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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1

경산 반곡지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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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 반곡지 봄 풍경



■ 언제 : 2018. 3. 18.(일)

■ 어디로 : 경북 모처

■ 누구랑 : 혼자





흔적

 

오랜만에 산을 찾았다.

지난겨울은 새들과 어울리느라 산을 거의 찾지 못했다.

겨울은 꽃이 없어 산을 가도 흥미가 반감되기도 하지만,

가리늦게 뭔 운동을 배운답시고 산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겨울이 가고 봄이 왔어도 그놈의 운동 때문에 산에 갈 여유가 잘 생기지 않는다.

예년 같았으면 겨울 설산이 보고파

덕유산도 가고 지리산도 가고 저 멀리 태백산과 함백산 가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가끔 겨울 팔공산을 몇 번 찾기는 했지만

그 정도론 간에 기별도 가지 않는다.

이제 봄바람이 꽃을 데불고 오는 계절이 왔으니

예전처럼 힘든 산행은 아니더라도 가급적이면 산으로 가 산에서 놀아야겠다.

 

운동을 핑계 삼아 가까운 대구수목원만 다니다가

오늘은 모처럼 차량으로 1시간쯤 거리에 있는 모처에 있는 꽃을 보러갔다.

아내는 다니고 있는 절에서 시산제 겸 정기산행이 있어 거기 참석했다.

혼자 갔다. 아내가 함께하지 못할 경우엔 주로 혼자 다닌다.

꽃 사진을 찍으러 다닐 때면 혼자 다니는 것이 맘 편해 좋은 경우도 있다.

 

목적지와 가장 인접한 저수지까지 차를 끌고 갔더니

아뿔싸 먼저 온 차들이 꽉 차 있어 모닝 한 대 더 댈 공간이 없다.

어떻게 하나?’ 두리번거리자니 앞서 꽃을 찍고 내려온

나랑 비슷한 세월을 먹은 꽃님께서 자기네 차를 곧 뺀다고 잠시만 있으란다.

 

꽃 좀 봤는교?”, “벌써 꽃이 핐던가요?”

많습디다.”, “마이 봤습니다.”

만주바람꽃도 폈습디까?”

그건 아직 안 핐던데요.”

아마 열흘 정도는 더 있어야겠죠.”

그런 것 같습니다.”

몇 마디 나누다보니 오늘 이 산이 보여줄 내용이 대충 짐작된다.

만주바람꽃은 예상대로 아직 이를 것이며 아마 복수초와 노루귀

너도바람꽃과 꿩의바람꽃이 주류를 이룰 것이라 미루어 짐작한다.

 

슬슬 올라가면서 보니 개암나무에 암꽃이 안 보인다.

대구수목원에선 봤는데 여긴 아직 필 기미가 없다.

수꽃이 오뉴월 개불알처럼 축 늘어진 자리 옆에

앙증맞은 암꽃이 눈곱만한 말미잘 모양으로 빨갛게 달려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것으로 보아 느낌상 살짝 불안한 기운이 감돈다.

생강나무의 노란꽃망울만 봄의 생기를 불어넣고

올괴불나무의 빨간 슈즈도 보일 기미가 없다.

이 정도 분위기라면 복수초나 노루귀 정도로 만족해야 할 것 같다.

 

계곡이 나타나자 여인네 둘이서 물가에 핀 하얀꽃을 찍고 있다.

지나가면서 보니 너도바람꽃을 찍고 있는 것 같았다.

둘이서 너무 열심히 찍고 있어 끼어들기 곤란해 어디쯤인지 유심히 봐 두기만 했다.

내려올 때 조용히 혼자 찍을 심산이다.

 

불안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고 했던가? 역시 예감대로 복수초만 무성하다.

드문드문 흰색과 분홍의 노루귀도 보인다. 여긴 청색 노루귀는 없다.

복수초와 노루귀는 대구수목원에서 몇 차례 봤기에

보지 않아도 그리 섭섭할 이유는 없다.

곧 내 고장 팔공산 언저리에서 복수초는 질릴 정도로 볼 것이다.

거긴 세계 최대의 복수초 군락이라 하지 않던가.

 

그런데 작년에도 느꼈지만 여기 복수초는 유달리 때깔이 좋고 분위기가 다르다.

산기슭에서 자유분방하게 자란지라 돌 틈 사이에서도 자라고,

썩은 나무 밑둥지에서도 자란다.

배경 좋아하는 진사님은 이런 곳을 찾기 힘들 것이다.

 

일단 복수초와 노루귀는 여유로울 때 담기로 하고

서둘러 너도바람꽃과 꿩의바람꽃 찾기에 몰두했다.

그런데 작년에 왔을 때처럼 꿩의바람꽃은 날씨가 우중충해 그런지

모두 꽃망울을 닫고 있다. 내 눈엔 그런 애들만 눈에 띈다.

이런 상태라면 너도바람꽃이나 볼 수 있을지 미지수다.

 

먼저 온 꽃님들이 쪼그리고 찍고 엎드려 찍는 곳으로 갔다.

꽃님들이 몰려있는 곳으로 가면 뭔가 틀림없이 있기는 있다.

복수초랑 노루귀를 겨냥하고 있으면 일단 지나가고,

바람꽃을 찍고 있으면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자리가 나면 슬그머니 그 자리를 꿰찬다.

꽃이 눈에 잘 띄지 않는 날이면 이 방법이 제일 낫다.

 

그 덕분에 내 눈엔 꽃망울이 닫혀 있던 꿩의바람꽃만 보이더니

점차 꽃이 활짝 핀 애들도 덩달아 보이기 시작한다.

너도바람꽃은 워낙 작은 꽃이라 유심히 살피지 않으면 밟기 십상이고

그냥 지나치기 일쑤다.

계곡을 따라 더 위로 올라가니 겨우 보이기 시작한다.

상태는 날씨가 우중충해 그런지 역시 모양이 이쁘지는 않다.

그래도 모양이 더 이쁜 애를 찾아 겨우 몇 장 건진 것 같기는 하다.

 

꽃이 있을만한 곳을 찾아 끝까지 올라갔다.

다른 사람들은 거기까지 올라가지도 않았다.

작년에도 아내랑 정상 턱밑까지 올라갔다가 소득 없이 내려온 기억이 있지만,

그래도 기대감을 버리지 않고 혼자 꾸역꾸역 올라갔다.

그랬어도 더 건진 것은 없다.

 

꿩의바람꽃과 너도바람꽃은 웬만큼 담았다.

만주바람꽃은 올 때부터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걔는 작년에도 조급한 마음에 삼고초려를 한 끝에 겨우 만나지 않았던가.

그랬기에 아예 걔를 보자면 여길 또 한 번 더 올 요량하고 가는 것이 맘 편하다.

오늘 바람꽃 무리는 꿩과 너도바람꽃으로 만족하고,

이젠 미루어 두었던 복수초와 노루귀를 담을 차례다.

 

복수초와 노루귀는 내려가면서 찍을 작정을 하고 올라왔으니

모양 좋은 애들이 어디쯤 있는지는 이미 눈도장을 찍어둔 터다.

앞서 얘기했지만 여기는 복수초가 유달리 인물이 좋다.

잘생긴 얼굴이 어디 가겠나마는 여전히 한 인물을 자랑하고 있다.

노루귀는 오늘 모양이 썩 마음에 든 건 아니다만,

그런대로 야생에서 본 것으로 만족한다.

 

이들과 노느라 시간가는 줄 몰랐다.

내려가자니 갑자기 허기가 지고 당뇨가 있어 발병한 것처럼 갑자기 속이 허해진다.

당이 땡기나 싶어 부랴부랴 배낭을 풀고 자리를 잡아

냉동실에 얼려 있던 빵을 가지고 온 걸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먹다보니 가지고 온 빵을 모두 다 먹어버렸다.

허기가 진 모양이었다.

 

조금 쉬다가 눈 맞춤 해 두었던 복수초와 노루귀를 만나기 시작했다.

꽤 많아 보이던 꽃님들은 그 사이 많이 가고 없다.

조용해서 좋다. 복수초와 노루귀도 만족할 만큼 담았다.

이제 올라오면서 봤던 두 여인이 찍고 있던 그 꽃이 무언지 찾으러 가야한다.

편한 길이 있지만 일삼아 계곡을 타고 내려갔다.

좋은 길로 가면 되는데 굳이 또 험한 계곡을 타고 내려갔다.

이 산에선 더 봐야 지금까지 본 게 다일 텐데 뭔 미련이 남아

길도 좋지 않은 계곡을 타는지 나도 모르겠다.

그렇지 않아도 오늘 몇 번 엉덩방아를 찧기까지 했는데...

 

역시 그게 그거다. 기대했던 내가 욕심이 많다.

혹시 같은 애들이라도 명당을 차지하고 있는 애들이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에 다소 험한 길로 내려갔지만 별 소득이 없다.

지금 내가 찾아가는 곳도 올라 갈 때는 너도바람꽃인가 했는데

아무래도 꿩의바람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꿩이라면 충분히 봤으니 그만 좋은 길로 갈까 하다가

무슨 미련이 남았는지 무의식적으로 계곡을 따라 내려가고 있다.

 

그러던 중 아이를 둘 데리고 출사 나온 어떤 이가

접사 기능에 대해 내게 몇 마디 묻는다.

내 모습이 사진 꽤나 좀 찍어 보였나보다.

나도 알고 보면 허당인데...

 

몇 마디 경험적인 얘기를 해 주다가 무심코 발밑을 내려다보는데

아니 이게 웬 떡인가?’

만주바람꽃 한 무더기가 꽃을 활짝 피운 채 방긋 웃고 있는 게 아닌가.

그렇지 않아도 느지막이 올라오던 꽃님 한 분이

만주바람꽃 보셨냐고 묻기에 만주바람꽃은 아마 열흘 정도는 있어야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씀을 드렸다.

 

실제 만주바람꽃을 보기는 했어도 꽃망울이 눈곱만큼 달려 있거나

그나마 그것도 온전치 않았다.

그래서 있는 그대로 그리 말씀드렸더니

그 분은 어떤 분이 모양 좋은 만주바람꽃을 봤다고 하더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소리를 듣자 그럴 리가 없다며 오히려 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랬던 만주바람꽃이 바로 내 발 아래 서 있었다.

정말 거짓말 같이 모델 또한 분위기가 좋았다.

만주바람꽃 한 무더기를 놓고 횡재한 기분으로 두어 바퀴를 돌며

이리 찍고 저리 찍으며 사진이 잘 나오기를 바랬다.

옆에 있던 아이들 아빠도 내 말을 듣고는 사진기 렌즈를 바꾸어 덩달아 찍고 또 찍는다.

사진기가 내 거보다 훨씬 좋다.

아마 사진은 그 양반이 나보다 더 잘 나올 것 같다.

 

만주바람꽃을 뒤로하고 흡족한 기분으로 여인네 둘이 열심히 촬영하던 장소로 갔다.

지나갈 때 너도바람꽃인가 했던 건 예상대로 다름 아닌 꿩의바람꽃이었다.

배경 좋고 인물이 좋았다. 그런데 주변이 계곡물이라 배경 처리가 힘 든다.

어쨌거나 마지막으로 이 아이와 어울리며

오늘 탐사 일정을 마무리 한다.

 

주차한 곳으로 오니 웬 새 소리가 나

뭔 새가 짖나 했더니 노랑턱멧새 수컷이 내는 소리였다.

이 녀석도 꽤나 소리를 질러댄다.

이 새는 대구수목원에서 올 겨울 여러 번 봤던 새다.

가방에 넣었던 카메라를 다시 꺼내 겨냥을 했더니

쏜살 같이 날아가 버린다.

녀석, 마지막으로 모델 한 번 되어주지 않고선...

 

&

 

반곡지로 갔다. 여기서 반곡지가 나오면 모처에 꽃 탐사 다녀온 것이 탄로 나겠다.

모름지기 좋은 것은 함께 공유하고 나누는 것이 상례지만,

거긴 지금도 많이 알려졌고 더 많이 알려지면 애들이 성할 것 같지 않아

이제부턴 굳이 무엇을 보고 왔던 확실한 지명은 밝히지 않기로 했다.

 

반곡지는 몇 번 다녀간 곳이다.

작년에도 아내랑 꽃사진을 찍은 후 왕버들로 유명한 반곡지를 한 바퀴 둘러봤다.

그때는 날씨가 좋아 반곡지 풍경 사진이 잘 나와 마음에 들었는데

이번에 담은 사진은 날씨가 흐려 그런지 솜씨가 일천해 그런지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는다.

반곡지는 왕버들의 반영이 멋진 곳인데 조금 아쉽다.

 

오리 스무 마리 정도가 아직 남았다.

작년에도 이맘때쯤 왔으니 남아 있을 것이라 기대를 하고 왔다.

저수지를 유유히 유영하는 이 녀석들은 아마도 작년에 봤던 그 오리가 맞을 것이다.

이맘때면 이 녀석들이 저수지의 주인이다.

 

이 녀석들 이름은 홍머리오리다.

보통 9월 하순에 도래해 4월 하순까지 머무는

흔한 겨울철새이며 나그네새로 통한다.

이번 겨울에 우리동네 금호강변에서도 봤고 주남저수지와 우포늪에서도 봤다.

 

윤슬을 남기며 유유히 유영하는 철새가 더 없이 평화롭게 보이며

왕버들의 위엄이 서린 노거수의 품새가 저수지를 가득 메웠다.

둑방 위를 걷는 가족들의 행복과 사랑을 나누는 연인끼리

스마트폰 촬영하는 모습이 반곡지의 풍경이랑 너무 잘 어울린다.

 

이쁜 청춘이 사진 한 장 찍어 달라며 스마트폰을 내민다.

이쁜 만큼 이쁘게 찍어 주려 나름대로 구도를 잘 잡고 찍었다.

이쁜 사랑만큼 사진이 잘 나와 만족했으면 좋겠는데 어땠는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반곡지와 잘 어울리는 연인이란 생각이 든다.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지.

벌써 까마득한 옛이야기가 되어버렸군.

반곡지에 투영된 내 머리카락에 서리가 잔뜩 내려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