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위 왜가리마을 왜가리 유조 및 육추 장면
■ 언제 : 2020. 4. 28.(화)
■ 어디로 : 군위 왜가리마을
■ 누구랑 : 혼자
마음 먹고 렌즈 하나 구입했다.
200-500mm 망원, 1.5크롭이니 750mm까지 당길 수 있다.
내 바디로 구입할 수 있는 최상의 망원이다.
꽃을 찍는다고 늘 들이대기만 하다가
새 촬영에 재미 붙이고선 렌즈가 항상 걸림돌이 되었다.
탐조 현장에 가보면 대포가 줄지어 서 있다.
300mm도 웬만큼 감당하지만 역부족이다.
대포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다.
결국 하나 장만했다.
대포는 아니지만 크롭바디에 500mm라면 대포에 버금간다.
꿈에 그리던 렌즈도 장만했고, 시험 출사를 가야겠는데 어디가 좋을까?
그렇구나. 거기가 딱 좋다.
바로 군위 왜가리 마을이다.
도착하니 3시 남짓이다.
한 번 온 적이 있다고 낯설지 않다.
지난 번에 왔을 때 봐 둔 자리에서 준대포를 들고 촬영을 시작했다.
여전히 둥지 속 유조는 고개를 잘 내밀지 않는다.
동구밖에 앉아 있는 동네 어르신 한 분이 계시기에 가볍게 목례를 하니
그 어르신 왈, 새들이 지금은 다 먹이 활동하러 가고 없단다.
마을 뒷동산에 지금도 많이 앉아 있는데
그 정도는 있는 것도 아닌 모양이다.
언제쯤 오느냐고 여쭈었더니
5~6시쯤 되어야 둥지로 돌아온단다.
좋은 정보 하나 건졌다.
옳다구나 싶어 감사합니다란 인사를 하고
이 녀석들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릴 작정을 했다.
지금 여기 남아 둥지를 바쁘게 왔다 갔다 하는 녀석들은
주로 육추를 하거나 둥지를 리모델링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시험 출사한 렌즈 기능은 흡족했다.
하기야 300으로 찍다가 500으로 상향했으니 좋을 수밖에...
6시라면 2시간 반쯤 더 기다려야 한다.
찍을 만큼 찍었기에 이 녀석들이 모두 다 돌아올 때가지 오늘 한 번 기다려보자고 작정을 했다.
다 모이면 아마 대단하지 싶다.
그 모습을 보고 싶다.
시간도 남았고 해 동네 산기슭을 거닐었다.
유난히 파란 각시붓꽃이 즐비하게 늘어졌는가 하면
싸리냉이, 제비꽃도 한창이다.
줄딸기도 평소에 보던 연분홍빛 색깔 보다 더 짙다.
딱새 같기도 하고 밀화부리 같은 녀석도 봤는데
아직 정확한 동정은 하지 못했다.
틈나는 대로 알아봐야겠다.
뜻밖에 처음 보는 녀석일 수도 있다.
동네 산 위주로 여기 저기 다니며 시간을 지체해도
이 녀석들이 귀환하자면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다.
먼저 거닐었던 반대편 산기슭으로 발길을 돌렸다.
별로 눈에 띄는 녀석이 없다.
낫을 든 할아버지 한 분이 내려오시길래 또 여쭈어 봤다.
"어르신, 새들이 언제 다 돌아오나요."
"6시쯤이면 돌아오나요?"
그렇단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마을 어르신과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 계기가 형성되었다.
할아버지는 올해 92세로 이 마을에서 가장 연장자이셨으며,
말씀도 분명하고, 말귀도 잘 알아 들으셨다.
어르신 어렸을 땐 이 동네에 황새도 많았단다.
그러면서 왜가리보다 백로가 성질이 더 못됐다며
좋은 자리는 백로가 다 차지했단다.
할아버지 덕에 마을 역사도 이 마을에 주둔한 새 이야기도 많이 줏어 들었다.
가정사도 듣고, 군대 다녀온 얘기도 들었다.
자식한테 물려준 유산 얘기를 하시면서
남자 나이 들면 열 효자 보다 악처 하나가 더 낫다란 말씀도 하신다.
국가유공자라 국가에서 주는 돈하고 기초노령연금 수령하면 100만원이 넘는 듯했다.
나이가 드니 돈 쓸데가 없다며 일찌감치 자식들한테 상속을 잘 해 준 것 같다고 했다.
돈 쓸 데라곤 약값하고 손주들 용돈 주는 것 말고는 쓸 일이 없으시댄다.
조곤조곤 말씀도 잘 하신다.
할아버지랑 얘기를 나누고나니 새들이 돌아올 시간이 임박해 오는 것 같아
인사를 드리고 촬영 대기 모드 태세로 들어갔다.
내가 봐 둔 좋은 목으로 가는데 집 주인 어른이 밖으로 나오시길래
또 가볍게 목례를 하며 인사를 했다.
난, 인사를 한 그 어른 집 대문밖에서 촬영을 하는데,
사진을 찍는답시고 외지인이 남의 집 대문밖을 기웃거리면 좋아 할 일이 아닌 것 같아
일부러 더 미안한 마음을 가지며 인사를 건넸다.
그런데 이 어른! 언짢아 하기는커녕 자기 집 옥상에서 찍으라고 권유를 한다.
오히려 의아해진 내가 되물었다.
"저기 가서 찍어도 되겠습니까?"
자기도 아침에 올라가서 찍었고, 우리 집에 사진 찍으러 많이 온다며 개의치 않는다.
이게 웬 떡인가?
지성이면 감천이랬더니 뜻밖에 횡재를 한 기분이다.
거기가 어떤 자리인가?
명당 중에 명당이 아니던가.
옥상 바로 위 참나무와 소나무 가지에 백로와 왜가리가 둥지를 틀고
가지를 문 새들이 바쁘게 날아다니고
어미는 새끼를 품고 있는 장면이 다 보이는 곳이 아닌가.
살다보니 이런 일도 다 있다.
죄송한 맘, 고마운 맘을 가지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세상에! 여기라면 굳이 500mm도 필요없다.
내가 가진 300mm로도 충분하다.
그런데 오늘은 500mm를 들었으니 이거야 말로 오늘은 도리어 내가 날개를 단 셈이었다.
둥지에서 좀처럼 보이지 않던 유조의 모습도 자주 보인다.
고개를 빼꼼 내미는 녀석과 당당하게 둥지에서 곧추 서
제대로 모습을 보여주는 녀석도 있다.
나뭇가지에 가려 안타깝긴 했지만 그래도 오늘은 땡잡은 날이다.
신이 나 마구마구 셔터를 눌러댔다.
이 녀석들은 이미 단련이 되었는지 전혀 나를 의식하지 않는다.
보통 육추 중이면 꽤나 신경이 예민하고 날카로울 텐데 그런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우리 동네 금호강가에 서식하던
백로와 왜가리와는 천양지차다.
이 녀석들에겐 여유가 보인다.
아마 마을에 둥지를 틀고 마을 사람들과 함께했기에
이미 사람에겐 익숙한 분위기다.
현장이 보여주는 육추와 유조의 모습은 있는 그대로 다 촬영했다.
그런데 와야 할 녀석들이 올 기미가 없다.
한 마리 두 마리 날아오는 것 같긴 한데
아직 올 시간이 되지 않은 것 같다.
지금이 6시쯤 되는데 요즘 해가 길어져 아무래도 해가 빠져야 돌아올 것 같다.
해가 빠지면 날이 어두워지니 촬영하기가 어려워진다.
어떻게 할까 망설이다가 곧 돌아올 것 같지도 않고
아무리 마음씨 좋은 주인이라 하지만 남의 집 옥상에서
오래 머무는 것도 결례일 것 같아 그만 내려와 버렸다.
오늘 망원렌즈를 구입하고 시험 출사 나온 길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많은 새, 희귀한 장면
넉넉한 인심을 가진 마을 사람 덕에 더 귀한 시간을 갖게 되었다.
지난 번에도 마을 사람들한테 느낀 감정이 좋았는데
오늘도 더한 느낌을 갖고 간다.
탐조도 좋았지만, 넉넉한 사람 냄새를 맡고 가 기분이 더 좋다.
왜가리와 중대백로의 육추 장면, 새끼들이 둥지에서 고개를 잘 내밀지 않고 있네요.
조가 왜가리 유조는 부리를 빼꼼 내밀었습니다.
애는 벌써 많이 많이 컸다. 곧 이소할 듯...
백로 둥지에 왜가리가 있네요. 설마 왜가리가 육추하는 건 아닐테지요.
아이고 저 애는 왜가리 유조인 것 같은데 곧 이소할 자세를 취하고 있네요. 찍고서도 에미인 줄 알았네...
새끼들이 버글버글하다. 둥지 속에 들어 앉아 보이지 않아서 그렇지...
애들은 벌써 이소했을려나... 나흘이나 지났는데...
다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