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마이삭이 쓸고간 자리, 꽃진 자리마저 이쁘더라.
■ 언제 : 2020. 9. 3.(목)
■ 어디로 : 영천 보현산
■ 누구랑 : 혼자
흔적
제9호 태풍 마이삭이 한반도를 강타했다.
문을 꼭 닫고 자 그런지 난 비바람이 몰아치고 강풍에 시설물이 파손되고
거목이 나자빠진 것도 몰랐다.
뉴스를 보니 풍력발전기의 몸체가 마치 칼로 자른 듯 베어져 있다.
세상 돌아가는 형편도 모르고 그저 아침에 눈을 뜨니
오늘 산에 가도 되겠구나란 생각만 들었다.
아직 마이삭의 여운이 남아서인지 현관문을 열고 나서니 제법 바람이 드셌다.
꽃을 찍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만 그건 가봐야 알 일
가고 싶을 땐 가고 볼 일이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도종환 시인의 말이다.
질 놈은 지고 필 놈은 핀다.
태풍이 지나간 뒤끝이라 하늘이 맑고 개운했다.
하지만 그래도 바람은 남아있었다.
어쨌든 보현산을 향한 발걸음은 상쾌하기만 하다.
곳곳에 태풍의 흔적이 역력했다.
꺾이고 떨어진 나뭇가지가 보현산 꼬부랑길 곳곳에 널브러졌다.
꽃은 무사할지 걱정이다.
생각한 것 만큼 크게 상하진 않았지만 강풍에 맥을 못추고
쓰러진 녀석들이 꽤 많이 보인다.
주로 튼튼하고 강한 나무가 부러지고 상했다.
상대적으로 부드럽고 연약한 풀은 쓰러지긴 했다만 부러지진 않았다.
강함이 유연함에 못미침을 일러준다.
여름꽃은 거의 다 졌다.
그 많던 동자꽃은 어디가고 고개돌린 동자꽃 한 송이만 덩그러니 섰다.
또 있으려니 생각했더만 그건 착각에 불과했다.
이미 여름이 저만큼 가버렸던 것이다.
오늘 보현산 꽃탐방은 내게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 날이다.
비록 여름꽃이 지고 가을꽃은 아직 일렀지만,
보현산은 꽃 말고 내게 또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10년 동안 알고 지냈던 "박새"가 "참여로"로 탈바꿈한 날이었던 것이다.
꽃을 알고 지낸 지 십여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제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의 기쁨은 말로 형용하기 어렵다.
*
꽃이 지고 없어도 좋았고
가을꽃이 더디게 와도 좋았다.
별이 되어 꽃을 피운 자그마한 구슬붕이가 그렇게도 이쁘더니
오늘 보현산은 작은 별이 모여 내게 큰구슬붕이로 화했다.
그동안 고생했다고 신령이 내려준 선물이련가.
태풍 마이삭이 쓸고간 자리
여름꽃만 가져가고
새롭게 단장한 가을꽃이 천수누림길을 환하게 밝혀주길 기대한다.
이삭여뀌
선괴불주머니
정영엉겅퀴
고추나무
꼬마물봉선
가는장구채
짚신나물 꽃진 자리
말털이슬
쉽싸리
긴산꼬리풀
며느리밑씻개
긴산꼬리풀
바디나물
참취
참여로
투구꽃
흰진범
투구꽃
푸른여로
흰진범
꼬마물봉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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