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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류·동물

흰눈썹황금새 육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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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눈썹 황금새 육추 장면 한 번 찍는데 와 이래 힘드노.

 

■ 언제 : 2020. 6. 20.(토)

■ 어디로 : 모처

■ 누구랑 : 혼자

 

 

오늘은 재밌는 하루였다.

올해 자주 갔던  붉은부리찌르레기와 찌르레기의 육추

그리고 늘 실패했던 원앙 유조를 촬영하기 위해 드나든 곳에서

우연히 흰눈썹황금새의 육추 현장 정보를 입수했다.

 

정확한 장소가 어딘지 불확실 했기에

정보를 입수한 내용을 토대로 대략 어디쯤인지 감만 잡고

무작정 길을 나섰다.

 

어제 교육 받고 오는 길에 칠곡휴게소에 들러

새 촬영할 때 주로 쓰는 모자와 장갑을 겸한 토시, 간이 접이식 의자를 장만했었다.

현장에 도착해 그 놈 다 착용하고 백팩에 삼각대까지 걸치고 어깨가방까지 메고 가자니

짐이 한보따리였다.

 

그래도 오늘은 제대로 구색을 갖춘 셈이다.

늘 대충 다니다 갖출 것 다 갖추니 제법 찍사다운 면모가 나타난 것 같기도 하다.

 

해설사 한 분이 엄마와 아들 두 사람을 상대로 내 가는 길에 숲해설을 하고 있다.

흰눈썹황금새 찾아 가는 길이라 마음이 바빴다만,

요즈음 내가 받고 있는 교육 분야인지라 그냥 지나치기 아쉬웠다.

슬그머니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엄마와 아들은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오히려 주제 넘게 끼어든 객이 이것 저것 묻기 시작했다.

괜스레 끼어든 객이 성가시게 굴어 귀찮을 만도 한데

해설하시는 분은 전혀 아랑곳 하지 않고 친절하게 답변해 주셨다.

 

요즘 나도 같은 교육을 받고 있다고 말씀드리자

더욱 친근감을 가지고 세세한 설명까지 덧붙여 주셨다.

 

갑자기 오토바이를 타고 가던 분이 우리 앞에 서더니

해설사님과 반가운 인사를 나눈 후 그 분을 소개한다.

이 분이 우포늪의 상징이며 우포늪에서 가장 유명하신 분이란다.

 

우포늪을 자주 찾았기에 오늘 처음 뵈었지만,

워낙 명성이 자자한 분이라 이 분에 대해선 대충은 알고 있었다.

 

잘 됐다 싶어 내친 김에 흰눈썹황금새가 이소하진 않았는지 물었더니

지금 사람들이 모여 열심히 찍고 있다는 빅뉴스를 전해 주신다.

그러면서 윤무부 박사님도 오셔서 사진을 찍고 계신다고 했다.

 

순간 이런 일도 있구나 싶었다.

해설사님도 오늘은 특별한 날이라며 기분이 몹시 좋다고 했다.

요즘 우포늪을 대상으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데

해설을 듣는 모자가 그 분의 처자식이라며 아주 흡족해 했다.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해설사님을 만나 숲공부와 겸한 여러가지 유익한 내용을 들었을 뿐만 아니라

우포늪을 대상으로 다큐멘타리를 제작한다는 소식과

우포늪의 상징적인 인물도 직접 만났으며,

우리나라 조류계의 거성인 윤무부 박사가 내가 가는 그 장소에 계신다는 소식도 접했다.

여기 저기 다니다 보니 이런 일도 다 생긴다.

 

해설사 일행과는 따오기 복원 센터 갈림길에서 헤어졌다.

함께 걷다가 이젠 오롯이 혼자 걷는 길이다.

가는 길엔 '물억새'와 물억새 같은 볏과에 속한 '줄'이 지천이다.

방금 해설사로부터 설명을 들었기에 구분이 확실해졌다.

하나 건졌다.

 

저 놈은 '물억새'고 저 놈은 '줄'이렸다.

혼자 궁시렁거리며 발길을 재촉했다.

 

문제의 징검다리가 나타났다.

아뿔싸! 징검다리가 물에 잠겼다.

흰눈썹황금새 육추 현장이 어딘지 불확실 했던 난

대충 유추해 왔기에 징검다리가 물에 잠겨 있을 줄은 생각조차 못했다.

해설사님이 요 며칠 비가 왔기에 잠겨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지만,

정말 잠겨 있을 줄이야.

 

진퇴양난이다.

여기까지 와 돌아서기도 그렇고 징검다리를 보니 한 눈에 봐도

이끼가 껴 건너기 망설여졌다.

 

할 수 없다. 일단 양말 벗고 바지까지 걷고 용감하게 건넜다.

맨발에 이끼 낀 돌 위를 걷자니 곡예나 다름없다.

몇 번 위험한 고비를 넘기고 4/5쯤 무사히 잘 건넜는데

마지막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결국 물에 빠져 버렸다.

연거푸 두 번이나 빠졌다.

 

이런 제기랄!

물에 빠진 새앙쥐 꼴이 됐다만, 꼴이 문제가 아니라 카메라가 걱정이다.

다행히 카메라는 백팩이 방수 처리가 잘 되어 있어 살아 남았다.

 

어깨가방엔 물이 흥건히 찼다.

거꾸로 들어부으니 물이 줄줄 흘렀다.

전자담배도 다 젖었고 기계도 무사하지 못했다.

휴대폰도 다 젖고 지갑도 다 젖었다.

 

옷은 두 말 할 나위 없이 홀라당 다 젖었다.

바지 가랭이에서 물이 줄줄 흐른다.

 

현장엔 윤무부 박사님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촬영을 하고 있었다.

꼴이 꼴인지라 슬그머니 제일 뒤쪽에 가 자리를 폈다.

 

윤박사님은 한 쪽팔에 깁스를 하고 계셨다.

서울에서 오늘 아침 3시에 일어나 4시에 출발하셨단다.

노구에 몸도 온전치 않으시면서 젊은이 못지 않은 열정으로 촬영에 임하고 계셨다.

 

새가 뭐길래...

 

한창 촬영을 하고 있는데 앞서 온 분 몇 명이 일어나더니 자리를 떴다.

내 자리가 그리 좋지 않았기에 비운 자리로 이동했다.

그러다 보니 바로 윤박사님 바로 옆에 앉게 됐다.

 

촬영을 하면서 이런 저런 얘기도 나누고

우포늪 따오기 방사와 관련해 윤박사님이 일갈했던 내용에 대해서 여쭈어도 봤다.

윤박사님이 말씀하신 그 내용에 대해선 이미 알고 있었던 터다.

 

윤박사님은 일어날 기미가 안 보인다.

아마 가장 일찍 그 현장에 왔고, 가장 늦게 가실 것 같다.

 

난, 대충 800장 가까이 찍었다.

아마 쓸만한 사진은 10장도 안 나올 것 같다.

찍은 게 아까워 탑재는 많이 했다만, 마음에 드는 사진은 한 장도 없다.

늘 그랬다.

 

윤박사님이 사진을 찍는 사람들에게 나누어준 유인물 한 장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야생동물 촬영 수칙"이란 유인물인데

19가지 주의 사항이 담겨있다.

 

평생 새랑 함께 살고 새를 사랑한 분이라

새를 찍는 사람들에게 올바른 촬영 수칙을 깨우쳐 주고 싶은 마음에

늘 가지고 다니면서 나누어 주었을 걸로 사료된다.

이 분은 돌아가시면 "새"로 환생하실 분이란 느낌이 든다.

 

아마 그럴 것이다.

어떤 새로 태어나실까?

 

&

 

물에 퐁당빠졌던 징검다리를 건너야 가는 길에 또 따오기를 만날 텐데

도저히 건널 자신이 없다.

돌아가자니 땡볕길을 4km나 걸어야 된다.

그 길로 가면 따오기를 만나기는 틀렸다.

 

일전에 겨울에 갔었던 출렁다리를 건너 걷고 또 걸었다.

사람도 없는 길을 걸으며 코로나 마스크도 쓰고 햇볕 가리개로 얼굴까지 덮었다.

바람막이까지 걸치고 따가운 햇살을 걷고 있다.

 

미련한 건지 미련 곰탱인지 나도 분간이 안 된다.

주차해 놓은 생태학습관 그늘진 긴의자에 앉아 비로소 바람막이부터 벗었다.

떡이 남아 그 놈을 먹는답시고 그제사 마스크도 벗고 얼굴 가리개도 벗었다.

 

나는 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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