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곳에서 호반새랑 두 번째 만남
오늘은 사실 호반새를 만나러 간 것이 아니라 모처에 파랑새를 만나러 간 길이다.
그저께 여기서 만난 분이 파랑새 육추하는 곳을 알려주기에 덮어 놓고 찾아갔다.
애써 찾아 간 곳엔 파랑새의 흔적은 없었다.
파랑새 둥지 같은 곳엔 거미줄이 쳐져 있고
까마귀와 후투티만 후두둑 날아다녔다.
파랑새는 없었다.
꿩대신 닭이라고 호반새나 보러가야겠다.
오늘 가봐야 그저께 본 그대로의 모습이겠지만,
엎어진 김에 쉬어 간다고 간 김에 들렀다.
오늘 가도 앞으로 두어 번은 더 가야 한다.
오늘도 저번처럼 호반새 촬영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
분답지 않고 적당히 있었다.
파랑새는 오후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먹이 공급을 원활하게 하지 않는다.
인터벌(interval)이 길다.
오늘 여기서 촬영하는 사람들은 모두 고수다.
자주 다니다 보니 제법 낯익은 얼굴이 보인다.
수인사 정도 나누는 사이가 됐다.
뒤늦게 나타난 어떤 고수는 모처에서 청호반새를 담고
부랴부랴 또 이리로 달려왔다.
이미 둥지를 틀 때부터 이 자리를 알고 있었다고 한다.
내가 이 장소를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사람인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다.
알고보니 이미 여길 점지해 놓은 사람은 한 둘이 아니었다.
역시 아직 난 피라미에 불과했다. 우물 안 개구리였던 것이다.
부근에 파랑새 육추 현장을 다녀와 허탕 쳤다고 하니
거긴 파랑새가 나타나지 않은지 몇 년 되었다고 한다.
이 사람들은 훤하다.
그저께 내게 일러준 그 여자분도 아마 확실하게 모르는 상태에서 나한테 알려준 모양이다.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은 비 때문에 날씨가 많이 흐렸다.
이런 날씨는 카메라 감도와 스피드 조작이 쉽지 않다.
스피드를 확보하면 감도가 올라가 사진은 짜글짜글해진다.
오늘은 성의만 보여야겠다.
5시쯤 되니 예고했던 비가 한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했다.
다음을 기약하고 판을 접었다.
그래도 수확은 있었다.
또 다른 곳에 파랑새가 육추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사람을 만나니 정보를 얻는다.
결코 헛걸음 한 것이 아닌 것이다.
길을 나서 도로로 나오니 비가 쏟아진다.
타이밍이 기가 막힌다.
굵은 빗방울을 뚫고 달리는 기분이 꽤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