔린 길로 우회하여 장불재로 오르는 것이 좋다. 중머리재에서 중봉으로 바로 치고 올라가면 길이 많이 가파르니 이 코스는 내려오는 길로 방향을 잡는 것이 수월할 것이다.
중머리재에서 하산하는 길은 증심사 방향과 토끼등을 타고 동화사터로 내려가는 길로 갈라진다. 만약 내일 월출산 산행계획이 없다면 우리는 분명히 토끼등으로 해서 동화사터로 내려갔을 것이다. 그리하면 무등산도 웬만큼 훓어본 꼴이 되지만, 이 코스로 내려가는 것은 아무래도 내일 일정으로 보아 무리수를 두는 것 같았다. 그래서 우리는 여기서부터 왔던 길이고 아는 길인 증심사로 내려간다. 지나왔던 길이고 무난하게 하산할 수 있는 코스여서 내일 월출산 산행을 위하여 아는 길로 맘 편하게 내려가는 것이 현명할 것 같았다.
결국 21번 째 막내둥이로 탄생한 국립공원 무등산을 다녀간다. 쉽지 않은 길이었기에 감회가 새롭고 가슴 또한 벅차다. 휴일이면 전국에서 모인 관광버스가 주차장을 뒤덮고, 인산인해를 이루는 곳이 요즘 광주 무등산의 휴일 풍경이라고 한다. 국립공원으로 승격되면서 무등산이 더 많은 산객을 불러들이는 것 같다. 무등산은 등급이 없는 산이다. 무등산을 오르면 고관대작도 노비도 모두 평등한, 급수가 같은 사람이 되는 평범하면서 진중한 의미를 담은 산 중의 산이다. 너무 많은 사람이 몰려 무등산을 공해로 물들이지 않기를 바란다. 아울러 군시설지역도 적절한 대책을 마련 후 민간과 함께 나누었으면 좋겠다는 어줍잖은 산객의 바램을 기대하며, 두서없이 서술한 장황한 무등산 산행기를 마감한다.
무등산 스마트폰 파노라마 사진
무등산 똑딱이 사진 기행이 시작됩니다.
거창휴게소. 무등산을 가기 위해 88고속국도를 달리다가 거창휴계소에 휴식을 위해 잠시 들린 걸음에 안개가 걷혀 형체가 그대로 드러난 오도산과 미녀봉을 스마트폰으로 담아본다. 지난번에 산행을 했던 곳이기에 더욱 정이 깊다.
근 3시간 30여 분 만에 무등산 증심사탐방지구에 도착했다. 점심 먹기에는 이른 시간이나 속을 채우고 올라가야 할 듯해서 많은 식당 가운데 먼저 눈에 띄는 식당을 찾았다. 저 아래 주차장에 주차하기는 멀기도 하고 점심 한끼하고 주차를 하고갈 요량으로 갔더니 흔쾌히 그리하란다.
세상에! 보리밥 한 그릇에 7,000원 하는데 반찬이 고기빼고 다 있다. 더구나 이 집 안주인이 전국 김치 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한 김치의 달인이다. 맛자랑에 나온 홍보 사진이 대형으로 전시되어 고객을 유도하고 있지만 웬만한 식당은 TV 맛자랑 프로그램에 소개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라 사실 홍보용 간판은 나는 그리 신용하지 않는 편이다. 그러나 이 집은 뭔가 다르다. 반찬도 맛도 아내와 내 입맛에는 딱이다. 특히 3,000원이나 더 비싸게 받던 월출산에서의 식단에 비하면 그야말로 진수성찬이다. 배가 부르면 산행하기 어려울 것 같아 아깝지만 큰 사발그릇에 퍼 놓은 것 만큼만 맛있게 비벼 먹었다. 남긴 것이 아깝다.
증심사 상가단지에서 출발기점과 출발시간을 기록하기 위해 한 컷. 지금부터 21번 째 막내로 국립공원으로 재탄생한 무등산 산행을 시작한다.
무등산 중심상가에서 20분 쯤 올라오니 새인암과 증심사로 가는 삼거리가 나온다. 당초 계획은 새인암으로 해서 중머리재로 가기로 했으나 내일 월출산 산행계획도 있고해서 컨디션 조절할겸 증심사 방향으로 계획을 선회한다. 증심사까지는 포장길이다.
증심사. 하산 시간을 예측하기 어려우니 올라갈 때는 증심사를 바라만 보고 사진만 1장 찍어둔다. 혹시 내려올 때 다른 방향으로 하산하면 증심사 사진 1장도 얻기 어려우니 미리 챙겨둔다. 하산 시 계획대로 증심사로 내려왔으니 하산하면서 증심사를 찍은 사진에 증심사에 대해서 기술하고자 한다.
증심사부터는 완만한 경사가 이어지는 흙길을 따라 올라간다.
증심사에서 조금 올라가니 대한에수교 장로회 소속인 수양관이 눈에 들어온다. 산 중에 있는 교회를 거의 본 적이 없어 좀은 특이하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산이라고 절만 있어라는 법은 없으니 실은 그리 특이할 일도 아니다.
송풍정. 산우들의 쉼터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설명해 놓은 사진 참조
당산나무. 아래 사진 참조
당산나무에서 중머리재로 올라가면서 새인암을 바라보고 아쉬움에 한 컷 남겨본다. 당초계획은 저 새인암을 넘어와야 하는데 좀 아쉽다.
지금부터 중머리재까지는 눈이 녹아 질퍽질퍽한 등로와 돌무더기가 놓여있는 길을 50여 분 올라가야 한다. 늘보 걸음으로...
구대피소 지점. 증심사에서 1.5Km 지점에 있다. 아래 사진 참조
증심사에서 한 시간 남짓 오니 중머리재가 보인다.
해발 586m 지점의 중머리재. 스님의 민둥머리를 닮았다하여 중머리재로 불렀다고 한다.
중머리재에서 나무데크로 잘 조성된 길을 따라가면 장불재로 가고 왼쪽으로 올라가면 중봉으로 간다. 우리는 장불재로 가서 현재 무등산 최고 정점인 서석대를 찍고 하산 시 왼쪽 중봉 올라 가는 길로 내려온다. 조금 편안한 산행을 하자면 오른쪽 장불재로 가는 것이 좋다.
중머리재 약수터. 현재 음용수로 합격 판정 여부를 받지 못한 상태라 식수로 사용하기는 곤란함.
중머리재에서 장불재까지 근 1시간이 소요되었다. 가는 도중에 포교사로 활동하는 불심 깊은 어르신 한 분과 동행하게 되어 무등산과 광주 이야기 그리고 불가의 금강경 이야기까지 사려깊은 말을 많이 듣는다. 한 마디 한 마디 버릴 말이 없는 것이 힘든 산행길에 많은 활력이 된다. 특히 마음에 와닿는 말씀 한 마디 한 마디는 충분히 공감이 가고 뇌리 속에 깊이 뿌리 박힌다. 그 중 '무소유가 유소유' 란 말은 참으로 좋아하는 말이나 행동에 옮기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내와 함께 이렇게 주말 산행을 다니는 이유도 허황된 욕심과 사리사욕을 버리고 싶은 마음에 산행을 시작한 것이 아닌가. 오늘 산행 중 만난 귀인은 무등산의 먼 길을 물 한 통 없이 초콜릿 하나 없이 닳고 헤진 운동화를 신고 유유자적하게 마치 신선놀음하 듯 산을 오르내린다. 고교시절 무등산에 소풍도 오고 장교 임관을 위한 훈련 시에는 천왕봉까지 선착순을 하여 2번 째로 먼저 왔을 정도라 하나 나이 70은 넘어 보이는데 아무래도 오늘 보통 귀인을 만난게 아닌가 싶다. '지금 이렇게 산을 오르내릴 수 있는 힘이 있으니 이보다 더 큰 즐거움이 어디있겠오이까' 하는 어르신의 넉넉함에서 무등산의 귀하고 천한 등급없는 무등을 보았다. 이 글을 쓰면서 그 어르신이 부디 부처님의 가피를 입기를 기원해 본다. 이 빙판 길을 그 어르신은 다 헤진 운동화를 신고 쉽고 편하게 가볍게 올라간다. 다들 히말라야 등반 복장보다 더 화려하게 차려입고 가는 산우들이랑 달라도 너무 다르다. 무등산을 오르며 또 한 번 고개숙이고 겸허함을 배운다. 오늘 산행은 무등산 입석대와 서석대를 만나지 않아도 좋다. 이것만으로도 오늘 산행의 성과를 얻은 셈이나 진배없다. 그러나 먼 길 왔으니 그래도 보러 가야지...
저 고개가 장불재다.
장불재. 장불재는 많은 산우들이 쉬어갈 수 있는 대피소가 있고 주변에 넓은 공터가 조성되어 있다.
장불재는 해발 900m 지점에 자리잡고 있다. 입석대와 서석대가 바로 위에 있다.
방송 송신 기지국. 무등산의 단점은 물론 필요한 시설이겠지만 방송통신기지국과 군 시설이 너무 많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군 기지는 점차적으로 폐쇄하고 민간으로 되돌려 주고 있는 곳도 있지만 그래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무등산의 품격이 무등이란 말에 어울리지 않게 승격되었으니 그에 걸맞는 군시설의 적절한 이동책도 이참에 한 번 더 생각해 볼 소지가 있다.
장불재에서 나무데크를 따라 가면 앞에 보이는 수직 모양의 주상절리가 나타난다. 입석대다.
같은 지점에서 마치 신전의 기둥처럼 수직으로 쭉쭉 뻗은 주상절리군이 나온다. 이것이 바로 빛고을 무등산의 천연기념물 465호인 입석대다.
안양산과 백마능선이 한 눈에 들어오고 그 너머는 화순 지역으로 얘기를 들은 것 같다.
무등산 입석대. 태백산맥이 서쪽으로 가지를 쳐 내려가다 전남지방에 이르러 솟아오른 무등산(해발1187미터, 광주직할시와 담양군 남면에 위치) 정상의 입석대는 10미터가 넘는 돌기둥들이 마치 석공들이 먹줄을 퉁겨 깎아 놓은 듯이 세워져 있어 절경을 이루어 많은 등산객들이 찾고 있다.
다음 <저작권자(c)연합뉴스>2012/10/29
지난 2005년 12월 천연기념물 제465호로 지정된 무등산 서석대와 입석대 등 주상절리대는 중생대 백악기에 발생한 화산 활동의 산물로서 용암이 냉각, 수축하면서 굳어져 만들어졌다. 오랜 세월 물리적 풍화작용에 의해 기둥과 병풍 모양을 하고 있어 경관이 수려하고 학술적 가치가 크다.
다음 <저작권자(c)연합뉴스>2012/10/29
입석대 해발 1,017m
입석대는 5~8각, 둘레 6~7m, 높이 10여m의 독립된 돌기둥 수십 개가 수직으로 하늘을 찌르듯 솟아 있다. 서석대는 돌 병풍 모양으로 동서로 길게 발달해 있다. 특히 입석대와 서석대의 주상절리는 돌기둥 하나의 크기가 지금까지 남한에서 보고된 것 중 최대로 평가받고 있다.
다음 <저작권자(c)연합뉴스>2012/10/29
입석대에서 바라본 안양산과 백마능선. 맞는지 모르겠네요.
전남대학교 한국공룡연구소는 29일 광주시에 제출한 '무등산 주상절리대(柱狀節理帶) 일대 학술조사 및 세계자연유산 등재 추진방안 연구 용역' 보고서에서 "무등산 일대의 지형 발달을 복원 연구한 결과, 입석대는 약 11만 5천 년 전에 기존의 주상절리가 지표면의 풍화와 침식으로 현재와 같이 노출됐다"고 밝혔다. 다음 <저작권자(c)연합뉴스>2012/10/29
승천암의 전설이 재미있네요. 보시를 하니 은혜가 부메랑이 되어 되돌아 오나 봅니다.
승천암. 이무기가 승천하는 형상을 하고 있는 것 같죠.
승천암에서 장불재와 화순 방향을 바라보며.
입석대를 지나 서석대를 오르면서...
서석대에 올라서니 데크로 조성된 길이 편하게 이어지네요.
무등산을 찾는 많은 이들이 저기 코 앞에 놓인 천왕봉을 가지 못해 많이 안타까워 한다. 군사시설 지역이라 통제를 하니 어쩔 수 없다. 눈 도장이라도 확실하게 콱 찍어 놓아야겠다.
서석대. 해발 1,100m 고지에 있는 서석대는 무등산 주봉인 천왕봉과 마주 보고있다. 천왕봉은 군사지역이라 입산 통제가 되어 산객의 발걸음은 아쉽지만 서석대까지 만족해야 한다. 아쉬운 점은 서석대의 수직으로 우뚝 선 주상절리의 모습을 더 가까이에서 보고 왔어야 했는데 놓친 점이 못내 아쉽다.
서석대에서 주변 암릉을 배경으로
서석대에서 입석대를 거쳐 다시 장불재로 되돌아 가는 길에
서석대에서 입석대로 되돌아 내려가는 길에 서석대로 올라 오면서 놓친 암릉 군단을 배경으로
내려가는 길에 아쉬움이 남아 입석대의 주상절리를 다시 각인하며 한 컷...
입석대 주변의 무너진 주상절리. 천연기념물 465호로 지정된 입석대와 서석대의 주상절리가 이렇게 허망하게 무너지지 않고 천년만년 꽂꽂한 자세를 유지하며 광주 시민과 우리나라의 명물로 길이 보존되었으면 하는 바램에 마음으로 담아본다.
장불재로 되돌아와서 우리가 올라왔던 중머리재로 내려가지 않고 포장된 길을 따라 간다. 포장 길을 따라 가면 중봉으로 가는 길이며 중봉까지는 산책하듯 가볍게 이동하면 된다. 노란 글씨로 장불재 방향을 표기한 것은 중머리재로 내려가는 길을 잘못 적었다. 여기가 장불재다.
장불재에서 중봉으로 가는 길은 완전히 빙판으로 꽁꽁 얼어있다. 조심조심 가장자리를 밟으며 가다가 아내가 미끄러지는 바람에 결국 아이젠을 착용하고 간다. 진작 착용할 것을 쯧쯧쯧...
장불재에서 군부대 입구 삼거리까지는 500m에 불과하다. 여기서 중봉까지 역시 500m 지점에 있다.
중봉으로 가는 길 역시 고원 산책코스로 더할나위 없다. 바람이 강해 힘들었지만 주변 조망권에 비하면 이 쯤이야 비할바가 아니다.
중봉으로 가면서 아스라이 멀어진 장불재를 한번 더 겨냥해 본다.
천왕봉과 서석대도 다시 한 번 더 바라보며 가던 걸음을 재촉한다.
중봉에서 중머리재로 하산한다. 동화사터로 해서 토끼등으로 하산하고 싶었는데 시간이 넉넉치 못하여 그냥 왔던 길로 내려간다. 내일 월출산 산행도 있고하니 오늘은 욕심을 조금 버리자.
중봉에서 바라보니 천왕봉과 서석대가 한 눈에 들어오고 주변 조망이 멋지게 그려진다.
중봉
중봉에서 중머리재로 내려가기 전에 중봉에 있는 송신기지국을 배경으로. 무등산에 유달리 송신탑과 군부대 시설이 많다.
중머리재에서 장불재로 올라가는 길은 그리 볼품이 없는데 중봉에서 중머리재로 내려가니 암릉도 많고 주변 조망도 탁트여 볼거리가 많다.
중봉에서 중머리재로 하산하는 길에
중봉에서 중머리재로 하산하는 길에 있는 소나무. 모두 저 무등산의 소나무만 같아라.
중머리재. 스님의 민둥머리를 닮았다고 하여 이름 붙여짐.
중머리재에서 내려오면 증심사와 토끼등으로 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증심사 방향에서 올라왔으니 토끼등으로 내려가고 싶었지만 내일 월출산 산행도 있고 토끼등으로 내려가는 길의 상태가 파악이 되지 않아 그냥 왔던길로 증심사로 하산한다. 증심사로 하산하는 길은 비교적 수월한 편이다.
무등산 최대의 사찰인 증심사는 신라시대의 고찰로 오백나한전·오층석탑·칠층석탑·석조보살입상·증심사철조비로사나불좌상(鐵造毘盧舍那佛坐像, 보물 제131호) 등을 소장하고 있다.
'산행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호남의 소금강으로 일컫는 영암 월출산 기행 2 (0) | 2013.02.20 |
---|---|
호남의 소금강으로 일컫는 영암 월출산 기행 1 (0) | 2013.02.20 |
조계산 산행(송광사에서 선암사) (0) | 2013.01.21 |
내변산 산행 및 변산반도 기행 (0) | 2013.01.17 |
우람한 기암괴석과 암봉이 장관을 이루는 겨울 도봉산 (0) | 2013.01.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