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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류·동물

개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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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조운이 엉망진창인 하루

 

 

■ 언제 : 2021. 7. 15.(목)

■ 어디 : 개개비는 경산에서

■ 누구랑 : 혼자

 

 

오늘은 재미있는 하루였다.

좌충우돌이랄까 그 표현이 제격이다.

 

어찌어찌 어떤 새가 육추 한다는 얘길 듣고 다짜고짜 달려갔다.

작년에는 얘를 보러 대전까지 갔었다.

내 사는 곳 가까이 있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근데 소식을 준 이가 대략적인 정보만 주었지 정확한 지점을 얘기하진 않았다.

아마, 그도 여기저기 소문내기 곤란한 입장인 것 같았다.

애매모호하게 말한다.

그의 카톡 프로필 사진엔 오늘 목표로 한 이 새가 담겨있었다.

 

입장을 모르는 바 아니어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대략적인 장소나마 알았으니 찾을 수 있으리라 여기고

폭염을 마다한 채 무작정 길을 나섰다.

나는 주로 혼자 다닌다.

 

목적지에 도착하니 막막했다.

이 녀석들이 어디서 육추를 하는지 종잡을 수 없다.

신발을 벗어던져 신발 코가 어디를 향하는지

손바닥에 침을 뱉어 다른 손바닥으로 탁 친 후 침이 튀는 방향으로 가야 할지

점을 쳐야만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우선 숲이 무성한 산길로 갔다.

느낌상 반대로 가야 할 것 같은데 탐조 겸 운동삼아 감이 아닌 곳부터 더듬기 시작했다.

꼭대기까지 갔다.

갈수록 여긴 아니다란 느낌이 강하게 든다.

얘가 트는 둥지의 특성을 대략 알고 있던 터라 그 감은 정확했다.

원래 틀린감은 더 정확한 법이다.

 

운동 잘했다고 여기고 반대 방향으로 가기 위해 되돌아섰다.

분명 왔던 길로 되돌아갔는데 길은 영 엉뚱하기만 하다.

다시 내려왔던 길로 올라가 처음 왔던 길을 더듬었다.

짚어 보니 헷갈리기 좋았다.

 

중간중간 빠지는 샛길이 있었는데 무심코 올라온 터라 왔던 길이 헷갈렸다.

몇 번 왔다 갔다 했다.

제 자리로 돌아와 만보기를 들여다보니 근 만보나 되었다.

그 ~ 참! 폭염에 운동 한번 잘했다.

 

우여곡절 끝에 첫 갈림길이 있는 지점으로 다시 돌아왔다.

웬 여인이 날 물끄러미 쳐다보고 섰다.

아마 그 여인은 이 새를 찾은 부부의 부인인 것 같았다.

 

"저 양반 어떻게 여기를 알고 왔지 하는 표정이다."

새가 어딨는지 물어보려다 괜히 물어보는 사람이나

답을 해야 하는 사람의 입장을 곤란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 여긴 암암리에 고만고만한 사람들만 모여 촬영하고 있다.

소문나는 것이 싫을 것이다.

그 맘을 모르는 바 아니어 괜히 거짓말을 하게 하거나

입장을 난처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모르지? 미친척 하고 물었으면

혹시 기분 좋게 알려 주었을 지도~~~

 

처음 탐조했던 길과 반대로 갔다.

처음부터 느낌이 갔던 길이다.

공사를 하던 사람이 있어 혹시 새 찍으러 가는 사람을 봤냐고 물었더니

조금 전에 세 사람이 올라갔단다.

내가 처음 잘못 갔을 때 세 사람이 올라간 모양이다.

 

이제 찾았다는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비 오듯 쏟아지는 땀방울을 손수건으로 연신 닦아냈다.

 

사람들이 안 보인다. 이럴 땐 사람을 찾는게 급선무인데 인적도 없고 숨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자력으로 찾기 위해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녔다.

있을 만한 곳은 다 가보았는데도 야속하리 만큼 보이지 않는다.

역시 탐조 능력은 꽝이다.

 

포기하고 내려오면서 공사하던 사람과 수인사를 나누며 못 찾겠다고 했더니

방금 한 여자가 또 올라갔단다.

날 바라보던 이 새를 발견했던 여인이 올라간 모양이다.

나랑 마주치지 않은 걸 보니 올라오다가 중간에 빠진 모양인데 어디로 빠졌는지 종잡을 수 없다.

 

오늘 탐조운은 여기까지가 다다 싶어 더 이상 욕심을 내지 않았다.

여기까지 온 김에 솔부엉이 유조가 많이 자랐을 것 같아 걔들을 보러 갔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얘들도 모두 이소 했는지 둥지가 텅 비었다.

이거 오늘 탐조운이 영 엉망진창이다.

 

혹시 솔부엉이 유조가 어미랑 주변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지 샅샅이 살폈지만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인근에 있던 후투티도 이소를 하고 없다.

얘는 이미 이소 했으리라 생각했지만, 솔부엉이는 뜻밖이다.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허망한 마음으로 발길을 돌렸다.

부근 전깃줄에 후투티 한 마리가 먹이를 물고 앉았다.

혹시 아직 다른 곳에서 육추 하는 후투티가 있는가 싶어

차를 갓길에 세워 녀석을 유심히 살펴봤더니 어미가 아닌 유조였다.

이소하고 자력으로 살아가고 있는 녀석이었다.

 

가는 길에 유등지로 갔다.

혹시 물총새나 해오라기를 볼까 해서다.

안 보인다. 오늘 이래저래 영 개판이다.

 

월요일 검사했던 결과를 듣기 위해 4시 35분에 경대병원에 예약이 되어 있다.

아직 시간이 3시간이나 남았다.

시간도 죽일 겸 일전에 개개비를 찍었던 경산으로 갔다.

덤불해오라기를 봤지만 담지를 못해 그 녀석이라도 볼까 싶어서다.

 

개개비가 육추 하던 빈둥지도 보이지 않았다.

빈둥지나마 보고 싶었는데 그것마저 사라지고 없다.

이상하다. 둥지 사진을 많이도 찍었지만 희한하게도 육추가 끝나고 유조가 모두 이소하고 나면

둥지가 사라지고 없다. 누가 가져가는지 저절로 사라지는지 늘 의아하기만 하다.

 

간간히 개개비만이 친구가 되어 준다.

기대했던 덤불해오라기는 그림자도 안 보인다.

하늘엔 먹구름이 몰려오고 바람이 거세진다.

아내한테 전화하니 집 주위엔 소낙비가 퍼붓는단다.

 

여기도 곧 소나기가 쏟아질 기세다.

지금 집에 가기도 그렇고 병원에 가기도 그렇다.

예약 시간보다 좀 더 빨리 가면 안 되겠느냐고 전화를 했더니

예약 환자가 많아 예약 시간에 맞춰 오란다.

이런 제기랄~

 

비가 올 듯 말 듯했지만 갈 곳이 마땅치 않아 그냥 죽치고 있었다.

가끔 개개비가 사정거리로 날아들었다.

더문더문 날아들었지만 얘들과 함께 놀며 시간을 죽였다.

 

하늘을 나는 비행기가 보였다.

t-way 항공이었다.

내일모레면 나도 저 비행기를 타고 제주로 간다.

애꿎은 비행기를 담으며 그 기분을 오늘 기분을 대신해 미리 느껴본다.

 

비 오는 시간을 멋지게 맞추어 시동을 걸었다.

시동을 걸자 비가 쏟아졌다.

좋지 않았던 탐조운이었지만, 비마저 맞게 하진 않았다.

 

3시 50분에 병원에 도착했다.

예약 시간은 4시 35분

접수를 하니 1시간이나 기다려야 된단다.

오늘 내가 끝에서 두 번째 예약 손님이다.

내 순서는 무려 6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의사가 검사 결과는 괜찮단다.

우려했던 마음은 기우에 불과했다.

괜찮다고 하니 괜히 돈이 아까운 생각이 든다.

검사 비용이 무려 60만 원이 넘었다.

 

됐다. 괜찮다니 돈 아까울 게 없다.

마음 졸이며 사느니 괜찮다니 돈값했다.

오늘 좋지 않았던 탐조운도 일시에 날아갔다.

 

탐조하다 보면 이런 일이야 비일비재

주로 혼자 다니다 보니 난, 정보력이 많이 약하다.

그래도 난, 돈을 주고 촬영하는 세트장이나 둥지를 훼손한 촬영은 반갑지 않다.

 

촬영하다 보니 온갖 기상한 모습을 다 본다.

요즘 임자 없는 새를 가지고 돈 장사하는 사람이 눈에 많이 띈다.

그 ~ 참,

 

한 번은 이런 경우도 있다.

우리가 가장 먼저 찾아 발견하고 촬영했던 새가 소문이 나자

누군가가 자기네 둥지라며 돈을 받고 있단다.

 

참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다.

 

 

 

 

 

 

오늘은 참새도 좋은 친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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