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경남 하동 '토지'의 무대 최참판댁으로 초대
한국교직원신문 게재 내용 2013-09-30
박경리 소설 ‘토지’의 무대인 경남 하동의 악양들판이 황금색으로 물들어가고 있다. 경상도와 전라도 경계를 흐르는 섬진강과 지리산 자락에 둘러싸인 마을이 한눈에 보이는 곳은 한산사 앞에 위치한 ‘사진 찍기 좋은 녹색명소’.
하늘이 뿌린 황금빛, 가을이 물들어간다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의 주 무대인 하동 악양들판은 추수를 앞두고 숨이 막힐 정도로 황홀한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바둑판처럼 반듯반듯한 황금들판 한가운데서는 부부송으로 불리는 소나무 두 그루가 그윽한 눈길을 주고받고, 산자락에 둥지를 튼 마을은 토실토실한 알밤과 주먹만한 홍시가 고샅을 나뒹굴며 가을 풍경화를 그린다.
경남 하동의 악양들판은 지리산 남부능선 끝자락인 형제봉(1115m)과 동쪽의 칠성봉 및 구제봉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서쪽은 섬진강 푸른 물에 발을 담근 전남 광양의 백운산(1218m)에 가로막힌 분지로 어머니의 품처럼 아늑하다. 악양들판에 둥지를 튼 마을은 30여 곳. 예로부터 물산이 풍부하고 인심이 후해 거지가 마을을 한 바퀴 돌며 구걸하는데 일 년이나 걸렸다고 한다.
악양면에는 마을을 한 바퀴 도는 ‘박경리 토지길’을 비롯해 ‘지리산 둘레길’, ‘이순신 백의종군로’ 등이 조성되어 있다. ‘박경리 토지길’의 출발점은 평사리공원으로 불리는 섬진강의 개치나루터. 하동읍내와 화개장터 중간쯤에 위치한 개치나루터는 ‘토지’에 등장하는 월선이가 용이가 보고 싶어 마지막 배를 타고 와 악양들판을 가로질러 평사리로 숨어들던 곳이다.
황금들판 배경 삼아 붉게 물든 벚나무
푸른 대밭과 금빛 모래밭 사이로 흐르는 섬진강의 숨소리를 뒤로하고 도로로 올라서면 벚꽃터널로 유명한 19번 국도.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로 유명한 유홍준 씨가 ‘이 세상에 둘이 있기 힘든 아름다운 길’이라고 극찬한 19번 국도는 단풍이 들기 시작한 벚나무 가로수의 붉은 잎이 가을 햇살에 형광색으로 빛난다.
악양삼거리에서 평사리삼거리까지 19번 국도를 일직선으로 달리는 1.6㎞ 구간의 벚나무 터널은 일 년에 세 번 황홀한 순간을 연출한다. 첫 번째는 이른 봄에 꽃이 피기 직전 연분홍으로 물든 꽃망울이요, 두 번째는 바람에 눈송이처럼 흩날리는 하얀 꽃잎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황금색으로 물든 악양들판을 캔버스 삼아 붉게 물든 벚나무 잎이다.
악양천 제방을 따라 악양들판을 한 바퀴 돌다 보면 조부잣집으로 불리는 상신마을의 조씨고택이 웅장한 모습을 자랑한다. 조선 개국공신인 조준의 직계손인 조재희 선생이 낙향해 지은 조씨고택은 어마어마한 식솔과 넘쳐나는 손님들로 늘 밥 짓는 연기가 끊이지 않았던 곳. 조부잣집 쌀뜨물 때문에 섬진강이 뿌옇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으나 한국전쟁 등을 거치면서 모두 불타고 안채만 남았지만 고풍스러움은 여전하다.
야생차 재배지 중 세계 최초로 슬로시티로 지정된 악양의 지명은 나당연합군을 이끌고 온 소정방이 이곳의 지형이 중국의 악양과 닮았다 해서 이름 지었다고 전해진다. 소정방은 평사리 강변 모래밭을 금방, 모래톱 안에 있던 호수를 동정호로 명명했다.
서희가 걸어 나올 것 같은 최참판댁
소설 속 공간을 재현한 아흔아홉 칸 최참판댁은 평사리 상평마을의 언덕배기에서 악양들판을 내려다본다.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최치수가 기거하던 사랑채를 비롯해 윤씨부인의 생활공간인 안채, 별당아씨 서희가 살던 별당채, 길상이 살던 행랑채 등이 소설 속으로 들어온 듯 그윽한 문향을 풍기고 있다.
소설이 시작되고 소설이 끝나는 공간인 별당채에서는 서희가 치맛자락을 끌며 나타날 것 같고, 사랑채 마루에 앉으면 담장 너머로 누렇게 익어가는 악양들판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최참판댁 아랫마을에는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집 10여 채도 옹기종기 처마를 맞대고 있다. 용이네, 칠성이네, 김평산네, 서서방네, 막딸네, 이평이네, 관수네 등으로 명명된 초가의 지붕에는 박과 호박이 나날이 몸집을 불리고 있다.
박경리 선생은 ‘토지’를 집필하기 전 꼭 한번 평사리를 찾았다고 한다. 고미술을 연구하던 딸과 함께 한산사의 탱화를 보기 위해 들른 평사리 나들이 길에서 ‘토지’의 무대로 영감을 얻은 것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박경리 선생은 ‘토지’ 집필 중에는 한번도 평사리를 찾지 않았다고 한다. 평사리와 함께 주요 무대로 등장하는 중국 용정도 마찬가지다. 선생은 현장답사 대신 평사리와 용정의 오만분의 일 지도를 보고 실제보다 더 정확하게 현장을 묘사했다고 한다. 훗날 용정을 둘러보고 “토지 속의 풍경과 똑같네”라고 했다니 박경리 선생의 독도법과 상상력을 가늠하고도 남는다.
박경리 선생이 평사리 땅을 밟기 400여 년 전 이순신 장군도 백의종군 길에 이곳을 지나갔다. 서울을 떠난 지 두 달 만인 1597년 5월 중순. 장군은 구례를 거쳐 하동 평사리의 이정란 집에서 하룻밤을 묵었다고 한다. 지금 이정란의 집은 흔적조차 없지만 평사리 입구에는 충무공 백의종군로 표지석이 세워져 그 날을 기리고 있다.
물산이 풍부한 탓이었을까. 악양면은 한국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지리산 일대에서 가장 넓은 곡창인 악양들판은 빨치산에게는 놓칠 수 없는 식량보급투쟁의 대상이었다. 빨치산은 추수철을 전후해 남부군과 함께 일주일 동안 악양을 해방구로 장악했다. 당시 수많은 농민들이 강압에 의해 쌀을 등에 지고 빨치산을 따라 입산하다 좌파로 내몰려 수난을 겪기도 했다.
악양들판 한가운데 다정한 부부송(松)
악양들판은 여의도보다 조금 작은 83만 평으로 예전엔 드넓은 모래톱과 척박한 논밭에 불과했었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 때 둑을 쌓으면서 만석지기 부자 서넛은 나올 만한 문전옥답으로 바뀌었다.
가을이 익어가는 악양들판의 농로는 한가운데 위치한 부부송 앞에서 모인다. 수령 200년으로 추정되는 두 그루의 소나무는 악양들판의 상징물로 부부처럼 다정해 부부송으로 불린다. 실제로 소나무 사이에는 부부합장 묘가 위치한다. 하동군은 최근 ‘토지’ 주인공의 이름을 따서 서희송(松)과 길상송(松)으로 명명했다.
악양들판은 보는 위치와 계절에 따라 서로 다른 풍경을 연출한다. 드넓은 악양들판이 한눈에 보이는 곳은 한산사 옆에 위치한 ‘사진 찍기 좋은 녹색명소’. 도로 옆 절벽에 위치한 포토존에 서면 구불구불 흐르는 섬진강과 드넓은 악양들판, 그리고 평사리를 비롯해 악양들판을 둘러싼 마을들이 그림처럼 보인다.
날씨와 시간대에 따라서도 악양들판은 색다른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형제봉에서 내려온 산안개와 섬진강에서 피어오른 물안개가 황금들판을 푸른 커튼처럼 드리운 새벽 풍경은 몽환적이다. 이윽고 구제봉에서 태양이 솟으면 악양들판의 안개는 화염처럼 이글거린다. 흐르는 구름 사이로 쏟아지는 빛줄기가 만들어내는 양지와 음지의 영토싸움도 악양들판을 신비롭게 만든다.
박경리 선생이 평사리 땅을 밟기 전 백의종군 길에 나선 이순신 장군이 하룻밤을 보냈던 마을. 한국전쟁 때는 빨치산이 추수철을 전후해 남부군과 함께 일주일 동안 해방구로 장악했던 마을. 가상의 공간과 현실의 공간이 뒤섞인 악양들판은 그래서 더욱 극적이다.
박강섭 국민일보 관광전문기자
여 행 수 첩
◆ 가는길
남해고속도로 하동IC에서 19번 국도를 타고 구례 방향으로 올라가거나 순천∼완주 고속도로 구례·화엄사IC에서 19번 국도로 갈아타고 승용차로 20분쯤 내려오면 악양들판이 나온다.
◆ 볼거리
- 하동군은 10월 11~13일 평사리 최참판댁 일원에서 ‘2013 토지문학제’를 개최한다. ‘평사리의 너른 품, 문학을 품다’를 주제로 열리는 토지문학제의 프로그램은 소설 ‘토지’를 주제로 한 독서토론회, 백일장, 세미나, 마당극, 입체낭송회, 시화전 등. 이 밖에도 추억의 책방 운영, 압화, 염색, 탁본 체험을 비롯해 문인화 그려주기, 내 캐릭터 그려주기 등 다양한 이벤트가 진행된다.
- 악양면은 매년 10월 말에서 11월 초에 ‘악양대봉감축제’도 개최한다. 홍시로 먹는 대봉감은 일반 감보다 크기가 두 배로 색깔과 모양이 아름답고 맛과 향이 뛰어나 조선시대에는 임금 진상품으로 이름을 날렸다.
- 북천면 꽃단지 일원에서는 ‘2013 하동북천 코스모스·메밀꽃 축제’가 10월 6일까지 열린다. 북천역을 중심으로 40㏊를 가득 메운 코스모스와 메밀꽃이 만개한 가운데 꽃물들이기, 밤 줍기, 고구마 캐기 등 추억의 이벤트가 진행된다.
- 가수 조영남의 노래로 유명해진 화개장터는 십리벚꽃길로 유명한 화개천변에 위치했으나 10여 년 전 화개천 건너편에 옛 모습으로 복원됐다. 5일장은 끝자리가 1, 6일인 날에 열리지만 장날보다 관광객이 몰리는 주말에 더 붐빈다.
◆ 먹거리
하동의 별미는 뽀얀 국물이 구수한 재첩국(사진 위). ‘보리누름엔 하동 재첩이 최고’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5∼6월 섬진강에서 채취하는 재첩은 맛이 좋기로 소문났다. 요즘 나오는 재첩은 5~6월에 채취한 재첩을 냉동시킨 것.
재첩국과 함께 섬진강 참게를 숙성시킨 참게장(사진 아래)과 수박향 그윽한 은어 요리도 하동을 대표하는 음식. 하동읍내 동흥식당(055-884-2257)과 여여식당(055-884-0080)은 재첩국과 재첩회로 유명하다(하동관광안내센터 1588-3186).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의 주 무대인 하동 악양들판은 추수를 앞두고 숨이 막힐 정도로 황홀한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바둑판처럼 반듯반듯한 황금들판 한가운데서는 부부송으로 불리는 소나무 두 그루가 그윽한 눈길을 주고받고, 산자락에 둥지를 튼 마을은 토실토실한 알밤과 주먹만한 홍시가 고샅을 나뒹굴며 가을 풍경화를 그린다.
경남 하동의 악양들판은 지리산 남부능선 끝자락인 형제봉(1115m)과 동쪽의 칠성봉 및 구제봉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서쪽은 섬진강 푸른 물에 발을 담근 전남 광양의 백운산(1218m)에 가로막힌 분지로 어머니의 품처럼 아늑하다. 악양들판에 둥지를 튼 마을은 30여 곳. 예로부터 물산이 풍부하고 인심이 후해 거지가 마을을 한 바퀴 돌며 구걸하는데 일 년이나 걸렸다고 한다.
악양면에는 마을을 한 바퀴 도는 ‘박경리 토지길’을 비롯해 ‘지리산 둘레길’, ‘이순신 백의종군로’ 등이 조성되어 있다. ‘박경리 토지길’의 출발점은 평사리공원으로 불리는 섬진강의 개치나루터. 하동읍내와 화개장터 중간쯤에 위치한 개치나루터는 ‘토지’에 등장하는 월선이가 용이가 보고 싶어 마지막 배를 타고 와 악양들판을 가로질러 평사리로 숨어들던 곳이다.
황금들판 배경 삼아 붉게 물든 벚나무
악양삼거리에서 평사리삼거리까지 19번 국도를 일직선으로 달리는 1.6㎞ 구간의 벚나무 터널은 일 년에 세 번 황홀한 순간을 연출한다. 첫 번째는 이른 봄에 꽃이 피기 직전 연분홍으로 물든 꽃망울이요, 두 번째는 바람에 눈송이처럼 흩날리는 하얀 꽃잎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황금색으로 물든 악양들판을 캔버스 삼아 붉게 물든 벚나무 잎이다.
악양천 제방을 따라 악양들판을 한 바퀴 돌다 보면 조부잣집으로 불리는 상신마을의 조씨고택이 웅장한 모습을 자랑한다. 조선 개국공신인 조준의 직계손인 조재희 선생이 낙향해 지은 조씨고택은 어마어마한 식솔과 넘쳐나는 손님들로 늘 밥 짓는 연기가 끊이지 않았던 곳. 조부잣집 쌀뜨물 때문에 섬진강이 뿌옇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으나 한국전쟁 등을 거치면서 모두 불타고 안채만 남았지만 고풍스러움은 여전하다.
야생차 재배지 중 세계 최초로 슬로시티로 지정된 악양의 지명은 나당연합군을 이끌고 온 소정방이 이곳의 지형이 중국의 악양과 닮았다 해서 이름 지었다고 전해진다. 소정방은 평사리 강변 모래밭을 금방, 모래톱 안에 있던 호수를 동정호로 명명했다.
서희가 걸어 나올 것 같은 최참판댁
소설이 시작되고 소설이 끝나는 공간인 별당채에서는 서희가 치맛자락을 끌며 나타날 것 같고, 사랑채 마루에 앉으면 담장 너머로 누렇게 익어가는 악양들판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최참판댁 아랫마을에는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집 10여 채도 옹기종기 처마를 맞대고 있다. 용이네, 칠성이네, 김평산네, 서서방네, 막딸네, 이평이네, 관수네 등으로 명명된 초가의 지붕에는 박과 호박이 나날이 몸집을 불리고 있다.
박경리 선생은 ‘토지’를 집필하기 전 꼭 한번 평사리를 찾았다고 한다. 고미술을 연구하던 딸과 함께 한산사의 탱화를 보기 위해 들른 평사리 나들이 길에서 ‘토지’의 무대로 영감을 얻은 것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박경리 선생은 ‘토지’ 집필 중에는 한번도 평사리를 찾지 않았다고 한다. 평사리와 함께 주요 무대로 등장하는 중국 용정도 마찬가지다. 선생은 현장답사 대신 평사리와 용정의 오만분의 일 지도를 보고 실제보다 더 정확하게 현장을 묘사했다고 한다. 훗날 용정을 둘러보고 “토지 속의 풍경과 똑같네”라고 했다니 박경리 선생의 독도법과 상상력을 가늠하고도 남는다.
박경리 선생이 평사리 땅을 밟기 400여 년 전 이순신 장군도 백의종군 길에 이곳을 지나갔다. 서울을 떠난 지 두 달 만인 1597년 5월 중순. 장군은 구례를 거쳐 하동 평사리의 이정란 집에서 하룻밤을 묵었다고 한다. 지금 이정란의 집은 흔적조차 없지만 평사리 입구에는 충무공 백의종군로 표지석이 세워져 그 날을 기리고 있다.
물산이 풍부한 탓이었을까. 악양면은 한국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지리산 일대에서 가장 넓은 곡창인 악양들판은 빨치산에게는 놓칠 수 없는 식량보급투쟁의 대상이었다. 빨치산은 추수철을 전후해 남부군과 함께 일주일 동안 악양을 해방구로 장악했다. 당시 수많은 농민들이 강압에 의해 쌀을 등에 지고 빨치산을 따라 입산하다 좌파로 내몰려 수난을 겪기도 했다.
악양들판 한가운데 다정한 부부송(松)
가을이 익어가는 악양들판의 농로는 한가운데 위치한 부부송 앞에서 모인다. 수령 200년으로 추정되는 두 그루의 소나무는 악양들판의 상징물로 부부처럼 다정해 부부송으로 불린다. 실제로 소나무 사이에는 부부합장 묘가 위치한다. 하동군은 최근 ‘토지’ 주인공의 이름을 따서 서희송(松)과 길상송(松)으로 명명했다.
악양들판은 보는 위치와 계절에 따라 서로 다른 풍경을 연출한다. 드넓은 악양들판이 한눈에 보이는 곳은 한산사 옆에 위치한 ‘사진 찍기 좋은 녹색명소’. 도로 옆 절벽에 위치한 포토존에 서면 구불구불 흐르는 섬진강과 드넓은 악양들판, 그리고 평사리를 비롯해 악양들판을 둘러싼 마을들이 그림처럼 보인다.
날씨와 시간대에 따라서도 악양들판은 색다른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형제봉에서 내려온 산안개와 섬진강에서 피어오른 물안개가 황금들판을 푸른 커튼처럼 드리운 새벽 풍경은 몽환적이다. 이윽고 구제봉에서 태양이 솟으면 악양들판의 안개는 화염처럼 이글거린다. 흐르는 구름 사이로 쏟아지는 빛줄기가 만들어내는 양지와 음지의 영토싸움도 악양들판을 신비롭게 만든다.
박경리 선생이 평사리 땅을 밟기 전 백의종군 길에 나선 이순신 장군이 하룻밤을 보냈던 마을. 한국전쟁 때는 빨치산이 추수철을 전후해 남부군과 함께 일주일 동안 해방구로 장악했던 마을. 가상의 공간과 현실의 공간이 뒤섞인 악양들판은 그래서 더욱 극적이다.
여 행 수 첩
◆ 가는길
남해고속도로 하동IC에서 19번 국도를 타고 구례 방향으로 올라가거나 순천∼완주 고속도로 구례·화엄사IC에서 19번 국도로 갈아타고 승용차로 20분쯤 내려오면 악양들판이 나온다.
◆ 볼거리
- 하동군은 10월 11~13일 평사리 최참판댁 일원에서 ‘2013 토지문학제’를 개최한다. ‘평사리의 너른 품, 문학을 품다’를 주제로 열리는 토지문학제의 프로그램은 소설 ‘토지’를 주제로 한 독서토론회, 백일장, 세미나, 마당극, 입체낭송회, 시화전 등. 이 밖에도 추억의 책방 운영, 압화, 염색, 탁본 체험을 비롯해 문인화 그려주기, 내 캐릭터 그려주기 등 다양한 이벤트가 진행된다.
- 악양면은 매년 10월 말에서 11월 초에 ‘악양대봉감축제’도 개최한다. 홍시로 먹는 대봉감은 일반 감보다 크기가 두 배로 색깔과 모양이 아름답고 맛과 향이 뛰어나 조선시대에는 임금 진상품으로 이름을 날렸다.
- 북천면 꽃단지 일원에서는 ‘2013 하동북천 코스모스·메밀꽃 축제’가 10월 6일까지 열린다. 북천역을 중심으로 40㏊를 가득 메운 코스모스와 메밀꽃이 만개한 가운데 꽃물들이기, 밤 줍기, 고구마 캐기 등 추억의 이벤트가 진행된다.
- 가수 조영남의 노래로 유명해진 화개장터는 십리벚꽃길로 유명한 화개천변에 위치했으나 10여 년 전 화개천 건너편에 옛 모습으로 복원됐다. 5일장은 끝자리가 1, 6일인 날에 열리지만 장날보다 관광객이 몰리는 주말에 더 붐빈다.
◆ 먹거리
하동의 별미는 뽀얀 국물이 구수한 재첩국(사진 위). ‘보리누름엔 하동 재첩이 최고’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5∼6월 섬진강에서 채취하는 재첩은 맛이 좋기로 소문났다. 요즘 나오는 재첩은 5~6월에 채취한 재첩을 냉동시킨 것.
재첩국과 함께 섬진강 참게를 숙성시킨 참게장(사진 아래)과 수박향 그윽한 은어 요리도 하동을 대표하는 음식. 하동읍내 동흥식당(055-884-2257)과 여여식당(055-884-0080)은 재첩국과 재첩회로 유명하다(하동관광안내센터 1588-3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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