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류·동물

물수리

728x90

물수리



본 블로그를 방문하시는 분들께선
새 이름이 틀렸을 수도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언제 : 2022. 10. 6(목)
■ 어디 : 옥포연밭, 진해 매립지
■ 누구랑 : 혼자
■ 탐조 내용
진해 : 물수리, 솔개, 쇠물닭, 깝작도요, 청둥오리
옥포 : 중백로


오늘 진해까지 출사한 이유는 오롯이 이 녀석 때문이랄 수 있다.
물수리야 찍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전모를 자세하게 찍어본 적이 없어
늘 이런 장면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요즘 남대천 물수리가 핫하다 하지만 거기까지 가긴 거리가 너무 멀고
난, 이 녀석이 보고 싶을 땐 주로 형산강으로 간다.

하지만 형산강은 강폭이 넓은 데다 녀석이 나타나 봤자
허공을 맴돌다 느닷없이 강으로 돌진하기 때문에
모두들 갈망하는 갈쿠리 샷을 건지기란 하늘에 별따기고,
물고기를 낚아채면 멀리 산 너머 날아가버리기 때문에
이렇게 다소곳이 앉아 있는 모습을 건지기란 갈쿠리 샷을 건지기보다 더 어렵다.

하지만 진해는 운만 좋다면 이런 모습을 건질 수 있는 확률이 많다.
여긴 녀석의 쉼터다. 다른 곳에서 먹이 활동을 하다가 여긴 잠시 쉬러 온다.
이때를 잘 노려야 한다.

사실은 오늘 여길 방문하리란 생각은 털끝만큼도 하지 않았다.
1차 탐조지가 신통치 않았기에 어디 갈만한 곳도 없고
어디를 가야 하나 생각하던 중 부지불식 간에 여기가 떠올랐다.

더욱이 오늘은 사람들도 없을 것 같았다.
현장에 도착하니 역시 다른 사람들은 보이지 않고 나 혼자다.
기다리던 바다.

매립지 위를 올라서자 솔개 너덧 마리가 손님을 맞이한다.
감이 나쁘지 않다.
솔개와 눈인사를 나눈 후 우선 매립지를 한 바퀴 돌며 동향을 살폈다.

허공을 맴돌던 솔개가 사라지자 매립지엔 휑한 바람만 분다.
있어야 할 녀석들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물고인 길쭉한 매립지엔 변환 중인 청둥오리와 흰뺨이들만 가득하다.
이건 내가 그린 그림이 아닌데~

기다린 지 서너 시간이 흘렀나 보다.
1차 탐조지에서도 그랬고 오늘은 운이 닿지 않는 모양이라 생각하고 길 떠날 차비를 차렸다.
혹여 뜸부기가 아닐까라고 기대했던 녀석은 쇠물닭이고
이래 저래 틀렸구나란 생각만 맴돈다.

아쉬움에 마지막으로 쌍안경으로 매립지를 한 번 더 훑었다.
아니 근데 이게 뭔 일인지
지금까지 두문불출이던 물수리 한 마리가 쇠기둥 위에 다소곳이 앉아 있는 게 아닌가?
세상에 그냥 가란 법은 없는 모양이다.

차를 이용해 살금살금 다가갔다.
물 건너 있어 최대한 가까이 접근해도 거리가 멀다.
오늘은 빛이 적당해 잘만 찍으면 크롭해도 볼만할 것 같아 부지런히 찍었다.
기다림에 비하면 그래도 이게 어딘데~

거리가 멀어 크게 조심하지 않았더니 결국 녀석이 눈치를 챘다.
야속하게도 다른 곳으로 날았다.
하지만 멀리 가지 않았다.
날아간 곳이 차량으로 접근하기 더 좋은 지점이다.

촬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오롯이 녀석과 나
단 둘이 1:1 대치 상황이다.
눈치 볼 것도 없다.
차를 타고 돌아나가 녀석에게 다시 접근했다.
이번에 놓치면 내 평생에 다시 이런 기회가 없다.

나를 주시하는 녀석보다 내가 더 조심했다.
살금살금 야금야금 한 바퀴 두 바퀴 굴리며 가는 듯 정지한 듯 다가갔다.
다행히 녀석은 눈치를 못 챘는지 크게 의식하지 않는 분위기다.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임계거리 선상까지 다가가
녀석이 날아가기 전에 조심스럽게 한 컷 한 컷 찍었다. 그런 후
또 한 바퀴 굴리고 찍고
또 한 바퀴 굴린 후 찍고
이제 날아가도 된다며 좀 더 과감히 더 앞으로 다가갔다.

그래도 녀석은 요지부동이다.
큰 눈망울을 굴리며 다가오는 하얀 차를 주시하면서도 날아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무려 20~30m 전방까지 다가갔다.
그래도 날아가지 않는다.

이 녀석이 오늘 내 소원을 다 풀어준다.
마치 내 소원이 뭔지나 알기나 한 듯 실컷 찍으랍신다.
심지어 똥까지 싼다.

똥을 싸면 나를 확률이 많다.
이젠 날기를 기다렸다.
나를 향해 확 날아오면 그동안 그 누구도 찍지 못한 기막힌 장면까지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세상은 한 방에 모든 소원을 다 들어주진 않는가 보다.
녀석은 내 맘과는 달리 뒤통수를 남긴 채 휙 날아가버렸다.

아쉽다.
하지만 하나도 아쉽지 않다.
물수리를 이렇게 찍을 수 있다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다.

이 구역 지킴이 몇 분을 제외하곤
이런 사진을 건진 사람이 과연 몇 있을까?

먼길 온 보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