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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류·동물

흰꼬리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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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하지 않을 때 얻는다.

 

■ 언제 : 2021. 1. 30.(토)

■ 어디로 : 늘 가던 거기

■ 누구랑 : 혼자

 

 

오늘은 어디로 가지.

갈 곳은 많고 기다리는 곳은 없다.

 

최정산을 향했다.

새를 찍다가 어렴풋이 거기 가면 양진이가 있다는 소식을 주워 들었다.

 

어디 있는지 정확한 지점도 모른 채 무작정 갔다.

갔다간 그냥 한 바퀴 돌고 허무하게 내려왔다.

얘가 어디 있는지 도무지 찾을 수가 없다.

바람은 불고 날씨는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아무도 없다. 혼자다.

 

양진이를 못 보면 수목원으로 가 상모솔새를 만나볼까 했는데

주말이라 수목원에 새 찍으러 가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란 생각이 들었다.

여긴 평일에도 사람들이 많지만 주말엔 사람들이 더 많이 온다.

주말이나 공휴일 같은 날은 안 가는 게 좋다.

그게 새한테도 좋고 나도 좋고 너도 좋다.

 

최정산이면 청도 유등교가 가깝다.

최근에 유등교에서 본 원앙 군무가 눈에 삼삼했고

여기서 가까운 곳에 있었기 때문에 접근성도 좋다.

 

유등교는 오늘로 세 번째 방문한 날이다.

두 번 가서 두 번 다 재미를 톡톡히 봤다.

오늘은 양보다 질을 중심으로 딱 한 장만 얻고 싶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원앙이 안 보인다.

없을 리 만무한데 어떻게 된 영문이지...

 

얘들을 찾아 보기로 했다. 하천 끝까지 올라갔다.

그래도 안 보인다.

이 녀석들, 뭔 일이 있나?

여긴 야들 밭인데...

 

여기까지 와 빈손으로 돌아서자니 괜히 심통만 난다.

조복 없는 날은 백날 다녀봤자 헛일이다.

그럴 땐 바깥 바람쐬러 왔다고 생각하는 게 몸에 이롭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탐조하러 가다보면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길을 나설 땐 마음을 비우고 나서야 함을 또 한 번 깨닫는다. 

 

이제 흰꼬리수리가 있는 곳밖에 갈 때가 없다.

양진이도 원앙도 물건너 갔으니 오늘은 욘석 볼 일만 남았다.

하지만 얘를 보는 일도 만만치 않다.

해서 앞서 경험한 대로 기대치는 다 내려 놓고 갔다.

오늘이 올 겨울 일곱 번째 방문인가 보다.

 

둑방 건너편에 차량 두 대, 내가 가는 쪽에 차량 한 대가 서 있다.

내가 간 곳엔 연륜 지긋한 어르신 한 분이 촬영 준비를 마친 채 대기 중이었다.

이쪽은 멀어 오후엔 건너편으로 다들 몰리는데 이 분 혼자 여기 있다.

어째 강변에 휑한 바람만 부는 게 수리가 올 것 같은 느낌이 전혀 없다.

 

차창 문을 열고 영감님께 "오늘 봤습니까' 했더니

본인도 방금왔다며 마냥 기다려 본다고 하셨다.

 

언제 올지 모를 수리를 마냥 기다리기도 그렇고 해 내처 올라갔다.

이럴 땐 확실한 곳부터 먼저 가는 게 이득이다.

더 위로 가면 물닭이 지천이다. 여긴 확실하다.

운 좋으면 평소 못보던 오리도 볼 수 있을지 모른다.

 

생각대로 물 반 물닭 반이다.

물닭 틈바구니에 쇠오리도 있고 흰뺨이도 있다.

기대했던 다른 오리는 눈에 띄지 않는다.

물닭은 마치 강바닥에 촘촘히 박힌 까만 돌멩이 같다.

겁 많은 녀석들이 머리 수가 많아 그런지 가까이 다가가도 달아나지도 않는다.

촬영하기에 아주 좋은 거리를 유지해 주었다.

녀석들과 30분쯤 어울리다 흰꼬리수리쪽으로 갔다.

 

오늘 일진을 봐 가봐야 허방일 거다.

아예 마음을 비웠다.

 

*

 

물닭과 놀다 오는 사이 수리 촬영 현장엔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다.

늘 보던 사람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지만,

이제 나도 촬영 좀 다녔다고 날 알아봐 주는 사람도 더러 있다.

파랑새 육추 사진을 찍으며 서로 인사를 나눈 사람이 날 먼저 알아보고 인사를 했다.

반가웠다. 이런 곳에선 외톨이 마냥 혼자 노는 것 보다 서로 교류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건 좋은 현상이다.

정보를 교환할 수도 있고, 언제 올지 모를 새를 기다리며,

탐조에 관한 얘기를 나누다 보면 지겨움도 덜하고 얻는 것도 많다.

나는 아직 조류 탐조가로선 부족한 면이 많은 사람이다.

새를 탐조하자면 정보력이 자산이다.

 

수리가 있는 포인트에 도착하고 대략 30분쯤 지났나 보다.

여기서 만나 얘기를 몇 번 나눈 적이 있던 프로 수준의 탐조가 한 분이

"어! 저기 나타났다."라며 함께 얘기하던 도중 갑자기 재바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쉽게 나타날 것 같지 않던 분위기 였는데

흰꼬리수리 한 마리가 위풍당당하게 파란하늘을 맴돌며 나타나 주었던 것이다.

난, 미리 카메라 세팅을 하고 있었기에 녀석을 보자마자 샷을 날리기 시작했다.

 

잠시 하늘을 맴돌던 수리가 우리가 있는 곳을 향해 앉았다.

고맙게도 내가 있는 가장 가까운 곳에 앉았다.

하지만 앵글 속에 들어오는 거리감은 500mm 렌즈로 감당하기엔 거리감이 좀 있었다.

그래도 올 겨울 여기 일곱번 와서 두 번째 맞는 행운이다.

 

잠시 앉아 숨고르던 녀석이 금방 다른 곳으로 날아갔다.

멀지 않은 곳이었지만 사진기상으론 거리가 있어

 조금이라도 더 가깝게 접근하기 위해 찍사들이 우루루 움직이기 시작했다.

난, 대충 감을 잡고 삼각대에 장착한 사진기를 통째로 둘러메고 빠른 걸음으로 움직였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모두 차를 가지고 교량쪽을 향해 달려간다.

 

내가 가려고 하는 곳이 가깝고 이동거리도 짧은데

굳이 차를 가지고 이동하는지 이해 할 수가 없었다.

아마 다들 마음이 급해 한 걸음이라도 더 빨리 가기 위해 차를 이용하나 보다고 생각하며

난, 나대로 부지런히 움직였다.

그러고 보니 사진기를 들고 뛴 사람은 나혼자밖에 없다.

 

역시 나는 아직 초보인 반면 다른 사람들은 모두 빠꼼이었다.

내가 가는 곳은 도랑이 있어 더 이상 근접하기 어려웠으며,

차를 가지고 교량쪽으로 이동한 사람들의 사정거리가 훨씬 더 좋아보였다.

 

뒤늦게 이런 상황을 알고난 난, 사진기를 통째로 놔둔 채 차를 향해 뛰어갔다.

다시 무거운 사진기를 들고 뛰어 갈 순 없었다.

그 사이 녀석이 날아갈까봐 마음만 분주했다.

어떻게 찾아온 기회인데 이 상황을 놓칠 순 없다.

 

허겁지겁 사람들이 모인 곳으로 달려가니 내가 꼴찌다.

다행스럽게도 녀석은 대물 잉어를 한 마리 낚아 먹기 바빴다.

덕분에 촬영하는덴 지장이 없었다.

오늘따라 욘석이 왜 그리 이쁘게 보이는지...

 

짜슥 역시 수리가 아니랄까 봐 풍채가 남다르구먼.

대물 잉어 한 마리를 아예 아작 내고 있다.

10여분 정도 식사를 했나 이제 배가 불렀는지 또 자리를 뜬다.

 

대충 찍을 만큼 찍었다만 우린 관성이 붙어 마치 자석에 끌리듯 녀석을 따라 움직였다.

이번에는 좀 더 멀리 앉았다.

그래도 기분은 넉넉하다.

충분히 찍어서 그런지 멀리 앉았지만 야속하지 않다.

 

원했던 장면을 다 주진 않았지만

오늘 만큼 기분 좋은 날도 없다.

수리의 생활을 지켜보며 인간 세상과 다름없다는 냉혹함도 함께 느꼈지만,

어떡하겠나 그게 자연이고 순리인 걸...

자고로 순리는 거역하기 어려운 법이다.

 

*

 

「나는 녀석을 잡고

녀석은 잉어를 잡았다.」

 

「녀석은 배를 채운 후 날아갔고

나는 녀석을 잡은 후 엔진에 시동을 걸었다.」

 

녀석이 먹다만 먹잇감은 갈매기가 독식하고 있다.

까치와 까마귀가 독차지 하던 몫을 갈매기가 갈무리한다.

자연의 순리는 주고 받는데 있다.

 

제물이 된 잉어의 망양지탄(望洋之嘆)

순리라 여기기엔 냉혹한 면이 없지 않다.

하지만 어쩌랴...

그 또한 순리고 이치인 것을!!!

 

양진이와 원앙을 보러 갔을 땐 욕심이 가득했다.

그러나 욕심은 내게 그 무엇도 주지 않았다.

 

흰꼬리수리를 보러 갔을 땐 아예 마음을 비웠다.

비운 그릇엔 예상치 않았던 그림으로 가득찼다.

 

새를 보고 찍는다는 건 얘들을 한 마리라도 더 보겠다는

욕심으로 점철된 탐조가들의 과욕만은 아니다.

 

새 한 마리 보고

마음 한 번 비우고

 

새를 찾아 나서는 건

마음을 비우며 자아를 발견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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