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남에서 본 노을 속 쇠기러기
■ 언제 : 2020. 12. 26.(토)
■ 어디로 : 주남저수지 AI로 인해 탐방로 전면 폐쇄(주변을 다니며 촬영)
■ 누구랑 : 아내랑
오늘은 작정하고 아내랑 함께 주남의 노을을 겨냥하고 왔다.
노을 속에 물든 기러기들의 향연까지 담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련만 거기까진 기대하지 않는다.
언젠가 아내랑 주남저수지 둑방에서 본 노을을 기억하고 있었기에
오늘도 그 정도는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아예 늦은 시간에 출발했다.
2시쯤 출발했나 보다.
오는 길에 동판저수지에서 기인을 만나 황조롱이도 찍었고
비록 탐방로 둑길은 폐쇄되어 올라가진 못했지만,
대신 도로변 논밭에 무리지어 있는 큰고니와 쇠기러기는 실컷찍었다.
먼길왔지만 AI땜에 오늘은 이녀석들과 어울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더 가까이 더 자세하게 찍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1시간 정도 얘들과 어울리고 재두루미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분명한 사실은 거기 가더라도 폐쇄 조치가 되어 사진을 찍을 순 없을 것이다.
주남저수지 곳곳에는 지역 주민들이 파수를 보고 있다.
바로 이전 숲친구들과 함께 왔을 때는 그나마 상황이 좋은 편이었는데
오늘은 급증하는 AI로 인해 그런지 환경지킴이 분들이 더 많이 편승되어 있었다.
이분들도 고충이 심했다.
숲친구들과 함께 왔을 때 재두루미를 촬영하면서 파수를 보는 분과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이분 말씀이 그랬다.
사법권도 부여 받지 못하고 단속을 하자니 충돌이 심하다고 고충을 털어 놓았다.
한발짝 더 가까이 다가와 찍으려고 하는 사람들과
그것을 못하게 막으려는 사람과의 다툼이니 그럴만도 했다.
어쨌거나 철새들의 서식지를 보호하려고 지역 주민들까지 동원해 노력봉사를 하고 있는 마당에
협조는 못하더라도 해를 끼치는 행위를 해서는 아니될 것이다.
오늘은 예상했던 대로 재두루미 근처도 갈 수 없었다.
파수를 보고 계시는 분께 어디서 촬영을 하면 가능한지 물었다.
저 너머 하우스 뒤로 가면 단속 지역이 아니란다.
거긴 너무 멀어 촬영이 제대로 될 것 같지 않았다.
아쉬운따나 시키는 곳으로 간다고 갔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단속 지역보다 농로 한 칸 정도 더 가까이 간 것 같다.
자가용 한 대가 머무르고 있던데 단속 차량 같아 보인다.
차 안에 사람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했다.
단속지역이라면 가라고 할 테니 가면 된다고 생각하고 일단 카메라부터 꺼내 셋팅을 했다.
망원으로 재두루미가 제법 가까이 보인다.
30분 정도 촬영하니 나름대로 수확이 있었다.
찍을 만큼 찍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사람이 있는 듯 없는 듯 보이던 차 안에서 사람이 한 명 내린다.
내게로 온다.
예감했던 대로 파수를 보는 사람이었다.
이제 그만큼 했으면 되었으니 그만 가란다.
아내와 난 미안하다며 고개를 숙이고 인사를 했다.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미안합니다."
30분 정도는 봐 주었던 모양이다. 고마웠다.
아직 해넘이가 시작되려면 시간이 좀 더 있어야 했다.
1시간쯤 더 시간을 보내야 했다.
무료하지 싶은 아내더러 어떻게 할까 물었더니 석양을 보러왔으니 보고 가자고 한다.
차를 농로 한 칸 더 뒤로 가 세웠다.
단속지역이 아닌 안전지대로 옮긴 것이다.
논밭에 쇠기러가 잔뜩 앉았다.
빛이 좋지 않아 쇠기러기 무리를 찍는 듯 마는 듯 하고 해가 질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텅빈 전깃줄에 갑자기 참새 같은 애들이 조로록 모여들기 시작했다.
참새는 아니었다.
힝둥새 같기고 하고 밭종다리 같기도 했다.
노을이 물들기 전까지 얘들과 놀았다.
노을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해넘이가 시작된 것이다.
주남저수지의 해넘이는 장관이다.
큰 저수지가 있고, 서산 너머 붉은 해가 넘어가는 모습은 가슴 벅찰 정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은 둑방에 올라서지 못했기에 그런 모습은 아니었지만
붉게 물든 노을 속으로 기러기가 날아가는 모습은 가히 가관이라 아니할 수 없다.
때 맞춰 논밭에 앉아 있던 쇠기러기들이 노을 속으로 뛰어들기 시작했다.
이런 장면까지 기대했던 것은 아닌데 오늘은 너무 황홀한 분위기를 맛본다.
이런 분위기에 놀란 아내는 연신 감탄을 자아낸다.
얼마나 보고 싶었던 장면이고
얼마나 그리고 싶었던 모습인가?
오늘 해넘이 장관의 소원풀이를 다한다.
항상 낮에 갔다가 노을이 물들기 전에 왔기에 이런 모습은 거의 본 적이 없다.
딱 한 번 노을을 봤었지만 그 때는 이 정도가 아니었다.
오늘은 사진량도 많고 멋진 장면도 많아 출사한 이래 가장 포식을 한 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좀 과장하자면 오늘 출사는 탐조 이래 가장 멋진 추억이 된 기념비적인 날이다.
찍을 만큼 찍었고 서산으로 해도 완전히 넘어가 노을빛만 어스럼히 보이길래 카메라를 접었다.
쇠기러기 무리도 웬만큼 다 날아갔다.
카메라를 완전히 접어 트렁크 안에 넣고 차 안으로 들어오니
아내가 좀 더 안찍느냐며 실컷 더 찍으란다.
찍을만큼 찍었다며 시동을 걸려고 하는데
갑자기 어디에 있었는지 쇠기러기 300~400마리가 후다닥 날아오르며 노을 속으로 달려든다.
갑자기 일어난 상황이라 삼각대를 설치할 겨를도 없이 재빨리 카메라를 꺼내 촬영하려는데
아뿔싸, 그새 이녀석들이 시야에서 사라져 버린다.
눈깜빡할 사이에 사려져 버렸다.
장관을 놓쳤다. 채 3분도 안 된 시간에 벌어진 광경이다.
괜히 아내의 핀잔만 듣는다.
실컷 더 찍으라고 했더니 말 안들었다며...
아깝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알았으니 또 오면된다.
조만간 해가 질 무렵에 다시 한 번 더 와야겠다.
그땐 AI도 좀 숙졌으면 좋겠다.
일출, 일몰 이런 사진은 많이 찍지 않아 세련되지 못했다.
다음에 올 땐 일몰 사진 촬영 방법을 더 숙지해
더 좋은 장면을 찍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