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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방

변산반도 및 부안군 일대 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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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산반도 & 부안군 일대 탐방 일기





변산반도, 새만금, 고군산군도 탐방기

 

언제 : 2018. 11. 19.() ~ 23.() 45

어디로 : 변산반도, 내소사, 새만금, 고군산군도

누구랑 : 교장, 부장

 

 

흔적

 

작년부터인가 아니 그 전부터인 것 같다.

서교감이 같이 연수 갈래란 말을 종종 하곤 했다.

무슨 연순데~?”

뭐 그런 연수가 있단다. “! 그거?”

올해도 같이 가자고 해 에이 뭐 할라고 나는 안 갈란다.”

그래도 조 맞추어 한 번 갔다 오잔다.

4명이 조를 맞추면 좋단다.

누구누구 가는데?”

김 교장, 서 교감, 장 부장, 요래 4명이란다.

조합이 괜찮다. 시실 구미가 당기기 시작한다.

 

모두 함께 신청을 했다. 연수 장소는 만장일치로 부산이다.

대구와 비교적 가깝고 볼거리도 많아 아무래도 부산이 제일 낫지 않겠나 싶었다.

그런데 부산을 희망한 우리 네 사람은 모두 다 탈락했다.

이런 ~, 우리 경력도 만만찮은데~

우리 짠밥에서 밀린단 말이지?

뜻밖이기도 했지만 오히려 잘 됐다 싶었다.

굳이 가고 싶지도 않았고, 딱히 가야할 이유도 없었다.

 

이제 연수 갈 생각은 접고 아무 생각 없이 있었다.

그런데 며칠 후 우리 교감 선생님이 추가 모집한다고 다시 한 번 더 내보라고 한다.

마음 씀은 고마웠지만 그닥 땡기는 맛이 없어 안 간다고 했다.

그러고 있는데 서 교감한테 전화가 왔다.

추가 공문이 온 걸 알고 모두 변산으로 신청을 하잔다.

선착순 접수라며 빨리하란다.

얼떨결에 알았다며 접수를 했더니 금방 회신이 왔다.

접수가 되었다고~~~, 곧이어 4명 다 됐다는 연락이 왔다.

예기치 않았던 45일간의 연수는 이렇게 시작된다.

그런데 갑자기 문제가 생겼다. 연수 중심에 서 있던 서 교감이 갈 수 없게 된 것이다.

학교에 뭔 일이 생겨 자리를 비울 수 없게 된 모양이다.

에이, 서 교감이 있어야 되는데, 이렇게 되면 재미없는데~”

정작 가고 싶었던 사람이 못가니 모양새가 좀 그렇다.

이제 와서 서 교감 빠진다고 안 갈 수도 없고 고약하게 됐다.

4명이 한 차로 가면 조가 딱 맞는데 한 자리 비어 못내 아쉽다.

 

1일차

 

남구 대곡동에 살고 있는 김 교장이 북구에 살고 있는 우리를 태우기 위해 칠곡으로 왔다.

이동 방향을 봐도 그렇고 더군다나 얻어 타고 가는 마당에 칠곡까지 오게 하다니

고맙기도 하고 미안키도 하다.

 

시원하게 뚫린 광주-대구고속도로를 달렸다.

산에 다닐 땐 국도보다 못한 88고속도를 자주도 다녔건만,

정작 확장 보수가 완공되고 나서는 오히려 뜸하다.

합천과 거창, 전라도 지역에 있는 산과 지리산을 달리던 생각을 하며,

살포시 헤드레스트에 머리를 뉜다.

어젯밤 잠을 많이 설쳤다. 요즘 밤잠을 많이 설친다.

 

고속도로를 다섯 번 갈아 탄 거 같다.

4시간이 더 걸려 연수 장소에 도착했다.

연수 장소 부근엔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접수를 하면서 보니 벌써 빈자리가 몇 군데 안 보인다.

우리가 늦은 건 아닌데 모두들 일찍도 왔다.

접수하고 강의실에 들어가니 벌써 연수원 측에서 제공한 책과 컵이

사람대신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제일 앞자리만 남았다.

 

점심 식사 후 바로 강의 시작이다.

부담 없이 온 연수지만, 첫날인 만큼 어떤 식으로 연수가 진행되는지 궁금하기도 해

오후 4시간 진행되는 연수를 꼼짝하지 않고 경청했다.

생각보다 연수 내용과 강의 내용이 마음에 들었다.

은퇴를 앞둔 사람들이 평소 궁금하게 여겼던 내용이 강의 주제라 모두 귀가 솔깃했다.

첫날 오후 강의는 우리 세 명 모두 자세하나 흐트러뜨리지 않고 열심히 들었다.

이정도면 모범생이 갖춘 학습 태도라 할 수 있다.

하기야 우리만 그랬던 것은 아니다. 참석한 모든 사람들의 분위기가 다 그랬다.

아마, 연수 첫날이었기 때문이리라~~~

 

오후 강의가 끝나니 바로 저녁 식사 시간이다.

식사를 하고 숙소로 가 간단하게 여장을 정리한 후 채석강으로 밤바람을 쐬러갔다.

숙소에서 채석강까지는 7분 거리에 있었다.

채석강을 여러 번 가긴 했지만 밤바다를 걷는 것은 난생 처음이다.

산책삼아 왔다만 밤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바닷바람이 세다.

편평한 파식대지를 가볍게 밟으며 언덕너머 격포항으로 갔다.

마침 채석강으로 이어진 길이 간조(干潮) 때인지라 바닷길이 훤히 드러나 있다.

내일 이른 아침이 아니면 저 길은 물이 밀려와 사라질 것이다.

밀물이 덮기 전에 채석강을 거닐고 싶기도 했지만, 어두운 밤이라 가는 길이 수월치 않다.

물 빠진 길을 보는 것도 때를 맞추지 않으면 볼 수 없으니

그로서 만족하는 게 나을 것 같다.

 

방파제 끝으로 등대가 보인다.

등대 끝까지 걸었다. 막상 걸어보니 눈으로 보는 것보다 그리 멀지 않다.

바람이 다소 불긴 했지만 이 정도 바람이야 대구 먼 곳에서 여기까지 온 것에 비하면,

당연히 돈 주고도 맞아야 할 바람이었다.

이번 연수의 서막인 만큼 맞을 만한 가치가 있는 바람이다.

 

오늘은 외숙부님 장례를 치르는 날이다.

반짝거리는 등대불이 마치 별이 된 외숙부님께서

잘 갔으니 걱정하지 말라며 안부하는 것 같다.

외숙부님은 소천하시고 어두운 밤바다의 별이 되신 게다.

하늘의 별이 되신 게지.

 

격포항 수산시장으로 갔다.

횟집마다 갑오징어 요리를 큼지막한 글씨로 써놓았다.

우리는 갑오징어란 커다란 글씨에 현혹이 되었다.

글씨에 현혹되어 식당으로 가려다 말고 수산시장으로 갔다.

당연히 식당보다는 시장이고, 가격과 신선도를 봐도 시장이 제격 아니겠나?

그런데 시장 들어간 첫 집부터 다짜고짜 갑오징어 없냐고 물었더니

주인장께선 가볍게 없다는 말만 한 마디 툭 던진다.

요즘 안 나온단다. 다른 곳도 없냐고 물었더니 그렇단다.

숙소에 가 간단하게 소주 한잔만 하려는데 이것저것 장만하기도 그렇고

간단하게나마 안주거리를 챙기자니 별로 마땅치가 않다.

 

뭘 쌌더라? 생각도 안 난다.

간단한 횟거리와 멍게 만원어치를 포함하여 삼만 원이 채 안 될 만큼만 장만했다.

숙소로 돌아와 세 명이 소주 두 병 먹는데 많지도 적지도 않고 적당했다.

김 교장은 교회 장로이기도 하고 원래 술을 마시지 않으니 장 부장과

둘이 한 병씩 나눠 마신 셈이다.

 

하루가 길다.

4시간 넘게 달려오고 오후부터 진행된 연수 개설 강의 4시간 듣고,

저녁엔 채석강과 격포항을 산책했다.

바쁘게 지나간 하루였다.

 

2일차

 

아침 강의를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어젯밤 산책했던 채석강으로 다시 갔다.

어두운 밤, 어설프게 걸었던 길을 다시 다부지게 보고 더 걷고 싶었다.

수업시간을 땡땡이 친 학생들 마냥 강의실을 벗어난 우리 세 사람은

마치 변산지역을 사찰 나온 어사처럼 채석강을 거닐었다.

지질학 교과서 같은 채석강을 사진 한 장 남기는 것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던 것이다.

내친 김에 지질 공부까지 하고 가면 금상첨화 아니겠나?

정작 필요한 강의는 땡땡이 치고 공부는 엉뚱한 곳에서 한다.

 

채석강에 오면 파식대지, 해식애, 해식동굴, 단층, 습곡, 절리 등 지질학적 지형을 모두 볼 수 있다.

채석강은 그런 곳이다.

지질학 전공자는 아니지만 채석강에 왔으니 채석강의 지질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알고 간다면 그 또한 의미가 있다.

여행을 한다는 것은 눈요기가 아니라 공부를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의 여행은 여행의 재미를 배가시킨다.

 

어젯밤 물이 빠진 것이 생각나 격포항까지 가렸더니 젊은 해경 한 사람이 길을 막아선다.

지금은 물이 차서 위험해 갈 수 없으니 돌아 나가야 한단다.

그러고 보니 우리를 막아 선 해경의 말이 맞다.

어젯밤 격포항에서 본 안내 팻말에 그리 적혀 있었다.

물때가 저조 시간을 지난 것이다.

 

왔던 길 돌아서 닭이봉으로 갔다. 채석강에서 10여 분 올라가면 된다.

닭이봉 전망대는 안전한 국립공원 해돋이·해넘이 명소 10으로 선정된 곳이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선정한 해넘이 명소 3곳은 부안 변산반도 닭이봉

태안해안 꽃지해변’, ‘한려해상 달아공원이 있으며

해맞이 명소 7곳은 지리산 노고단, 한려해상 초양도, 경주 토함산 정상

가야산 심원사 일원, 설악산 울산바위, 북한산 둘레길 구름전망대

소백산 제2연화봉 대피소라 전북일보가 소개하고 있다.

 

우리가 닭이봉으로 간 시간은 늦은 아침이라 일몰과는 전혀 상관없다.

채석강에 와 한 번도 올라가 본 적 없는 일몰이 유명한 곳에 처음 왔지만,

아쉽게도 시간대가 맞지 않다.

해넘이 명소 중 닭이봉전망대의 일몰은 그 중 으뜸으로 친다.

변산에 머무르는 동안 닭이봉의 일몰을 볼 기회는 없을 것 같다만,

다행히도 숙소 앞 가까운 곳에 해넘이 채화대가 있다.

더 가까이에는 숙소 7층 전망대에서 볼 수도 있다.

어디서든 변산에 온 김에 해넘이 볼 기회는 애써 만들어서라도 꼭 봐야겠다.

 

닭이봉 전망대는 해넘이 외 또 다른 명물이 있다.

눈여겨보지 않으면 무심하게 지나칠 공산이 크다.

그러나 조금만 관심 있게 보면 전망대 앞에

수종이 서로 다른 두 나무가 엉겨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흔히 사랑나무라 일컫기도 하는 연리목인데,

이 연리목의 정체는 팽나무와 상수리나무다.

평소 산에 다니며 수종이 서로 다른 연리목을 많이 봤었고,

김해 무척산에선 삼상연리목까지 봤다.

그런데 팽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붙어 있는 모습은 처음 본다.

꽁지머리를 하고 장승을 깎고 있는 분의 말씀으론

이 연리목의 특이한 점은 두 나무 모두 많은 열매를 맺는 게 특징이며,

풍성한 열매를 맺는 두 나무가 붙었으니 풍요로움을 상징한단다.

듣고 보니 그도 그렇다.

 

오후에는 새만금으로 갔다.

변산에 왔으니 새만금 코스는 빼려야 뺄 수 없는 정해진 순서랄 수 있다.

새만금은 언젠가 처남댁 상사에 왔다가 능가산을 오른 후,

잠시 들러 냄새만 맡고 갔기에 아쉬움이 남았던 곳이다.

이참에 제대로 돌아볼 심산이다.

새만금 뿐만 아니라 고군산군도까지 낱낱이 돌아볼 작정이다.

특히 고군산군도는 새해를 맞아 우리 육부회에서 가기로 한 곳인 만큼,

눈여겨보았다가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해야겠다.

 

그런데 새만금까지 눈여겨보자니 시간이 여의치 않다.

오후 시간을 이용해 고군산군도까지 다녀오자면 새만금 방조제는 건성일 수밖에 없다.

이번에도 역시 자동차로 휙 지나면서 조망 좋은 곳 나오면 차를 세워 잠시 구경하고,

기껏해야 새만금33센터에 들러 전망대를 가 본 것이 다다.

하지만 그래도 다행한 것은 새만금은 다음날 연수생 모두 현장체험탐방이 잡혀 있어

그때 여물게 보면 된다.

새만금 내용은 그때 다루기로 하자.

 

새만금 방조제가 끝나는 지점에 다다르면

군산 시내로 가는 길과 고군산군도로 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우리는 왼쪽 방향으로 섬과 섬 사이를 잇는 다리를 향해 차를 몰았다.

선유도가 있는 고군산군도로 가는 길이다.

 

고군산군도(古群山群島)는 한국 사람이라면 꼭 가봐야 할 한국관광 10선으로

전라북도 군산 앞 바다에 길게 줄을 지은 모양으로 죽 늘어선 여러 섬들을 말한다.

이러한 섬을 우리는 군도(群島)라 부르기도 하고 열도(列島)라 말하기도 한다.

새만금을 지나 고군산군도로 들어서면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다.

군도의 수려한 자연풍광도 풍광이려니와 다리로 이어진 섬들을 지나노라면

현대 토목기술과 자연미가 이토록 잘 어우러질 수 있는지 경악을 금치 않을 수 없다.

교량공사로 인해 자연이 많이 훼손되었겠지만, 그래도 쇠사슬 엮듯

한 줄로 늘어선 섬을 보자니 그저 놀란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뿐이다.

 

다리로 연결된 고군산군도를 대표하는 섬은

신시도-무녀도-선유도-장자도-대장도 순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 섬들은 다리로 길게 이어져 이제 섬 아닌 섬이 되었다.

이 섬들 중 신시도가 규모면에서 가장 크고, 선유도는 군도의 중심에 있다.

우리는 가장 먼 장자도부터 갔다.

대장도와 짧은 교량 하나로 연결된 장자도는 크지 않은 자그마한 섬이었지만,

장자도에도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는 편의 시설은 제대로 갖추고 있었다.

바로 곁에 있는 대장도는 장자도와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여

다가오는 1월 부부 모임 때 갈 요량을 하고 바쁜 곳부터 먼저 다니기로 하였다.

 

장자도에 예쁘게 색칠한 다리가 하나 보인다.

옛 다리로 지금은 선유북길이란 고군산군도를 트래킹하는 길목으로 활용한다.

우리는 그 예쁜 다리마저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다리를 건넜다.

짧은 다리였지만 알고 보니 다리를 건너면 장자도에서 선유도로 넘어간다.

고군산군도 트래킹 코스는 그렇게 선유북길이란 이름으로 쭉 이어진다.

다리 밑으로 서정적인 포구가 보인다.

포구가 아늑하고 아름다울 뿐 아니라 웬만한 비바람에도 끄떡없을 거 같다.

 

고군산군도를 제대로 보자고 덤벼든다면 누가 뭐래도 걷는 게 최고지만,

걷는 게 여의치 않을 경우엔 자전거나 전동바이크를 이용해도 된다.

우리는 갈 곳도 많고 볼 곳도 많아 장자도에서 잠깐 머물다 선유도로 차를 몰았다.

이제부터 왔던 길 거꾸로 돌아나간다.

 

선유도(仙遊島)는 고군산군도의 중심이다.

주변에 섬이 즐비했지만, 다 돌아 볼 여유가 없어

우리는 주로 선유도를 중심으로 탐방할 생각이다.

선유도는 의미 그대로 해석하면 신선이 노닌다는 섬이다.

얼마나 아름답고 신비로웠으면 섬 이름을 仙遊島라 했겠는가?

 

자동차를 타고 선유도를 한 바퀴 돌았다.

큰 차로 좁은 길 마다하지 않고 구석구석 누비고 다닌다.

선유도도 좋지만, 새 차 뽑은 지 얼마 되지 않는 SUV 차량으로

경운기나 다닐만한 좁은 골목길을 마치 모닝처럼 자유롭게 운전하는 김 교장이 더 신기했다.

이 양반도 보아하니 운전하는 것도 좋아하고 여행 꽤나 즐기는 위인이다.

덕분에 편안하게 여행은 잘 한다만, 혼자 애 먹는 것 같아 괜스레 미안하다.

 

선유도(仙遊島) 어귀에 들어서면 커다란 바위덩어리 두 개가 서로 마주 보고 선 모습부터 보인다.

선유도의 명물인 망주봉인데 한 눈에 봐도 범상치 않은 모습이다.

보통 위상이 저 정도면 뭔가 얘기가 서려있다. 알아보자.

왜 망주봉(望主蜂)이라 했는지?

 

망주봉(望主蜂)은 그 옛날 간신들의 모함으로 귀양 온 한 신하가 있었는데,

후에 그 사실을 안 임금이 기회를 봐 다시 불러주겠다고 약속을 했단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임금이 다시 불러줄 기미가 없자 서운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자기를 다시 불러 주겠다고 한 약속을 까맣게 잊어버린 임금을 그리워하며,

매일 바위산에 올라 한양을 바라보았다고 한다.

망주봉(望主蜂)이란 야속한 주군을 기리는 애틋한 신하의 마음인 것이다.

 

망주봉 앞에 명사십리라 일컫는 아미(蛾眉) 모양을 한 하얀 모래사장이 드넓게 펼쳐져 있다.

십리는 아니지만 모래사장이 고와 명사십리란 이름을 그대로 쓴 선유도해수욕장이다.

여긴 만조 시에도 또는 썰물이 진 뒤 갯벌이 드러나도 보는 이들의 가슴이 탁 트인다.

예전에는 모래사장 주변에 해변의 모래 언덕을 따라 해당화가 무리 지어 심어졌다고 한다.

오래 전 김 교장이 아내와 왔던 적이 있었던 모양인데 김 교장도 해당화가 만발했던 걸 기억했다.

그런데 지금은 해당화가 한 그루도 안 보인다.

이유인즉슨 어떤 경찰지서장이 해당화가 당뇨병에 특효라고 캐가기 시작한 이후,

당뇨병 환자들이 너도 나도 서로 뽑아 가는 바람에

지금은 해당화 한 그루 볼 수 없는 모래 둔덕만 남았단다.

 

선유도 해변을 단체로 여행 온 한 무리의 아낙들이 여유롭게 걷고 있다.

모래알처럼 투명한 모래사장과 여인들의 가벼운 발걸음이 잘 어울린다.

우리도 자동차를 소형주차장에 주차하고 조금이나마 선유도를 음미하기 위해 모래사장을 거닐었다.

해변과 멀지 않은 곳에 자그마한 섬이 하나 보인다.

해변 모래사장과 연결된 짧은 다리로 이어진 이 섬은 솔섬이라 하였고,

솔섬은 선유도 어귀의 타워 높이 45m, 길이 약 700m의 선유스카이라인 종착지 역할을 하였다.

마침 젊은 처자들이 스카이라인을 타고 바다 위를 내려오며 괴성을 지른다.

바다 위를 빠른 속도로 내려오니 모골이 송연할 만도 하다.

솔섬 다리를 건너며 뒤돌아보니 선유도해수욕장과 망주봉이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이런 그림은 놓치기 아깝다. 김 교장과 장 부장을 모델로 사진을 담아본다.

 

선유도와 이별하고 무녀도를 통과하는데 도로 오른편쪽 전망 좋아 보이는 곳에

주차 공간이 마련된 한적한 곳이 보인다. 무녀도란 섬이다.

그 아래쪽에는 촌락이 있고, 평화롭게 보이는 자그마한 포구가 있다.

어미닭이 알을 품고 있듯 온화한 느낌이 든다.

휴식도 취할 겸 우리는 여기서 잠깐 쉬어갔다.

갈매기 한 마리와 가마우지 한 마리가 할 일 없이 따스한 햇볕을 쬐고 있다.

서정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포구와 잘 어우러진다.

 

고군산군도를 떠나는 마지막 길이 아쉬워 신시도로 들어갔다.

물론 내일 연수생 단체로 고군산군도를 다녀가겠지만 그저 지나가기만 할 것이다.

신시도는 고군산군도를 이루는 섬 중에서 가장 큰 섬이다.

무엇을 보여주고 볼 것인가를 기대해서 방문했다기보다는

길이 있으면 그저 막연하게나마 가고 싶어 하는 여행자의 기본적인 습성이랄까

, 그런 마음으로 들렀다고 보면 된다.

여물게 다녀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지만, 그나마 신지도란 섬에 발을 디뎌 본 것으로 만족한다.

 

다시 새만금 방조제를 내달린다.

방조제 중간쯤 우뚝 솟은 전망대가 있다. ‘새만금33센터전망대다.

고군산군도를 갈 때 이미 눈도장을 찍어 두었던 곳이다.

새만금33센터는 세계 최장을 자랑하는 33.9km의 새만금 방조제 중간 쯤 있다.

전망대 높이가 33m에 달한다. 33센터란 이름은 여기에서 왔다.

전망대는 일반인들에게 안전 등을 고려해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개방한다.

고군산군도와 연결된 도로, 자연쉼터, 아리울 예술창고 등

주변관광지와 연계하여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새만금호 내부를 360° 둘러볼 수 있고, 국내 최대 유압식 배수갑문인 신시배수갑문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조망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하루가 여물고 알찼다.

숙소로 돌아와 저녁 식사를 하고 당구나 한 게임하며 몸 좀 풀려고 했더니

게임비가 너무 비싸다.

10분에 2,000원하니 치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진다.

박 대감과 서 교감이랑 가끔 당구를 치긴 하지만 우리는 700원짜리 당구를 친다.

싼 맛에 치는 당구를 2,000원 주고 치자니 이건 뭐 게임이 아니라 사치란 생각이 든다.

이런 가격이라면 치고 싶어 환장을 해도 못 치겠다.

연수 기간 내내 그래도 치는 사람이 있는지 오가며 눈여겨봐도

당구장엔 날파리 한 마리 안 보인다.

연수 끝나기 전 날 김 교장이 사우나하고 오면서 딱 한 팀 친 것을 봤다고는 했다.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3일차

 

오늘은 연수생 단체로 새만금 방조제, 고군산군도, 능가산 내소사를 탐방한다.

두 대의 관광버스가 움직이는데 문화해설사까지 동승했다.

어제 우리끼리 다닌 것에 비하자니 이건 뭐 차원이 다르다.

해설사를 동반하면 요소요소 적절한 설명을 들을 수 있어 좋고,

우리끼리 자유 여행을 하면 바람 부는 대로 갈 수 있어 좋다.

일장일단이 있다.

 

어제 우리끼리 갔었지만 새만금은 오늘을 위해 시부저기 다녀온 만큼

오늘은 해설사로부터 들은 새만금에 대한 얘기를 소상하게 풀어나갈까 한다.

먼저 새만금이란 명칭은 어디서 왔는지 그 의미는 무엇인지 그것부터 알아보자.

 

'새만금'이란 우리나라 최대의 곡창지대인

만경평야와 김제평야를 합친 크기의 새로운 땅이 생긴다는 뜻으로,

만경평야의 ''()자와 김제평야의 ''()자를 따서 새만금이라 명명하였다고 한다.

예부터 김제평야와 만경평야를 일컬어 '금만평야'로 부르기도 했는데,

새만금은 이 '금만'이라는 말을 '만금'으로 바꾸고,

새롭다는 뜻의 ''를 덧붙여 새만금으로 만든 말이다

 

새만금 전시관에 들러 먼저 홍보관에서 영상을 본 후,

해설사가 이끄는 대로 따라 다니며 상세한 설명을 들었다.

다 생각나지 않지만 홍보 영상과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서야 비로소 실감이 났다.

우리끼리 다니며 눈요기 한 것에 비하면 질적으로 달랐다.

차를 이용해 지나갈 땐 그저 엄청난 규모에 놀라기만 했었다.

해설사의 설명으론 방조제로 인해 생긴 땅이 서울의 1.5배 크기라 했던가?

뭐 대충 그랬던 것 같다.

군산시, 김제시, 부안군 앞바다를 연결하는 33.9 km의 방조제를 쌓아

그 안에 간척 토지 291km², 호수 118km²를 만들었다는데 도대체 실감이 나지 않는다.

 

간척사업으로 지도를 바꾸어 버린 거대한 땅덩어리는

미래 첨단산업 단지 조성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단다.

새로운 신천지에 뭔 일이 어떻게 이루어질지 궁금하다.

해설사의 설명이 있었지만 다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서 앞으로의 사업 내용을 소상하게 알고 싶어

새만금홈페이지에 들어가 그 내용을 유심히 살폈다.

새만금은 현재 많이 변해 있었지만, 앞으로 또 이렇게 변화할 예정이다.

 

- 국가경쟁력을 확보하고 고부가가치 농산물 생산과 식품산업시설 조성을 위한 농업단지 조성

- 첨단산업단지 등을 유치해 자연이 품은 첨단산업활력도시 개발

- 신재생에너지단지, 미래 신·재생에너지 산업 및 친환경적인 녹색에너지단지 조성

- 가족형 관광과 해양레저가 함께하는 관광도시로 개발

- 해양·생태·환경교육시설 및 레저시설 건설

- 자연과 어우러진 주거 문화공간을 마련하기 위한 배후도시 건설

- 동북아 경제중심지로 성장 기반을 마련하고 국제경쟁력 확보를 위한 국제업무단지 조성

- 국제물류 거점항으로 육성하고 아시아 중심 거점항으로 성장하기 위한 신항만 물류단지

- 미래형 첨단과학연구단지 조성

- 자유로운 경제활동이 이루어질 수 있는 첨단산업단지 조성

 

보다시피 앞으로 감당해야 할 사업 규모는 실로 어마어마했다.

계획대로라면 새만금은 4차산업혁명에 걸맞은 최첨단 도시로 탈바꿈한다.

명실공히 4차산업시대의 메카로 거듭나는 것이다.

새만금 33센터 전망대에 올라 드넓은 방조제와 간척지를 바라보며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들었다.

저렇게 힘들게 대 토목공사를 한 뒤끝은 어땠을까?

과연 이익이었을까? 손해 보는 장사를 한 것일까?

공사가 다 끝난 뒷마당에 왈가왈부할 일은 아니지만, 손익이 궁금했다.

물론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달리 생각하겠지만,

자연과 환경측면에서 봤을 때와 국가경쟁력 차원에서 시시각각 변화하는

미래과학기술측면에서 봤을 땐 시각차가 분명히 다를 것이다.

 

개인적으로 난, 토목을 전공했고 그와 관련된 분야를 지도하는 입장에서

나쁘지 않다는 결론을 내린다.

지금 세상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국가경쟁력에서 밀리면 우리 경제는 미래를 보장할 수 없다.

자연을 파괴하는 건 싫지만 먼 아니 가까운 미래에 다가올 미래산업사회에

가진 것 없는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보다 먼저 한 걸음 앞서 나가야 한다.

우리가 가진 것이 무엇이 있단 말인가?

교육, 정치, 문화, 의식 선진화 등 이 모든 부분은

작금에 이르러 모두 한 번 되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우리가 가진 것은 사람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두뇌가 곧 국력인 것이다.

그런 맥락으로 비추어 보면 새만금방조제는 국가기간산업으로 충분히 자릴 잡았다.

기왕 환경을 파괴하면서까지 산업의 향방을 뒤바꿔 놓았으니,

계획대로 잘 추진해 국제적인 위상을 드높이고 나라와 국민한테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해 주었으면 좋겠다.

 

새만금과 고군산군도를 탐방한 후 우리 연수생들은 내소사로 갔다.

아내랑 능가산 산행을 하면서 내소사를 지척에 두고도 가보지 못했다.

아내랑 산행했을 땐 전나무 숲길이 채 끝나기 전 왼쪽으로 올라

능가산을 한 바퀴 돌아 마을로 거슬러 내려와 매표소가 있는 주차장으로 왔기에

시간적인 여유가 없어 내소사를 코앞에 두고 그냥 떠나야했다.

 

내소사 역시 해설사를 통해 많은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면서 보니 절이 확실히 달라보였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내용을 알고 보니 사물을 보는 관점 자체가 달랐다.

설명을 들으며 내소사를 바라봤을 때 눈에 가장 먼저 띈 것은

대웅보전을 비롯한 전각의 색바랜 단청이었다.

내부는 들여다보지 않아 뭐라 말을 못하겠고,

겉에서 본 외부 단청은 박락(剝落)이 아주 심했던 것이다.

내 보기에는 색바랜 단청의 모습이 누추하게 보이기는커녕

천년고찰 분위기를 간직한 것 같아 이 모습이 오히려 정감이 간다.

 

지금까지는 내소사 주지 스님의 고풍스런 멋과 어우러져 단청을 입히지 않았다지만,

이젠 색이 바래질 대로 바래져 도저히 그냥 둘 수 없게 된 상황까지 온 것 같다.

오늘 보니 사찰 주변으로 비계를 설치하여 단청을 입히기 위한 작업 준비를 모두 갖추고 있었다.

주지 스님도 이젠 도저히 어쩔 수 없었나 보다.

 

해설하시는 분이 대웅보전의 현판 글씨를 자세히 보라고 했다.

잘은 모르지만 서체가 날렵하고 흔히 사찰에서 보던 서체와는 뭔가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 대웅보전의 대()자는 마치 사람이 뛰어가는 모습 같지 않느냐기에

자세히 보니 정말 그랬다.

이 현판에 쓰인 글씨는 동국진체(東國眞體)라는 서체이며,

조선 숙종 때의 학자 원교 이광사가 썼다고 전한다.

전라남도 해남군 대흥사에 있는 대웅보전도 원교가 썼다고 한다.

내소사와 대흥사 현판의 서체는 달랐지만, 이는 모두 원교의 글이라고 한다.

추사 김정희가 유배를 가면서 평소 친분이 두터웠던 초의선사를 만나기 위해

대흥사를 들렀는데 원교가 쓴 대웅보전의 현판을 보더니 당장 그 현판을 내리고

자기가 쓴 현판으로 교체하라고 했다는 일설은 꽤 유명한 얘기다.

 

원교의 동국진체에 대해 궁금증이 생겨 조사해 보니

동국진체란 동국, 해동, 대동이란 우리나라를 일컫는 말로

진짜 우리나라 글씨란 의미로 풀이할 수 있다.

중국에도 없는 우리나라만의 특별한 서체라는 얘기일 것이다.

 

대웅보전의 꽃 문살은 우리나라 사찰 중 그 아름다움이 가장 잘 나타나 있으며,

문살의 섬세함과 정교함은 최고 수준으로 인정받고 있다.

꽃살도 나뭇결이 도톰하게 살이 오른 것 같아 더욱 아름답게 여겨진다고 한다.

무심코 드나들면 창호에 새겨진 문양의 아름다움을 어찌 알 수 있겠는가?

대부분 그저 스쳐지나가기만 할 것이다.

전문 해설사와 함께하면 이래서 좋다.

전문가와 함께하면 무지함을 일깨워 눈을 뜬다.

 

전형적인 고려후기의 동종에 대한 설명도 그렇고

내소사의 대중 요사로 스님의 정진과 일상생활을 위한

설선당(說禪堂)에 대한 설명도 재밌다.

설선당은 보기 드문 자형 구조를 하고 있으며,

지면의 높이 차를 이용하여 건물의 일부를 2층으로 구성하였다.

설선당 뒤로 보이는 관음봉이 마치 스님들의 참선을 독려하는 부처 같아 보인다.

 

자연석을 주춧돌로 그 위에 기둥 밑면을 맞춰 정교하게 깎아 세운 자연석 위에 세워진

봉래루의 기둥을 설명하던 해설사가

무슨 건축공법인지 아시느냐고 묻기에 그렝이 공법이라고 말했더니

어떻게 아셨느냐고 혹시 건축하신 분이냐고 묻는다.

고개를 젓고 살짝 미소를 지은 채 아니라고 했다.

 

두 사람 사진을 찍어 주고 사찰 풍경 사진도 찍으며 시간을 지체하다 보니

일행들이 앞서 내려갔는지 안 보인다.

꾸물거렸지만 해우소에 들리고 가야겠다 싶어 내려가는데,

아니 이게 뭔 조화인지 분명 벚나무는 벚나문데 꽃이 활짝 피어 있는 것이 아닌가.

겨울에 벚꽃이라니 순간 의아심이 발동했다.

가까이서 살폈다. 그런데 분명 벚나무가 맞기는 맞다.

 

한데 꽃이 좀 이상하다. 꽃잎이 홑꽃이 아닌 겹꽃이다.

봄에 흔히 만날 수 있는 왕벚나무와도 다르다.

진해 왕벚나무는 꽃잎이 보통 5장인데 이 나무에 핀 꽃잎은 그보다 훨씬 많다.

알아보니 내소사의 벚꽃은 봄과 가을에 두 번 꽃 피는

춘추화라 불리는 꽃이었으며

10월에 꽃이 핀다고 해서 우리말로는 시월벚나무로 부르기도 한단다.

꽃은 봄에 70% , 가을에 30% 쯤 피어난다.

 

우리가 흔히 보는 벚꽃은 꽃을 볼 수 있는 기간이 봄에 15일 정도에 불과하지만,

춘추화라 불리는 이 벚꽃은 가을에 낙엽지고도 석 달가량 계속 핀다고 한다.

춘추화가 정명이 맞는지 국생종을 찾아보니 검색이 되지 않는다.

다른 이름을 갖고 있는지 아직 등재되지 않았는지 그것은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동절기에 만개한 벚꽃을 봐 생뚱맞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내소사에 와 겨울에 벚꽃에 취하는 경험을 다 해 본다.

 

4일차

 

변산반도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이 채석강일 게다.

변산반도의 대명사인 만큼 아무리 시간이 부족해도 보통 채석강 정도는 둘러보고 간다.

마치 채석강에 다녀오면 변산에 온 목적을 다 달성한 것처럼 여기는 것이다.

이번에 우리는 여러 번 다녀갔던 채석강을 위시해 변산반도를 낱낱이 탐방하는 기회를 맛본다.

게다가 부안군 일대를 한 바퀴 돌아보는 여유를 덤으로 얻기까지 한다.

 

오늘은 난생 처음 적벽강으로 갔다.

적벽강은 변산면 격포리의 해안 절벽 일대를 총칭하는 지명으로

후박나무군락(천연기념물 제123)이 자생하는 해안으로부터

수성당(水城堂)이 있는 용두산(龍頭山)을 돌아 대마골여울굴을 감도는

층암절벽과 암반으로 이어진 2km 정도의 지역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적벽강이란 생뚱맞은 이름을 가지게 된 연유는 알고 보면 단순하기 이를 데 없다.

이 지역이 당()나라의 시인 소동파(蘇東坡)가 놀았다는 중국의 적벽강과 흡사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채석강이란 이름은 어디서 왔을까?

다들 그건 잘 알고 있으리라 여긴다.

채석강도 당나라 시인 이태백이 술을 마시며 놀았다는 중국의

채석강과 흡사하다고 하여 그리 불리게 되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난, 이 이름들이 마음에 안 든다.

우리 변산의 특징과 이 지역에 맞는 지질 구조의 특성을 들어 이름을 지었으면

더 낫지 않았겠나란 생각이 든다.

어쨌든 수 만권의 책을 가지런히 올려놓은 듯한 층리 구조와 빼어난 자연미가 압권인 적벽강은,

채석강과 더불어 우리나라 지질학의 양대 교두보로 삼는 곳이다.

 

채석강은 관광객이 흔한 반면 의외로 적벽강엔 인적이 드물었다.

채석강에서 20분 정도, 숙소에서 10분 정도면 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였지만

적벽강 쪽은 생각보다 관광객의 발걸음이 한산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적벽강 보다는 주로 채석강쪽으로 상권이 형성되었으니

관광객의 발걸음이 채석강으로 몰리는 것은 당연할 터 굳이 이유랄 것도 없다.

 

적벽강 파식대지를 산책하듯 가볍게 거닌 후 수성당으로 갔다.

수성당은 해신(海神)을 모신 신당으로 매년 정월 초사흗날

뱃사람들의 무사고와 풍어를 기원하는 제를 지낸다.

전망 좋은 곳에 서낭당이 자리 잡고 있어 만약 여기에

당집이 자리 잡지 않았다면 분명 전망대가 섰을 것이다.

적벽강 너머 서해로 떨어지는 낙조가 여기만한 곳이 또 있을까 싶다.

오늘은 적벽강 위로 초겨울 바람이 부는지라 다소 스산한 기운이 감돈다.

한산한 분위기에 신당이란 선입관까지 겹쳐 그런지 괜히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수성당 아래 녹나무과에 속하는 후박나무 군락지가 있다.

천연기념물 제123호로 나무의 높이는 4m 정도이고,

200여 미터 거리에 10여 그루가 밀집되어 있다.

주로 남쪽에서 자라는 이 나무는 육지에서는 여기가 북쪽 한계선이 되는 곳이라

그 가치가 더욱 인정되고, 후박나무치고는 엄청난 거목인지라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남쪽 지방에서 많이 본 나무지만, 후박나무가 이렇게 거목으로 자란 것은 난생 처음 본다.

거센 바닷바람을 맞으며 굳건하게 자란 후박나무를 보며,

어떻게 저리도 튼튼하게 자랐는지 그저 고맙고 감사할 따름이다.

, 사실 적벽강도 좋았지만 후박나무 군락이 더 보고 싶었다.

 

변산마실길 중 3코스인 적벽강노을길을 따라 걸었다.

해안 코스를 따라 계속 걷자니 끝없이 길이 이어진다.

무작정 걷자니 답이 안 나온다. 마침 장 부장이 돌아가잔다.

그렇지 않아도 돌아가야 될 것 같았다.

좀 더 걷고 싶은 아쉬움이 남았지만, 오후에 차를 이용해

걷다만 이 길을 따라 부안군을 한 바퀴 돌아볼 심산이다.

 

점심 먹고 다시 적벽강을 지나 변산마실길 중 한 코스인 노을길로 왔다.

주차장이 마련된 곳에 차를 세우고 꾸역꾸역 노을길을 찾아 해안으로 걸어갔다.

길이 있을까 하면서 들어갔는데 예상과는 달리 해안선을 따라 좁은 길이 길게 죽 이어져 있었다.

가느다란 해안선이 만든 길을 따라 10여분 정도 걸었나?

짧은 거리였지만 서해의 변산마실길에 우리의 족적을 남겨본다.

 

해안도로를 따라 계속 달린다.

하섬이 나오면 차를 세우고 하섬의 전경에 취하고,

고사포해수욕장이 나오면 아무도 없는 고즈넉한 해변 모래밭에 빠져도 본다.

우연히 솔숲이 좋아 보여 들어간 고사포야영장에선 솔숲이 좋아

다음 기회에 또 변산을 온다면 곰솔밭에서 야영 한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원광대학교 임해수련원에 가면 뭐가 있나 싶어 괜히 들려보기도 하고,

뭐 이거야 원, 세상천지를 우리 마음대로 누리고 향유한다.

자유부인인들 이처럼 유유할 수 있을까?

우리가 가고 싶은 대로 가고, 하고 싶은 대로 한다.

자유 여행은 이래서 좋다. 때로는 생각 없이 발길가는 대로 살아볼 가치가 있다.

 

변산해수욕장을 지나 변산마실길 1구간 1코스가 끝나는 지점에서

우리는 새만금교차로를 이용해 내륙으로 내달렸다.

내친 김에 부안군을 한 바퀴 돌 요량이다.

운전하는 김 교장이 고생이 많다.

그래도 이 양반 지칠 줄 모르고 생생하다. 덕분에 구경은 야무지게 한다만~

 

부안군을 돌고 돌아 줄포만갯벌생태공원을 거쳐 곰소항으로 갔다.

시간이 부족해 갯벌생태공원을 탐방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다음에 다시 올 기회가 생긴다면 가장 먼저 가야할 곳으로 남겨두자.

갈 수 없는 곳은 남겨두면 된다.

 

생태공원을 휑하니 지나 곰소염전으로 갔다.

곰소염전은 8ha 규모로 천일염 생산지로 유명할 뿐만 아니라,

근해에서 나는 싱싱한 어패류를 재료로 각종 젓갈을 생산하는 대규모 젓갈 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주말이면 젓갈 쇼핑을 겸한 관광객들로 붐비는 곳이다.

면소재지로 들어서니 곰소젓갈을 판매하는 가게가 눈에 많이 띄었다.

증도에 갔을 때 염전을 한번 봤던 터라 친근감이 더 했다.

 

곰소를 지나가노라니 방조제 양쪽으로 드넓은 갯벌이 펼쳐져 있다.

마침 서해로 넘어가는 노을이 붉게 물들기 시작한다.

차를 세우고 노을빛이 살짝 비친 갯벌을 촬영하고선

곧장 숙소 가까운 해넘이채화대를 향해 달렸다.

연수가 끝나기 전 해넘이채화대를 배경으로 꼭 사진 한 장 남기고 싶었다.

이 때를 벼르고 있었다.

 

그런데 해넘이 상황이 모호하다.

가는 도중에 해가 서해로 곧 빠져버릴 것 같기도 하고, 기가 막히게 맞을 것 같기도 했다.

어떤 곳은 노을이 붉고 어떤 곳은 시커먼 구름이 해를 막고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볼 수도 있고 못 볼 수도 있다.

채화대가 있는 곳에 당도하니 시커먼 구름이 곰소에서 올라올 때 보다 더 심하다.

해넘이 촬영은 물 건너갔다.

혹시 싶어 숙소 7층 전망대로 올라갔다.

숙소 전망대도 해넘이 보기엔 적격인지라 해넘이를 보러 온 사람들이 꽤 있었다.

모두들 아쉬움만 머금은 채 어둠이 밀려오는 빈 바다만 바라보고 있었다.

 

내일이면 끝날이다.

45일간 지겨워서 어떻게 시간을 보낼까 우려도 하였지만,

여기저기 다니다 보니 시간은 벼락같이 지나가 버렸다.

김 교장과 장 부장, 세 명이 같은 숙소를 사용하면서 재밌고 유익한 시간을 보냈다.

김 교장은 교직 생활을 통해 서로 얘기만 듣고 딱히 인연이 있었던 관계는 아니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서로 친숙한 관계로 발전했다.

성품이 원만하고 이해심이 많아 함께 생활하는데 아무런 불편함이 없었다.

특히 45일간 한 시도 가만있지 않고 싸돌아 다녔건만 전혀 내색 한 번 않는다.

미안해서 기름 값 정도 챙겨주니 그것도 받지 않는다.

도저히 그냥 있을 수 없어 거창휴게소에서 겨우 얼마하지 않는 오미자 원액인가

그거 한 병 차에 내던지듯 던져 놓았다.

장도에 고생 많았다. 다시 한 번 수고했다는 인사를 전하며 긴 글 마감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