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해설가가 된 똘이장군
〇〇〇〇환경연수원 〇〇기 숲해설가 과정 〇〇용
숲해설가를 지원한 동기
퇴임 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는 일선에서 물러난 퇴임자들의 공통적인 화두일 것이다. 다들 능력에 따라 나름의 방책을 모색하겠지만, 난 진즉 숲해설가가 되기 위한 꿈을 가지고 있었다. 동기는 단순했다. 건강을 위해 십수 년간 아내와 함께 주말 산행을 하면서 산이 힘들고 지칠 때쯤, 산에서 자라는 온갖 나무와 야생화가 눈에 띄기 시작했다. 산이 버거워진 난, 그들에게 눈을 돌렸다. 풀이름 나무 이름 하나하나 알아가며 이름을 불러주니 산을 찾는 또 다른 재미가 생겼다. 힘들기만 했던 산행에 탄력이 붙었고, 그것은 곧 숲해설가로서의 첫발을 내딛는 계기 조성이 되기도 했다. 육십갑자의 갑(甲)으로 되돌아온 나이면 청춘이다. 새로 맞이한 청춘을 숲해설가의 삶으로 이어간다. 멋지지 않은가?
코로나19와 폭우랑 함께한 연수원 생활
난, 숲해설가 자격을 취득하기 위해 서슴없이 〇〇〇〇환경연수원을 택했다. 양성기관은 여러 군데 있었지만, 왠지 여기가 모래 속 쇳가루가 자석에 달라붙듯 끌렸다.
숲해설가 자격취득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우리 〇〇기 숲해설가 교육 동기생들은 코로나 동기다. 코로나 때문에 개강일도 두 달여 연기되었다. 웃자고 하는 소리지만 우린 코로나로 시작해 코로나가 한창일 때 자격연수를 마쳤다. 마스크를 쓰고 만나 마스크를 벗지도 못한 채 연수가 끝나버린 것이다. 교육생도 강사도 마스크는 신체 일부가 되었다. 더욱이 이번 여름 장마는 길기는 왜 그렇게 길고 장대 같은 비는 또 얼마나 퍼붓던지 폭우를 뚫고 고속도로를 곡예하듯 달린 날이 한두 번이 아니다. 〇〇〇〇환경연수원은 연수원으로서 최적의 환경과 조건을 갖춘 곳이었지만, 우리는 198시간을 이수해야 하는 빡빡한 교육 일정과 코로나란 괴물과 폭우를 뚫어가며 사투를 벌여야 했다.
통천문을 넘어서야 한다. 『이론 시험』
코로나와 폭우로 인해 난관을 겪기도 한 나날이었지만, 그래도 교육받는 시간은 즐겁기만 했다. 하지만 즐거움도 잠시, 자격을 취득하자면 넘어야 할 산이 있다. 마지막 관문인 통천문을 넘어서야 한다. 이론과 시연 발표 시험이 남았던 것이다. 오전에는 이론 시험 오후에는 시연 발표를 해야 한다. 지역별로 다들 열심히 스터디(study)를 한 것으로 알지만, 우리 대구팀은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우린 서로 합심하여 장소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시험 준비에 만전을 기했다. 공부할 분량이 많아 7명으로 구성된 우리 대구팀은 영역을 나누어 각자 맡은 분량만큼 소화하고 의심 가는 부분이 있으면 휴대폰으로 단체 카톡방을 만들어 자정이 넘은 시간도 아랑곳없이 서로 묻고 가르쳐주길 되풀이했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책을 구석구석 뒤지고 수업 시간에 정리한 내용도 샅샅이 살폈다. 마지막 점검을 위해선 성*경 선생님의 주선으로 수성구 모 카페의 룸 하나를 독차지해 서로 공부한 내용을 정리하고 피드백하는 시간까지 가졌다. 시험공부를 통해 재확인했지만 성선생님의 집중력과 탐구열은 정말 대단했다. 모두 열심히 했지만, 단연 군계일학이었다. 공부를 이렇게 열심히 한 적이 있었던가? 우린 자문하며 진즉 이렇게 공부했더라면 고시도 합격했겠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난, 함께 동고동락한 우리 대구팀에게 “똘이장군”이란 이명을 하사받았다. 아주 마음에 든다.
우리 대구팀은 시연 발표 준비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팔공산 꼭대기를 오르면서 야생화 탐방도 하고 막내둥이인 변*영 선생님을 필두로 시연 발표 연습하는 시간도 가졌다. 최교수님은 선약이 있어 참석이 어렵다고 하시더니만, 약속이 파기됐다며 구미에서 팔공산까지 한달음에 달려오는 열정을 보였다. 이분의 현 좌우명은 “누죽걸산”이다.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 멋진 캐치프레이즈(catchphrase)다. 화려한 이력의 소유자지만 겸허한 자세로 내려놓고 산다. 함께 공부하고 야생화 탐방하던 기억들이 아련하다. 벌써 추억의 편린으로 자리매김했나 보다.
통천문 너머 천왕봉이 목전이다.『시연 발표』
산 넘어 산이다. 이론 시험 끝나자 시연이라는 더 큰 태산이 버티고 섰다. 난, 시연 발표 소재로 새를 택했고 탐조 대상자는 중학교 자연탐구반 학생 15명을 대상으로 했다. 프로그램명은 “뭇 생명의 가치는 동등하다.” 부제는 ‘생명존중’으로 정했다. 가상의 탐조 대상자였지만, 이들을 대상으로 발표하면서 심사위원님들께 생명존중의 가치를 인식하고 깨닫는 시간을 어필(appeal)하고 싶었다. 흔히 탐조란 단순히 여가 있는 사람들만이 가진 전유물이라 생각하기 쉬운데 그건 잘못된 인식이다. 탐조란 단순한 여가 활용 시간이 아닌 지적이고 생산적인 활동이다. 특히 새들의 육추 과정을 관찰함은 인간과 생물이 공존하는 자연세계를 올바르게 인식함은 물론이요 생명의 고귀함을 터득하고 삶의 질이 향상되는 흥미롭고 가치로운 일이다.
올해 촬영한 조류 중 가장 숭고하고 경이로운 육추 장면 사진만 모아 시연 발표를 했다. 무려 A4용지에 컬러(color)로 20장이나 되는 방대한 양의 사진을 준비했다. 시간 관계상 상세한 설명은 못 했지만, 그때 감정을 되새기며 일부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
호반새(이런 사진 10장 게재. 한글 파일이 사진으로 인해 용량이 커 이 면에 옮기지 못하고 내용 중심으로 옮김.) 나머지 사진은 생략...
위 사진은 주로 5월~7월 사이 집중적으로 조명한 육추 장면 모음이다. 새들이 포란하고 육추하는 모습은 참으로 경이롭고 숭고한 장면이다. 꾀꼬리가 알을 부화하기 위해 포란하는 장면은 사람과 다를 바 없다. 새는 포란할 때 가장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 꾀꼬리의 포란 장면을 힘들게 발견하고선 나 때문에 포란에 방해되는 것 같아 촬영을 중단하고 곱게 물러나기도 했다. 촬영 욕심으로 포란에 방해가 되는 행위를 해선 안 되기 때문이다. 우연히 우포늪에서 흰눈썹황금새 육추 장면을 촬영하면서 우리나라 조류 학계의 거물인 윤무부 교수님을 만난 적이 있다. 그분은 탐조인이 갖추어야 할 기본소양을 인쇄한 유인물을 늘 지니고 다니며 함께 촬영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곤 했다. 탐조를 즐기는 사람으로서 나름대로 기본은 갖추고 있었지만, 윤무부 교수는 한 명이라도 더 계몽하기 위해서 일삼아 가르침을 주셨다. 이분은 뼈속 깊이 새가 된 사람이었다. 자연을 가까이하는 사람은 욕심이 과해선 안 된다. 어떤 생명이던 생명 앞에선 배려하고 존중하는 마음이 앞서야 한다. 사진기는 그 마음을 터득한 후 들고 다녀야 한다.
시연 발표할 때 심사위원님들께 이런 내 마음을 각인시키고 싶었다. 잘 통했는지는 모르겠다만 지나고 나니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난, 십수 년간 우리 강산을 누비고 다니며 풀도 찍고 나무도 찍고 새도 참 많이 찍었다. 내겐 이런 자연을 벗 삼아 느낀 마음을 담은 시(詩)가 한 편 있다. 자연을 벗 삼아 다니다 절로 생긴 글이다. “뭇 생명의 가치는 동등하다.” 나는 이 마음을 숲해설의 사표로 삼을 것이다.
들꽃愛
부제 : 생명존중
이름 없는 꽃이 어딨고
생명 없는 풀이 어딨으랴.
생명 있는 모든 것은 공생하느니
세상에 가치 없는 것은 없느니라.
풀
나무
새
만물의 가치는 동등하니
어느 하나 업수이 여기지 마라.
들풀 하나에도 생명이 있음을
명심할지어다.
숲해설가 교육을 받은 시간은 내 삶에서 가장 적성에 맞고 흥미로운 순간이었다. 연수라면 부지기수 받아봤지만, 이처럼 흠뻑 빠져든 적은 없다. 아마 내 적성에 잘 맞은 모양이다. 우리 〇〇기 교육생을 위해 노고를 아끼지 않은 원장님 이하 연수원 관계자 측에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그리고 여러 가지 악재에도 담임을 맡아 최선을 다하신 이〇곤 부장님의 건승을 빌고 앞으로도 승승장구하시길 기원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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