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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길잡이

‘둘레 길’일까, ‘둘렛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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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레 길’일까, ‘둘렛길’일까

 

 

  사람들이 걷기를 즐기고 있다. 건강에 대한 생활의 가치가 높이지면서 걷기가 주목을 받는다. 사람들이 차를 타고 다니다가 조금 더 느리게 가는 자전거타기, 달리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등산을 하고 걷기를 시작했다. 사람들이 건강 걱정에 걷기를 시작했지만, 이는 거부할 수 없는 본능이다.

걷기는 인간만이 할 수 있고, 걸으면서 고차원적인 능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인간은 문명의 발달로 걷기에서 멀어졌다. 마침내 건강까지 위협받고 있다. 다행히 사람들이 건강을 위해 걷기를 시작했다. 걸으면서 자신을 살피고, 주변에 무심했던 것에 시선을 주고 있다. 천천히 걸으면서 사색의 터널을 지난다. 인생에 교훈을 얻기 위해 걷는 경우도 있다.

우리나라의 걷기 문화는 제주의 ‘올레’에서 시작했다. ‘올레’는 제주 방언으로 좁은 골목을 뜻한다. 큰길에서 집의 대문까지 이어지는 좁은 길이다. 도보 여행 코스로 각광을 받고 있는 제주 올레 길은 언론인 서명숙씨를 중심으로 개발한 것이다. 사단법인을 결성하고 지속적으로 코스를 개발했다. 주로 제주의 해안 지역을 따라 골목길, 산길, 들길, 해안 길, 오름 등을 연결하여 구성되며, 제주 주변의 작은 섬을 도는 코스도 있다. 계획적인 코스 개발과 홍보를 통해서 제주 올레 길은 관광 사업에 크게 기여했다. 그리고 전국적으로 도보 여행 열풍을 가져왔다. 그에 따라 전국 지방 자치 단체에서도 길을 걷는 관광 상품을 개발을 하고 있다. 지리산 둘레 길 남해 지겟길, 무등산 옛길, 경기 남한산성길 등이 그 예다.

런데 새로운 길 이름이 만들어지면서 어법에 어긋난 철자법이 난무하고 있다. 우선 ‘올레 길’부터 살펴보자. 이 단어는 ‘올레’와 ‘길’이 합쳐져 만들어졌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명사 ‘길’이 일부 명사 뒤에서 ‘과정, 도중, 중간’의 뜻을 나타내는 말로 쓰일 때는 앞말에 붙여 적을 수 있다. 그러나 ‘올레 길’은 그 의미가 이와는 거리가 있다. 그렇다면 ‘길’을 붙여 적기 어렵다. 현재 상태로는 ‘올레 길’로 쓰고 [올레 길]로 읽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 단어가 제주도에 있는 특정 산책로를 가리키는 고유 명사로 더욱 널리 쓰여 합성어의 자격을 얻게 된다면, 한글맞춤법의 고유 명사 띄어쓰기 규정에 따라 단위별로 붙여 쓸 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주변에서 ‘올레길’이라고 많이 쓰고 있다.

 

 그러나 ‘올레길’이라고 쓸 때는 맞춤법 점검이 필요하다. 순우리말로 된 합성어이거나 순우리말과 한자어로 된 합성어로, 앞말이 모음으로 끝나고, 뒷말인 ‘길’의 첫소리가 된소리로 난다면, ‘사이시옷 규정’(한글 맞춤법 제30항)에 따라, 사이시옷을 받치어 적는다. 이에 따라 ‘올렛길’이라고 해야 한다. 물론 이 단어가 합의되지 않은 합성어이고, 그에 따라 발음도 상정할 수 없으니 사이시옷 표기를 한다는 논리도 설득력이 약하다.

하지만, ‘갓길/고갯길/굽잇길/빗길/샛길/옛길/찻길/기찻길’에서 보듯, 명사에 뒷말 ‘길’이 오면 [낄]과 같이 된소리로 난다. 그렇다면 ‘올레길/둘레길/바래길’도 널리 쓰여 합성어의 자격을 얻게 되면 그 발음이 [올레낄/둘레낄/바래낄]로 상정될 것이다. 따라서 이는 모두 사이시옷을 표기하여 ‘올렛길, 둘렛길, 바랫길’로 표기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제주 올레 코스는 특별한 유흥 시설을 확충하거나 엄청난 관광 산업 단지를 만든 것도 아니다. 제주도 구석구석에 있는 길을 연결했다. 돈을 들여 시멘트로 포장한 것도 아니다. 넉넉한 자연의 풍광을 따라 난 작은 길을 그대로 살렸다. 그 길에 가족끼리 가볍게 등산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호황을 누리고 있다. 지역 주민들의 소득도 높아지고 있다.

제주의 성공으로 지방자치단체들은 가족 단위가 참가하는 지역 축제와 걷기 코스를 개발하고 있다. 걱정되는 것은 지자체가 대대적으로 길 정비와 홍보에 나서면서 맞춤법에 어긋난 길 이름을 양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문학을 전공하고 국어를 가르치는 선생으로서 안타깝다. ‘올레 길’이 현재 사전에 올라 있지 않지만, 언젠가 사전에 올라갈 가능성도 있다. 그때 가서 사전에 등재할 때 맞춤법 점검을 하지 말고, 지금이라도 바른 발음과 표기를 상정해야 한다. 아울러 지방 자치 단체는 길을 만들 때 이름도 제대로 만들었으면 한다. 어문 정책 기관 등에 도움을 받으면 바른 이름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교육신문 e-리포터 윤재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