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덕왕릉 후투티 육추
■ 언제 : 2023. 06. 10.(토)
■ 어디 : 옥산서원, 흥덕왕릉, 가남지
■ 누구랑 : 혼자
■ 탐조 내용 : 큰부리까마귀, 찌르레기, 후투티 육추
옥산서원까지 왔으니 흥덕왕릉 솔숲을 지나칠 수 없다.
내친김에 여기까지 왔다.
여긴 솔숲이 명품이다.
왕릉을 지키고 선 솔숲은 마치 파수를 서고 있는 병사들의 진영처럼 보인다.
솔숲은 큰부리까마귀가 점령한지 오래다.
누구라도 침범하면 일단 소리로 침략자를 제압한다.
한 마리가 '까악 까악' 울어대면 솔숲은 순식간에 까마귀의 울음바다가 된다.
적이 나타나면 북을 두들겨 적의 침입을 알리듯 이 녀석들은 소리로 전달한다.
내가 나타나자 녀석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소리를 지르며 악을 쓰는가 싶더니 심지어 머리 위로 휙휙 날아다니며 나를 위협한다.
난, 녀석들이 아무리 발악해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마치 니들은 내 상대가 아니라는 듯 적당히 무시한 채
그저 솔숲이 내뿜는 피톤치드를 마시며
솔숲 사이로 잔잔하게 불어오는 바람에 내 몸을 맡겼다.
큰부리까마귀떼와 까치들
공교롭게 그 틈바구니 속에 후투티가 둥지를 틀었다.
지금 소나무 수공에 새끼가 자라고 있는 것이다.
둥지로 잘 들어가지 않던 어미가 내가 나타나자 위협은커녕
오히려 우군을 만난 듯 더 바쁘게 더 자주 먹이를 공급한다.
새끼는 어느 정도 자란 듯 보이는데 까마귀의 위협에 감히 부리조차 내밀 엄두를 못 낸다.
내친 김에 삼각대와 의자까지 가져와 자리를 잡았다.
까마귀가 뭐라 하든 난 여기서 후투티가 육추하는 사진도 찍고
솔숲이 내뿜는 피톤치드도 맘껏 마실 참이다.
혼자 독식이다.
다행한 건 후투티가 내가 없었을 때보다
있으니 더 안정된 경향을 띤다.
아마도 까마귀 때문에 신경이 많이 쓰였나 보다.
까마귀들이 둥지 가까운 소나무 위에 모여 짖어대니
어미 입장에선 불안하고 초조했을 거다.
오늘은 육추에 방해를 끼치는 게 아닌 도움을 주는 것 같아
촬영하는 내내 마음도 편하다.
멍상(멍때리기+명상)을 끝내고 돌아서는 발걸음이 무겁다.
인적이 드문 여기서 후투티 유조가 이소하면
십중팔구 유조는 까마귀나 까치의 밥이 되기 십상이다.
녀석들 내가 가더라도 무사해야 할 텐데
아쉽게도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
나는 덕분에 멍상 잘 때리고 간다만 녀석들의 안위는 보장할 수 없다.
다만 무사하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