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꼬리수리
■ 언제 : 2021. 1. 11.(일)
■ 어디로 : 금호강 상류
■ 누구랑 : 새찍으러 다니면서 만난 나이든 총각과
흰꼬리수리! 드디어 만났다.
그것도 제대로 만났다.
철원에서 보긴했지만 그 때는 높은 하늘에 있어 만족도가 낮았다.
며칠 전 큰 맘 먹고 카메라 바디를 업그레이드 했다.
야생화를 겨냥해 산에 다닐 땐 그냥 표준렌즈인 아빠 카메라로 불리는 D5300만을 사용했다.
내겐 그 카메라가 만능이었다.
풍경, 인물, 야생화 등 웬만한 사진은 그로 가능했다.
어느 순간 새가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렌즈의 한계를 느낀 불길한 징조이기도 했다.
바디를 바꾸기엔 내가 언제까지 새를 접할지 자신할 순 없었지만,
우선 아쉬운 대로 렌즈만 바꾸기로 했다.
18-300mm 렌즈로 갈아탔다.
결국 새가 렌즈를 갈아타게 만든 꼴이다.
이 렌즈는 나름 만능이었다.
야생화부터 웬만한 거리에 있는 새들까지 두루 섭렵이 가능했다.
나한텐 더도 덜도 아닌 딱 맞춤형 렌즈였다.
이 렌즈로 조선 팔도 다 돌아다녔다.
군인이 개인 화기를 목숨같이 여기듯 나도 얘를 그리 다루었다.
어디 길만 나서면 목에 둘러메고 다녔다.
가까이 또는 약간 먼 거리에서 노는 새들은 무리가 없었다.
속칭 대포라 얘기하는 렌즈조차 부럽지 않았다.
근데 멀리 조금 더 멀리있는 평소에 보기 힘든 새들을 만났을 땐 이녀석도 역부족이었다.
새를 가까이 하는 마음은 더욱 커지고 욕구는 팽창되어만 갔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애초에 대포를 장만하는 건데 싶은 때늦은 후회가 밀려온다.
대포 가격은 감당하기 너무 벅찼다.
돈도 안 되는 취미 생활에 그런 고가의 렌즈는 사치라 생각되었다.
아니, 생각되었다기보다는 분명한 사치임에 틀림없었다.
큰 맘 먹고 500mm로 갈아탔다.
이 정도도 나한텐 감지덕지라 여겼다.
결국 새가 또 렌즈를 갈아타게 만들었다.
500mm도 대포에 준하는 급이다.
600mm 대포를 장착하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보면 가끔 기가 죽기도 하지만
난, 거리낌없이 그들 틈에 끼어 마구마구 셔터를 눌러댔다.
300mm로 엄두도 못내던 장면을 건졌을 땐 마치 하늘의 별을 딴 기분이 들었다.
이 정도면 내 사전에 더 이상 카메라 업그레이드는 없다고 자신했다.
이 정도면 충분하고도 넘친다고 봤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사실은 또 다른 복병이 대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렌즈는 웬만큼 업그레이드 됐는데 바디가 문제였던 것이다.
내가 가진 바디와 렌즈의 조합이 어울리지 않았지만, 그래도 바디 바꿀 생각은 코딱지만큼도 없었는데,
부족한 대로 맞추어 쓰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D5300 바디에 500mm 렌즈는 구색이 맞지 않았다.
양복 바지에 고무신 신은 꼴이다.
벼르고 벼르다 결국 바디도 갈아탔다.
사진찍는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면 다들 나와 같은 경우를 겪었더라만
나도 결국 예외는 아니었다.
그렇게 소원했던 것은 아니지만 결국 D850으로 갈아탔다.
이녀석을 구입하느라 거금을 투입했다.
괜히 아내가 장난스럽게 이번에 이자가 나왔으니 그것 나오면 하고 싶은대로 하라고 하는 말 한 마디에
그거 좀 앞당겨 쓰자며 바로 유통단지로 달려가 확 바꾸어 버렸다.
늘 지나가는 말로 바디가 못 받쳐 준다고 노랠했더니 아내도 내심 바꿔 주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바꾸러 갔을 땐 사실 D500을 겨냥하고 갔다.
내가 가지고 있는 500mm 렌즈엔 D500이 적격이었다.
그런데 검색을 할 수록 카메라를 좀 아는 친구들과 상담을 할 수록 더 고가의 바디가 욕심이 났다.
아내는 **만원이면 되겠지라고 생각한 것 같은데
난 삼각대까지 교체해 **만원을 질러버렸다.
카메라 상사에 가기 전 아내한테 넌지지 그런 맘을 비추어 놓기는 했다.
결국 D850으로 갈아탔다.
이 정도면 더 이상 바디 욕심은 낼 필요가 없다.
거의 전문가급에 속하고 자동차로 비교하자면 제네시스급에 해당한다.
산으로 들로 댕기자니 자동차 유지비가 만만치 않아 자동차도 전기자동차를 샀는데
카메라는 제네시스급이다. 졸지에 경우에 넘친 호사를 누린다.
결국 새가 바디까지 바꾸어 버렸다.
이눔의 새!!!
이제 다 갖추었다.
(ㅎ 나중에 또 600mm 이상 욕심낼라... 이제 더는 욕심을 내지 않을란다.)
카메라 찍는 기술적인 능력만 더 향상시키면 된다.
바디가 바뀌니 사용 기능이 영 어색하다.
같은 기종인 니콘이지만 많이 다르다.
매뉴얼도 차근차근 읽어보고 유튜브로 동영상도 더러 봤다.
그래도 익숙하지 않다.
카메라를 업그레이드 하고 기능 시험도 할 겸 동네 가까운 금호강가로 들고갔다.
아무래도 익숙하지 않다.
오늘은 새 사진을 찍다가 만난 실한 사람과 함께 흰꼬리수리를 찍으러 갔다가
두 번 공친 장소로 갔다.
아침 9시 30분에 만나 근 5시까지 촬영했다.
근 8시간여 만에 흰꼬리수리는 두어번 정도 나타났다.
그 중간에 참매도 보고 황조롱이도 만났다.
날씨가 많이 추워 생전 입지 않던 내복에다가 군밤장수 모자까지 쓰고 완전무장을 단단히 했다.
그랬더니 이 정도 추위는 충분히 견딜만 했다.
고진감래라더니 오늘은 대박이라 할 만큼 귀한 장면을 접하기도 했다.
참매가 물닭을 잡아 그 앙칼진 발톱으로 물속에 물닭을 집어 넣어 질식을 시키더니
강둑에 있는 찍사들을 견제하면서 느닷없이 질식사한 물닭을 들고선 가까운 숲덤불 속으로 날아가버렸다.
지켜본 것은 30여분, 날아간 것은 순식간이었다.
다행히 찰나적인 순간을 앵글에 담기는 했지만, 뭔가 마음에 안 든다.
셔터조작이 미숙했던 것이다.
오늘은 그래도 행운이었다.
내 사는 멀지 않은 곳에서 이런 귀한 경험을 하다니
내가 애용하는 새 밴드의 밴친님들이 천리 먼길 마다하고 다니는
강릉 남대천, 경기 팔당댐 하나도 안 부럽다.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카메라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능력 향상이다.
잘 찍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