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제 : 2020. 6. 2.(화) 새벽 7시 도착
■ 어디로 : 왜가리가 있는 마을
■ 누구랑 : 혼자
흔적
벼르고 벼르고 있다가 오늘 드디어 아침 일찍 출사 길에 나섰다.
씻지도 않고 먹지도 않고 달려가 아침 7시경 목적지에 도착했다.
주로 낮에 갔더니 대부분 먹이 사냥 차 출두하고 없어
이번엔 아예 작정하고 새벽에 움직인 것이다.
6시쯤 출발한다고 했으나 아무래도 출발 시간이 늦은 것 같았다.
해는 이미 창창했고 백로와 왜가리는 벌써 먼길 떠났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예감은 적중했다.
그래도 낮보다는 나았지만, 어미 새 대부분은 먼길 떠나고 없었다.
모두 모여 있는 시간대에 가려면 적어도 아침 5시 이전, 저녁 8시 이후라야
모두 모여 있는 진풍경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 이 시간에 여기 남아 있는 새는 대부분 어린 새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왜가리도 중대백로도 모두 어린 티가 많이 났다.
녀석들, 그래도 그동안 많이도 자랐다.
얼핏 봐선 성조 느낌이 들 정도다.
자기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목을 길게 빼고 어미 새를 기다리는 모습과
날갯짓을 하는 정도를 보고 유조임을 알았다.
그 새 많이 자랐다.
아침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그래도 분위기는 어제와는 사뭇 다르다.
어린 새들이 대부분 나뭇가지 밖으로 나와 성장한 모습을 제대로 보여준다.
골목 적당한 곳에 촬영 장소를 잡았다.
몇 번 애용했던 맘씨 좋은 주인장 옥상에 갈까도 싶었지만,
오늘 아침은 애들 촬영하는 포인트가 굳이 남의 집 옥상까지 가지 않아도 될 성싶었다.
아무리 맘씨 좋은 집이라 하나 새벽부터 남의 집 옥상에 올라가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한참 촬영에 열중하고 있는데 동네 아주머니 한 분이 창문을 열고 창틀을 닦으며 하시는 말씀이
지금은 새가 다 날아가고 없단다.
언제쯤 돌아오느냐고 했더니 해 뜨기 전이나 해 지고 나야 돌아온단다.
아주머니는 새가 반갑지 않으시단다.
지붕이고 마당이고 차 위로 똥을 사사서 성가시단다.
심지어 모내기 하고 난 뒤 먹이를 찾느라 농작물까지도 피해를 입힌단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그래도 쟤들이 우리보다 먼저 여기 있던 터줏이라 어쩔 수 없지"라며
마음 넉넉하게 이해를 하고 계신다.
이 마을에 와서 느낀 건데
이 마을 사람들은 한결 같이 순하고 느긋함이 몸에 베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천성이 어질고 도량이 깊어 보였다.
마을을 귀찮게 하는 새들로부터 참고 이해하며 살아와 그런지
그러려니 하는 맘이 몸에 익었다.
수 천마리의 새들이 재잘거리며 밤낮 구분없이 시끄럽게 하고
더러는 나 같은 사람들이 몰려와 사진 찍는답시고
남의 집 대문간을 기웃거릴 테고
그래도 아무도 싫어하거나 귀찮은 내색을 하는 사람이 없다.
이 마을에 촬영을 와 내가 만난 사람이 여럿있다.
마을의 역사이신 최고령 할아버지
외지 사람을 전혀 귀찮은 내색없이 자기 집 옥상까지 선듯 내어 주는 주인장 내외와 그의 아들
골목 창문을 열며 쟤들이 결코 반갑잖다면서도 그래도 이 마을의 터줏은 쟤들이라던 아주머니
사진 찍으러 왔느냐며 호의를 베풀며 정답게 말을 건네시던 할머니
자기 몸집에 10배가 더 넘는 모판을 손수레에 싣고 겨우 밀고 가시던 꼬부랑할머니
그 꼬부랑할머니마저 새를 찍으러 온 나한테 살갑게 대하며
새는 지금없고 밤에 많다며 정겨움을 전해 주신다.
그밖에 오가며 만난 마을 주민들도 눈빛에 전혀 악의가 없다.
내 나이되면 대충 봐도 안다.
이런 분위기는 억지로 연출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익어 있다. 그 이유가 뭘까?
모르긴 해도 난 이 녀석들이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재잘거리며 시끄럽게 해도
똥을 싸도
모내기 한 논에 들어가 휘적거려도
한 두해가 아닌 오랜 세월 그렇게 적응하며 살아왔으니
절로 도량이 넓어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을도 번성하고
중대백로와 왜가리도 자자손손 번창했으면 좋겠다.
딱새 수컷은 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