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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방

군위 인각사와 학소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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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의 고장, 군위 인각사 풍경과

학소대의 봄이 오는 소리



■ 언제 : 2017. 2. 18.(토)

■ 어디로 : 군위 인각사와 학소대

■ 누구랑 : 홀로



흔적

 

봄방학을 맞이해도 시간 여유가 별로 없다.

하기야 이 시기는 정기 인사이동이 있고, 신학년 준비도 해야 하니 늘 바쁘게 지나가는 것이 다반사다.

눈 깜박 할 새 한 주가 후다닥 지나가 버렸다.

토요일인 오늘은 어디 적당한 산이나 다녀와야 할 텐데

아침 끼니를 때우고자 엄마한테 다녀오면서 보니 바람이 꽤 찬 것이 날씨가 쌀쌀맞아

산에 갈 수 있을까란 생각이 든다.

 

아무래도 오늘은 아파트에서 시범운영하는 헬스장이나 가는 것이 나을 것 같다.

그리 작정을 하고 있는데, 문득 요즈음 산행 같은 산행을 제대로 한 적이 없어

헬스장 가는 것만으로는 괜히 성이 차지 않는다.

날씨는 차지만 그에 따른 무장을 하면 이 정도 추위쯤은 견딜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럼 됐다. 산으로 가자. 헬스장에 가는 거야 산에 가는 거랑 비교할 수 있나.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물 한 통만 챙기고 간단하게 길거리 포차에서 풀빵 이천 원어치만 사서 길을 나섰다.

 

아내가 곁에 없을 땐 난, 먼 길 홀로 가지 않는다.

혼자 먼 길 가기 그럴 땐 난 늘 그랬듯 팔공산을 주로 찾는다.

마땅히 갈 곳이 없기에 오늘은 하늘정원에서 오도암으로 내려가는 길을 가봐야겠다.

하늘정원에서 오도암으로 오르내리는 길은 길이 가팔라 아직 가보지 않고 있던 길이다.

그런데 작년에 험로인 그 길을 정비하기 위해 계단 공사를 시작했는데

아마 그 공사가 작년 12월경에 마무리된 것 같았다.

그렇다면 걷기가 훨씬 수월해 졌을 것이다.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는데 오늘이 바로 그 기회다.

 

아내의 모닝을 몰고 하늘정원으로 내달렸다.

하늘정원 입구엔 총 차량 네 대가 주차되어 있었다.

혹시 지난번처럼 뜻하지 않게 하얀 설국을 만날 수 있을지 일말의 기대감이 없지 않았지만,

오늘은 아쉽게도 그런 행운은 주어지지 않았고

찬바람만 드세게 불고 있을 뿐이었다.

초입에 있는 억새의 흐느낌만 매서운 소리를 내며 다가왔다.

게다가 주차된 차량만 몇 대 있을 뿐 인적은 간 곳 없다.

 

목적지까지 다 와서 망설인다.

하늘정원으로 가는 데크 주변의 헐벗은 고산 구릉에는 분명 야생화 한 점 구경하기 어려울 거고

매서운 바람에 흐느끼는 억새의 처량한 울음소리만 듣자니 괜스레 재미가 없어진다.

몰아치는 찬바람에 갑자기 가기 싫어져 그런지 수 없이 오르내렸던

꽃도 없는 저 길을 서글프게 왜 홀로 가야하지란 생각이 든다.

몇 걸음 걷다가 자동으로 발걸음이 멎었다.

 

여기까지 온 게 아깝다. 하지만 어쩌겠나 발걸음이 절로 멈추는 걸...

딸내미한테 카톡으로 추워서 그냥 집에 갈란다하니

딸내미가 ㅋㅋㅋ라며 아빠 귀엽다란다.

아침에 독립군 모자 덮어쓰고 나름대로 무장을 하고 가는 모습을 본 지라

아빠의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재밌게 비쳤나 보다.

그래도 예까지 와서 그냥 갈 수야 있나.

여기까지 온 김에 발품 판 값은 해야지.

 

차를 인각사로 돌렸다.

삼국유사의 얼이 새겨진 인각사도 언젠가는 가봐야 할 곳이었고

인각사 앞엔 백로가 무리지어 노니는 유명한 학소대도 있다.

군위군이 자랑하는 유명한 명소가 두 곳이니 여기만 다녀가도 발품 값은 한 셈이다.

 

 

군위군 고로면에 있는 인각사(麟角寺)는 지금 내가 있는 하늘정원에서 약 37km쯤 떨어져 있었다.

내비게이션이 그렇게 가리켰다.

인각사에(麟角寺) 당도하니 인각사는 뒤쪽으로 화산(華山)이 있고,

맞은편 쪽에는 군위호와 연결된 위천(渭川)이 잔잔하게 흐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위천을 막고 선 학소대라는 병풍바위가 멋들어지게 자리 잡고 있었다.

학소대(鶴巢臺)는 예전에 학들이 둥지를 틀고 서식했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혹시 이름값을 하는가 싶어 백로라도 볼 수 있기를 기대했지만,

백로는 그림자커녕 왜가리 한 마리 보이지 않고

파란하늘 위로 독수리인지 매 같아 보이는 맹금류 한 마리가 자유롭게 떠돌고 있다.

 

인각사는 찬찬히 둘러보기로 하고 먼저 도로 건너편에 있는 학소대로 갔다.

병풍처럼 드리워진 학소대 아래 수정같이 맑은 물이 위천을 따라 흘러간다.

위천 주변엔 흐드러진 갈대숲이 바람에 나부끼고

버들강아지라 불리는 갯버들이 애기 솜털 같은 부드러움을 머금고 흩날리고 있다.

보송보송한 겨울눈의 하얀 솜털이 마치 복슬강아지와 같이 귀엽다고 하여 버들강아지라고 부른 갯버들이

하얀 솜털을 벗고 노랗고 빠알간 암술과 수술을 드러낸 모습은

가히 한 여름에 피어나는 온갖 형형색색의 야생화와 견줄 바가 아니다.

봄꽃 보다 먼저 볼 수 있어 더 귀하고 야릇한 감흥까지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물이 맑아 그런지 위천을 따라 자란 버들강아지가 유난히 더 깨끗하고 색감마저 곱디 곱다.

 

한 무리의 버들강아지에 취해 위천을 따라 더 위로 올라갔다.

바람이 병풍바위를 넘지 못해 위천을 따라 아래로 분다.

덮어 쓴 모자가 자꾸 벗겨진다.

벗겨지면 또 덮어 쓰고 하다가 황량한 갈대가 스산하여 그만 인각사로 발길을 돌린다.

 

인각사는 생각한대로 찬찬히 둘러봤다.

이왕 인각사에 왔으니 삼국유사에 대해 공부나 좀 해 보자 싶어 유심히 살폈다.

군위 인근을 지나노라면 군위가 삼국유사의 고장이라고 곳곳에 홍보를 한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군위군이 삼국유사의 고장이라고 그토록 내세우는 이유는 단연 승 일연과 관련 있는 인각사 때문일 것이다.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오늘 그 이유를 확실히 알았다.

 

먼저 인각사의 유래를 살펴보니 맞은편 아찔한 벼랑에 기린이 뿔을 걸었다는 동국여지승람의 기록과

명부전 뒤로 뻗은 화산(華山) 자락이 기린의 뿔 형상을 하고 있어 인각사라고 불렀다는

두 가지의 전설이 전해진다고 한다.

 

더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어 불교중앙박물관에서 인각사에 대해 고찰한 내용을 살펴보니

삼국유사는 고려 13세기 고승 일연스님이 찬술한 최고의 고전 역사서이며,

나라의 위태로운 위기와 혼란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치던 고려 충렬왕 때,

민족의 자긍심과 자존감을 되찾기 위한 방편으로 삼국유사를 집필하였다고 한다.

 

삼국유사는 스님이 살아온 길에서 수집한 수많은 실사(實査)

문헌자료를 통해 새롭게 탄생되었으며, 그 결실은 인각사에서 완성되었다고 한다.

더욱이 김부식이 지은 삼국사기는 정사였고 승 일연이 지은 삼국유사는

승려의 눈으로 보고 경험한 야사인 만큼 유일무이한 가치를 부여하고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니 군위군이 왜 그렇게 야단스러울 정도로 삼국유사의 고장이라고 내세우지 아니하겠는가.

삼국유사의 탄생이 군위 인각사에서 이루어졌으니

과연 군위군은 삼국유사의 본 고장이라 해도 무방하다.

 

일연 스님의 모습은 마치 우보호시(牛步虎視)와 같다고 했다.

걸음은 소처럼 여유롭기 그지없고 눈은 범의 눈초리를 바라보는 것과 다름없다고 했다.

스님이 아홉 살 되던 해 어머니는 경북 경산에 머물며

자식은 멀고 먼 전남 광주 무량사로 출가 시키고

아흔여섯의 나이가 되도록 아들만을 그리며 살았다고 한다.

그 마음이 얼마나 간절했던지 일흔여덟 늙은 아들 일연은

고려 충렬왕이 내린 국존 지위도 사양하고 군위 인각사가 있는 화산으로 내려와

극진히 어머니를 봉양한다.

 

이는 흔히 출가를 함과 동시에 속세와의 인연을 모두 끊어 버린 출가승과 달리

승 일연은 효와 선(孝善)의 의미를 달리 해석하지 않은 것이다.

효와 불교적 선행을 둘로 나누지 않고,

효와 부처의 가르침이 둘이 아님을 보여 준 대목이다.

그것은 곧 승속을 떠나 효와 수행이 다르지 않다는 마음으로 수행하는 것이

곧 부처가 되는 길임을 깨우치는 길이기도 한 것이다.

 

아침에 해가 뜨면 인각사 일연선사의 승탑에 비친 햇살이 어머니의 묘소를 비추고,

어머니 묘소 또한 동쪽으로 보고 있는 스님의 탑비를 내려 보듯 감싸고 있다는

이야기가 마을에 전해 내려오고 있다.

이는 불심이 내린 효심이 사후에도 범인들의 귀감이 되고도 남음이 있는 얘기다.

이를 알고 오늘 난 또 하나의 배움을 얻어 걸린다.

효심이 곧 불심이고 그걸 깨닫는 자 곧 부처의 길에 한 발 더 다가섬을...

 

고르지 못한 하루 일정을 마감하니 어느 듯 저녁 해가 어둑하다.

배는 고프지 않았지만 어머니한테 들러 저녁밥을 담아주는 만큼 다 먹었다.

요즈음 아내가 멀리 출타하고 없어 어머니가 해 주는 밥을 먹고 지낸다.

여든여덟의 나이로 아직까지 자식을 위해 밥을 해 줄 때 가장 행복해 하시니

배가 고프지 않아도 끼니때가 되면 찾아가 군소리 없이 고봉으로 가득 담아주는

밥 한 그릇 후딱 해 치우는 것이 효도다.

 

오늘 인각사를 찾아 삼국유사를 접하고

일연스님에 대해 병아리 눈물만큼이나마 알고 나니

내 어머니와 나의 효선의 깊이도 조금이지만 가늠이 된다.

비록 일연스님과 어머니의 효선에 비하면 만 길이나 모자라겠지만

만 길 분의 일이라도 깨우침을 얻었으니 오늘 하루 인각사 잘 다녀갔다.



사진으로 보는 삼국유사의 고장 군위, 인각사와 학소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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