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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동방

고교 동기 20명과 함께한 백두산 탐방 2박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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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링링'을 타고 떠난

고교동기회갑기념 백두산 여행



 언제 : 2019. 9. 7.(토) ~ 9. 9.(월)


■ 어디로 : 연길, 백두산 북파


  ▶ 1일차(9월 7일/토) : 부산 김해공항 - 연길 - 1시간 - 도문(중조 국경지대 두만강 강변공원 두만강 관광 - 1시간

      - 용정(해란강, 일송정 차창 관광) - 용정중학교 현지 사정으로 인해 용두레우물 대체 관광) - 3시간 - 이도백하

      - 석식 후 호텔 투숙(백두산 송이 박스당 20만원 4박스 주문, 1박스 서비스 총 5박스, 소고기), 발맛사지(기본 포함) 

 

 ▶ 2일차(9월 8일/일) : 호텔 조식 후 - 30분 - 북파 산문으로 이동 - 백두산 북파로 이동 후 장백폭포, 장백폭포 주변

      온천지대 관광, 백두산 중국경내에서 두 번째로 높은 천문봉(짚차 왕복), 천지 조망 등은 태풍 '링링'으로 모두 무산됨

       - 3시간 - 용정으로 이동 - 4시간 - 연길로 이동(편백나무 쇼핑몰 체험) - 1시간 30분 전신 맛사지 48,000원(선택),

      양꼬치와 소꼬치 만찬


 ▶ 3일차(9월 9일/월) : 호텔 조식 - 15분 - 진달래 광장 - 쇼핑몰 관광(두 곳) - 10분 - 연길 공항 도착 - 비행기 탑승

     - 대략 3시간 40분 쯤 비행 - 부산 김해공항 도착 - 1시간 30분 - 동대구역환승센터 - 감자탕 먹고 해산


■ 누구랑 : 고교동기 20명


■ 비용 : 87만원(동기회 20만원 지원)


■ 포함 사항 : 37인승 전용차량, 관광지 입장료, 여행자보험, 단체비자비, 가이드 기사/팁, 발맛사지


■ 불포함 사항 : 매너팁, 기타 개인 경비



흔적

 

동기들과 함께한 23일, 백두산 기행의 화룡점정!

그것은 당연히 천지를 향해 셔터를 누르는 것이다.

그런데 그 소박한 꿈은 제13호 태풍 링링으로 인해 무산되고 말았다.

쉽지 않은 여행이었던 것만큼 아쉬움이 크다.

 

백두산 개요

 

백두산은 해발 2,750m로 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산이며 중국과 국경을 이룬다.

중앙부에는 천지가 있으며, 그 주변에는 해발고도 2,500m 이상의 회백색 봉우리

16개가 천지를 둘러싸고 있다.

이 가운데 6개 봉우리는 북한에 속하며 7개는 중국, 3개는 국경에 걸쳐 있다.

 

화산폭발에 의해서 덮인 부석(경석이라고도 함)이 회백색을 나타내며,

꼭대기는 1년 중 8개월 이상 눈에 덮여서 희게 보이기 때문에 백두산이라 부른다.

중국에서는 백두산을 창바이산[長白山]이라고 하며,

백두산의 산정이 눈이나 백색의 부석으로 4계절 희게 보여서 희다는 뜻의

'()'자를 취하여 부른 것으로 보인다.

 

천지 주변의 연평균기온은 7.3이며, 1월평균기온 24.0, 7월평균기온은 8.5이다.

월평균기온으로 보면 영상 기온은 6~9월의 4개월간 10이상으로 오르지 않고,

영하의 월평균기온은 10월에서 다음해 5월까지 8개월간 계속된다.

 

천지의 총저수량은 20t으로 그 가운데 70는 빗물이며,

나머지 30는 지하수가 솟아 오른 용천수이다.

천지에는 물고기가 없고, 식물성 플랑크톤이 5, 작은 동물과 곤충류가 4

그리고 이끼가 생장한다.

천지의 물은 중국 달문으로만 유출되어 장백(창바이) 폭포에서 얼다오바이허를 흘러

쑹화 강[松花江]을 이룬다.

압록강과 두만강으로는 지하수로서 유출될 뿐이다.

 

백두산의 최대자원은 적송·잎갈나무·가문비나무·자작나무 등의 삼림으로,

이들 목재는 철도와 압록강 및 두만강의 뗏목에 의해서 길주·만포·무산의 제재소로 운반된다.

기타 자원으로는 건축용의 골재와 단열재로 이용 가능한 부석,

천연수로 이용되는 천지의 물, 약초와 산나물 등을 들 수 있다.

 

풍수지리에서는 지세를 사람의 몸에 비유하여 이해하기도 하는데

백두산을 ''()가 결집된 머리로, 낭림-태백-소백 산맥을 백두산의 기가 전달되는 등뼈산맥으로서

백두대간(白頭大幹)으로 인식했다.

 

본 내용은 <daum> 백과에서 내용 발췌하여 정리함

 

이렇게 많은 동기들이 참석한 여행은 이번이 처음인 걸로 알고 있다.

이번 여행은 회장을 맡은 학수가 회갑(回甲) 기념 여행을

백두산으로 가자는 안을 내 이루어진 여행이다.

 

여행비용은 87만원인데 동기회 기금에서 20만원 지원하고

나머지 67만원은 각자 부담하기로 했다.

추석 밑이고 23일이란 기간이 소요되어 참가자가 많지 않으리라 여겼는데,

의외로 참석 인원이 많았다.

20명이나 참석했다. 처음엔 이보다 더 많았다.

 

새벽 540, 동대구역환승센터에 모두 모였다.

서울 사는 동팔꺽정찐빵은 하루 전에 도착했다.

동팔이는 형네 집에서 꺽정이와 찐빵은 동대구역 가까운 곳에 숙소를 잡고 하루 머물렀다.

나머지 17명의 친구도 태풍 링링’으로 인해 비행기가 뜰 수 없을지도 모르는 상황인데,

단 한 명도 빠지지 않았다.

동기회에 대한 열정이 대단한 친구들이다.

 

김해공항으로 가 아침 요기를 하고, 중국발 에어부산항공에 탑승했다.

태풍 때문에 비행기가 뜰지 걱정되었지만, 그건 기우에 불과했다.

태풍 따윈 아랑곳없이 비행기는 회오리치는 태풍 위를 유유히 날았다.

 

비행기는 태풍의 영향으로 1시간 정도 더 우회했다.

비행 시간이 길어져 약간 지루함을 느낄 때쯤

갑자기 이러한 승객들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스튜어디스들의 깜짝 이벤트가 진행되었다.

국내선항공권 2매와 국제선항공권 2매를 무작위 추첨을 통해 당첨된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행사였다.

추첨은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어린아이를 지명했다.

 

스튜어디스가 22열 좌석번호를 불렀다.

22열 좌석이라면 우리 친구들이 앉은 자리다.

그렇다면 우리 친구들 중 누군가가 당첨된 것이다.

병채가 국내선에 당첨되고 성제가 국제선에  당첨되었다.

국제선에 당첨된 성제가 당첨 기념으로 아메리카노 한 잔씩 돌렸다.

국내선에 당첨된 병채는 추천한 어린아이에게 초콜릿을 선물했다.

 

당첨번호 “22”?

우리는 "22회 고교동기"

묘하다. 마치 우리 22회 동기회갑여행을 축하라도 하는 듯

행운은 우리 일행에게 다가온 듯 했다.


묘한 행운은 또 다른 우연으로 이어졌다.

우리랑 함께할 37인승 전용차량 NO도 끝자리가 "~22번"이었다.

태풍 "링링"이 줄곧 우리 여행을 시기하는 듯 하더니

행운과 우연이 태풍 링링”의 불안한 마음을 싹 가시게 한다.

갑자기 백두산 천지를 향한 서광이 비친다.

 

연길공항에 도착했다.

4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여성 가이드가 우릴 맞이했다.

당초 배정된 가이드는 다른 사람이었는데 사정상 바뀌었단다.

태어나기는 중국에서 태어나고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북한 태생이라고 소개했다.

연변어투로 우리말을 쓰서 그런지 약간은 어눌하게 들렸지만,

진심이 느껴지고 성실하게 보였다.

첫 느낌처럼 신뢰감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랬다. 

 

연길공항에서 1시간가량 이동하여 도문(圖們)에 당도했다.

도문시는 70년대의 우리나라 풍경과 비슷해 보였고,

두만강을 경계로 함경북도 남양시(온성군 남양면)와 마주하고 있었다.

연길과 용정에 맞닿아 있는 도문은 14만의 인구가 상주하고 있으며,

그 중 65%가 조선족이라고 한다.

두만강 유역에서 유일하게 북한과 철도가 연결된 곳으로

현재까지 북한과 교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중국에서는 두만강을 도문강으로 부르고 있다.

 

두만강 건너 북한 가옥이 보인다.

남경시라고 한다.

비는 계속 왔다 갔다 한다.

기분이 묘하다. 오리가 유영하지 않고, 물 위를 뛰어가도 갈 것 같은

 좁은 강폭 너머 지척이 바로 우리땅이다.

우리가 갈래도 갈 수 없는 눈물 젖은 땅인 것이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타고  흐르는 눈물이 두만강을 적신다.

 

두만강관광부두에서 뗏목 같은 유람선을 탔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린 한 발자국이라도 더 가까이 다가가

우리 땅과 우리 강물 냄새를 맡고 싶었다.

심경 같아선 남으로 남으로 계속 내려가고 싶더라만,

그럴 수 없는 현실이 처절하게 아파왔다.

세계에서 유일무이하게 분단된 국가라 시리도록 아팠다.

 

동팔이가 가지고온 블루투스 마이크가 또 한 번 빛을 발했다.

두만강에 왔는데! 비록 유람선을 탔지만 두만강을 누비는데!

가슴 저변에 스민 감성을 어찌 억누르고만 있을소냐.

우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잠자고 있던 감성을 폭발시켰다.

 

누군가 두만강을 선창하고 우린 다 함께 김정구의 눈물 젖은 두만강을 소리내어 불렀다.

두만강에서 뗏목배를 타고 눈물 젖은 두만강을 목 놓아 불렀다.

태풍 "링링"으로 혼탁해진 두만강은 우리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심하게 흘러만 간다.

 

선착장에 올라와서도 가이드가 준 명태포를 안주삼아,

가이드가 건네준 두만강 막걸리를 마시며 두만강만 노래했다.

강물은 동기들의 노래를 싣고 남으로 남으로 흐른다.

 

중조국경지대에 놓인 두만강을 관광한 후 우리는 1시간 거리에 있는 용정으로 이동했다.

해란강과 일송정은 일정에 없어 가이드가 안내하는 차장 밖을 내다보는 것으로 대신했다.

용정중학교도 현지 사정상 가지 못해 일정에 빠져 있었고,

대신 용두레우물로 대체 관광 계획이 잡혀 있었다.

연길 코스의 핵심이 다 빠진 것이다.

아쉬운 관광이 시작된 것이다.

 

용두레 우물은 가곡 <선구자>의 가사 속에 나오는 우물이다.

전 국민이 즐겨부르는 노래라 우리한테는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

중국 연변조선족자치주 용정 시내에 있고,

우물 앞에는 龍井地名起源之井泉"용정(龍井) 지명의 기원이 된 우물"이라고 쓰였다.

가곡에 나오는 해란강은 용정 도심을 가로지르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말 달리던 만주벌판은 현재 빌딩숲으로 뒤덮여 있다.

 

안타까운 사실 하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가곡 <선구자>가 친일논란에 휩싸여있다는 점이다.

우리 민족의 애환이 서린 일송정도 해란강도 용두레우물도 친일에 속절없이 무너져 내린 것이다.

일제 강점기 때 윤해영이 쓴 용정의 노래가 우리나라 여인이

말 탄 일본군을 짝사랑했다는 내용의 친일 찬가였다니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용정의 노래는 해방 후 조두남이 가사를 살짝 바꿔 선구자로 탈바꿈해

마치 말을 탄 독립군을 찬양하는 듯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했다.

용두레우물가에 휘 늘어진 버드나무만이 그 애환을 아는 듯 모르는 듯 비바람에

하릴없이 휘날리고 있다.

 

길림성 용정시에 있는 용정중학교는 윤동주 시인이 다닐 때는 대성중학교였다가

이후 용정중학교로 교명이 바뀌었다.

학교 규모는 마치 대학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으며, 조선족 학생들만 다닌다고 한다.

명실공히 조선족 아이들이 우리말과 우리역사를 배우는 민족교육의 산실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윤동주 시인이 공부했던 교실

별의 시인 윤동주의 흉상과 서시(序詩)가 새겨진 시비

그가 독립을 위해 고뇌하고, 시로서 일제에 항거한 흔적을 느끼고 싶었다만,

문제가 있어 당분간 관광을 배제하였다니 우리로선 도리 없는 노릇이다.

여기까지 와서 못 보고 간다니 안타깝기 그지 없다.

연길로 오는 기내에서의 축복과 우리랑 함께한 37인승 차량 번호 끝자리 22번의 기막힌 우연과는 달리

백두 기행에 서서히 암운이 깃드는 순간이다.

 

용두레우물가에서 3시간을 달려 1일차 숙박지가 있는 이도백하(二道白河)로 갔다.

이도백하(二道白河)는 백두산에서 발원하여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를 흐르는 하천이다.

백두산 천지가 발원지인 하천은 압록강(鴨綠江), 두만강(頭滿江), 송화강(松花江) 세 강으로 나뉜다.

그 중 두만강과 압록강은 지하에서 발원해 발원지를 직접 볼 수 없지만,

송화강의 원류인 이도백하는 이것이 가능한 하천이다.

이도백하는 백두산 천지에서 발원한 물줄기[白河] 두 개가 합류하는 곳이라는 의미에서 유래되었다.

 

이도백하가 흐르는 이도백하진(二道白河鎭)

백두산 관광의 출발지이자 경유지로서 관광기지 역할을 한다.

안도현의 서남부에 위치하며, 백두산 북파 방면 해발 500m 지점에 자리 잡은 작은 도시이다.

2010년 이후 이도백하진은 고급 호텔과 위락시설이 설치되고 도시 미관이 크게 개선되어

국내 및 해외 관광객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관광객이 몰리는 성수기(69)에는 한국관광객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다.

 

이도백하에 대한 내용은 <daum>백과에서 발췌하여 정리

 

우리 일행은 1일차 숙박지인 이도백하진으로 와 숙소로 투숙하기 전 식당으로 먼저 갔다.

식당에는 백두산 송이 5박스와 소고기가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일행 중 백두산 송이라는 가이드의 유혹을 뿌리칠 사람은 아무도 없다.  

20개 들이 1박스에 20만원 했고, 4박스를 주문하면 가이드가 1박스 더 얹어준단다.

예정에도 없던 송이 5박스에 소고기까지 더하니 1일차 저녁은 만찬이 따로 없다.

오늘은 두만강에서 분단의 아픔을 실감하고 백두산 송이로 그 아픔을 달랜다.

  

자리를 털고 일어서려는데 우리 일행이 워낙 맛있게 먹고 재밌게 노는지라,

식당에서 일하던 종업원들이 우릴 바라보며 함박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팁을 바라서도 아니고, 우리가 노는 모습이 그저 재밌어 순수하게 바라보는 표정이었다.

그 모습이 워낙 순박하고 해맑아 오히려 그들에게 동화되어 버린 나로서는

도저히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잘했는지 못했는지 모르겠지만 종업원 6분에게 팁을 2,000원씩 주었다.

그냥 주고 싶었다. 나눠주다 보니 3만원이나 바꿔 갔던 1,000원짜리는

어디에 썼는지 기억도 없는데 만원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다섯 명 몫밖에 없어 나머지 한 사람은 옆에 있던 동팔이가 주었다.

       

거나하게 한 잔한 우리는 곧바로 숙소로 갔다.

숙소는 나름대로 마음에 들었다. 와이파이도 되었다.

호텔에 가면 와이파이가 되리라 생각하고 미루어 둔 소식들을 한 방에 해결했다.

숙소에 투숙하자 미처 샤워도 하기 전에 친구들이 들이닥쳤다.

 

동팔이랑 내가 쓰는 방이 집결지였다.

방이 얼마나 큰지 20명 중 몇 명밖에 빠지지 않았는데도 여유 공간이 남았다.

넓은 방에 각자 준비했던 소주랑 안주랑 들고 오니 졸지에 숙소가 때 아닌 만찬장으로 변했다.

 

모두 돌아가며 건배 제의를 했다. 다들 건배제의를 잘도 했다.

그 중 성제의 건배 제의가 유달리 독특하고 톡톡 튀었다.

들면 술 잔, 놓으면 빈잔

“00세 쪽쪽 0

재밌다. 나도 언젠가 한 번 써먹어야겠다.

 

&

 

첫날 온종일 왔다 갔다 하던 비가 아침에 눈을 뜨니 말짱해 졌다.

사실 눈을 뜨자마자 비가 오는지 안 오는지 그것부터 살폈다.

어제 같아선 이번 백두산 천지 구경은 어렵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니 비는 그쳤고 날씨는 맑아진 것이 아닌가.

천운이 이어주기만을 바랐다.

 

호텔 조식 후 북파산문으로 이동했다.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을 가는 날이다.

숙소에서 북파산문까지는 30분 거리에 있었다.

 

백두산으로 가는 전용차량에 탑승하자 가이드가 불안한 소식을 전한다.

백두산 천지가 전면 봉쇄되었다는 김새는 소리다.

이런 제기랄

개방해도 괜찮아 보이던데 종일 봉쇄란다.

천지를 눈앞에 두고 북파산문에서 서성거릴 수밖에 없다니 정말 어이가 없다.

 

우리 일행이 어떻게 여기까지 왔던가?

위험을 감수한 채 제13호 태풍 링링과 내내 동행한 길 아니던가.

3년간 한솥밥을 먹었던 동기생 20명이 43년 만에 뜻을 모아 힘들게 왔다.

백두산 "천지"가 그 마음을 알아 주었으면 좋으련만,

가이드가 전달하는 내용으로 봐선 이번 방문 길에 "천지"를 알현하기란 틀렸다.  

친구들은 그래도 좋은지 산문에 새겨진 長白山이름 석 자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댄다.

 

회갑을 맞이한 친구들은 어린아이처럼 마냥 즐거운 모습이다.

하나같이 희색이 만연한 표정으로 서로서로 사진을 찍어주며 백두산의 정기를 담는다.

포기가 빠른 친구들이다.

주어진 현 상황을 너무 쉽게 편하게 받아들인다.

土木한 사람들이라 너그럽고 풍요로운 마음씀이 몸에 배인 모양이다.

 

연변을 오가며 본 거리의 간판에선 간체자가 주로 쓰였더만,

북파 산문엔 번체자로 長白山이라 씌어 있다.

장백산이라! 우리한텐 백두산이지만 중국에선 장백산이다.

하지만 우린 지금부터 長白山을 장백산이라 부르지 아니하고

백두산(白頭山)으로 읽고 백두산(白頭山)으로 쓴다.

우린 백두산에 왔지 장백산을 온 건 아니니까.

 

산문에서 통제를 당하니 장백폭포(비룡폭포)

장백폭포 주변에 위치한 최고 82에 최저 37의 온천지대 관광도

백두산 중국경내에서 두 번째로 높은 천문봉 등정도

세계에서 가장 높고 수심이 깊은 칼데라호인 천지도 모두 모두 물 건너갔다.

 

혹여 산문 주변에서 어정거리다보면 통제가 풀릴까 싶어

시간을 죽이고 있어도 통제는 당최 풀릴 기미조차 없다.

, 단체 사진 찍고 친구들 사진 찍어주며 틈틈이 산문 주변에 핀 야생화를 살폈다.

숲은 자작나무가 주를 이루고 있었고

각시취, 분홍바늘꽃, 금불초, 노랑물봉선 정도 볼 수 있었다.

원예용으로 심어 놓은 아스타와 플록스도 보였다.

 

천지 가까이 가면 야생화 철은 이미 지났어도 그래도 볼 수 있는 꽃이 많이 있을 것이다.

야생화는 서파쪽이 많은 걸로 알고 있지만, 북파에서도 많이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론 천지도 천지지만 천지 주변의 야생화를 보고 싶은 맘이 컸는데

이래저래 아쉬운 부분이 많다.

지금까지 방문한 곳에선 그나마 야생화를 볼 수 있는 곳이 산문 주변밖에 없으니

혹여 하나라도 더 볼까 싶어 부지런히 살폈다.

아무리 살펴봐도 그 놈이 그 놈이다.

 

그래도 서너 개는 건졌다.

각시취, 금불초, 분홍바늘꽃, 노랑물봉선

분홍바늘꽃은 여기서 처음 봤고 각시취는 우리나라 산에서 보던 각시취보다

키가 훨씬 크고 분홍빛이 더 강렬해 보였다.

금불초와 노랑물봉선은 우리 남쪽에서도 흔한 애들이다.

 

비룡폭포를 비롯해 천지에 딸린 탐방코스가 물거품 되다보니

갑자기 시간 여유가 많아졌다.

우린 갈 곳이 없어졌고 가이드의 마음은 부산해졌다.

하지만 가이드야 이런 경우를 한두 번 겪어 봤겠나.

이미 차선책이 서 있긴 했지만 성에 차지 않았다.

 

꿩 대신 닭이라고 우린 천지 대신 북파산문에서 멀지 않은 장백산동북호원으로 갔다.

우리 일행이 다가가자 위용 당당한 백두산 호랑이가 어슬렁거리기 시작했다.

철창 속에 갇혀 있어 안타깝기도 했지만 만약 저 놈들을 야생에서 만났다면,

순간 아찔한 생각이 든다.

순리로 생각하면 자연에서 활개를 쳐야 함이 마땅하지만,

인명을 생각하면 딱히 그렇지만도 않다.

 

돌아 나오는 길에 반달곰이 갇혀 있는 우리도 봤다.

사람을 보니 반가운지 곰이 재주를 부린다.

넉살 좋은 놈이다.

 

여기선 꽃도 좀 봤다.

비록 쓰러져 있었지만 과남풀도 보고, 참당귀도 봤다.

노랑물봉선도 보고 감자개발나물과 위용 당당한 수리취도 봤다.

  ! 고라니도 봤다.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중국에선 고라니를 보면 행운이 따른단다.

고라니를 봤고 사진기에 담기도 했으니 어쩌면 천지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고라니에게 천지의 마지막 희망을 걸어본다.

 

용호와 가이드가 의논을 하더니 북파산문으로 한 번 더 가잔다.

문득 고라니를 본 모습이 떠오른다.

이거 이러다 천지를 볼라.”

  북파산문에 도착하자마자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져 내려 앉았다.

그러면 그렇지. 지금 천지를 열어 놓을 리 만무하지.

더욱이 13호 태풍 링링은 지금 산동반도까지 왔단다.

천지는 이제 정말 물 건너간 것이다.

중국에서 백두산 관광은 안 된다면 죽었다 깨어나도 안 된다.

천지 생각은 이제 완전히 접는다.

 

장백산화산국가지질공원

협곡부석림(峡谷浮石林)으로 갔다.

개인적으로 이번 중국 여행길에서 가장 마음에 든 곳이다.

화산재가 퇴적되어 형성된 기암괴석과 오랜 세월 풍화작용으로 형성된 협곡이

어떤 인공적인 느낌도 주지 않는 자연 그대로를 품고 있었다.

굳이 인공적인 냄새가 난다면 관광객이 쉽게 이동할 수 있는 데크로드가 전부였다.

언젠가 연맹에서 아이들을 인솔해 서파로 갔을 때 본 금강대협곡과 분위기가 비슷했다.

규모는 많이 작았지만 같은 냄새가 풍겼다.

 

붉은 사당 앞에서 가이드가 기도하자 진훈이도 기도했다.

한 발짝 뒤에선 나도 함께 기도를 했다.

가이드의 말로는 소원을 잘 들어준단다.

  이제 구경할 만한 곳은 여기밖에 없으리라 생각하니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가 예사롭지 않게 보였다.

화산재가 만든 기이한 형상의 바위기둥

계곡을 흐르는 한 점 띠끌 없는 맑은 물

협곡 곳곳에 산재한 산신제를 드리는 붉은 사당

눈에 띄는 사물 하나하나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백두산 자락의 협곡이라 그런지 여기선 귀한 꽃과 나무 열매도 더러 보였다.

모양 좋은 과남풀, 금방망이, 금불초, 까마귀밥나무

유난히 노랗고 계곡 물이 흐르는 배경 좋은 곳에 자리 잡은 노랑물봉선 무리

놋젓가락나물인지 지리바꽃인지 백부자인지 헷갈리는 애

특히 새악시 뺨보다 더 빨간 꼬리달린 민둥인가목 열매가 유난히 많이 보였다.

그 외 민박쥐나물, 분취, 산사나무, 속새, 수리취, 진범 등을 봤다.

 

이만큼 봤으면 많이 본 셈이다.

천지를 못가 야생화 탐방은 틀렸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이 정도 봤으면 그나마 만족스럽다고 봐야한다.

애들마저 못 봤더라면 정말 이번 백두산 여행은 너무나 허무할 뻔 했다.

불행 중 다행이라 아니할 수 없다.

 

2일차 마지막 코스인 빙수천(氷水泉)으로 갔다.

얼음처럼 시원한 물을 직접 떠서 마실 수 있다는 빙수천(氷水泉)이다.

가이드가 페트병을 가지고 와 물을 담으란다.

사진 찍느라 뒤늦게 도착한 나도 친구들과 함께 물을 한 통 담았다.

 

샘이 솟는 가장 높은 곳에 장백산하제일천(長白山下第一泉)이란 팻말이 붙었다.

백두산 아래 첫 번째 샘이란 뜻이다.

수량이 풍족했고 물은 차가웠으며 물맛도 싱그러웠다.

천지에서 내린 첫 번째 샘인 만큼 가히 천하제일수(天下第一水)라 지칭할 만하다.

 

23일의 일정은 거의 끝나갔다.

오늘 밤은 모두 전신마사지를 받는다.

안 받기로 했다가 다시 받기로 한 마사지다.

그닥 받고 싶진 않았지만, 함께 동참하는 의미로 받았다.

 

마사지를 받는데 갑자기 옆에서 노랫가락이 흘러나온다.

동팔이가 마사지샵에 블루투스 마이크를 가지고 간 모양이다.

동팔이의 멋들어진 노랫가락이 들리는가 싶더니 이내 가냘픈 여인이 부르는 중국 노래가 흘러나온다.

맑고 청량한 노랫가락이라 아마 업소에서 동팔이의 노래에 화답이라도 하는 듯

음반을 틀어주었나 싶었다.

그런데 한 곡씩 주고받는 모양새를 보니 마사지 여인이 직접 노랠 부르는 것 같았다.

노래 솜씨가 가수 뺨치는 실력이다.

 

그 참! 술도 한 잔 마시지 않았으면서 어쩜 저렇게 능청맞게 노랠하는지,

마사지샵에서 노래하는 동팔이도 재밌고 장단 맞춰 노래하는 마사지 여인도 재밌다.

아마 마사지하면서 손님과 장단 맞춰 노래한 건 그 여인도 동팔이도 난생 처음이지 싶다.

더 재밌는 건 옆에서 마사지 받던 꺼깽이이가 스마트폰으로 녹음해 재밌다고

킥킥거리며 듣다가 우리한테도 들려준다.

참말로 재밌는 친구들이다.

이 정도면 이 친구들 천하제일한량 부럽잖다.

 

마사지 받고 식당으로 이동했다.

오늘 먹을거리는 양꼬치와 소고기꼬치다.

기본 선택에 없던 거라 모두 돈을 더 냈다.

축하한다며 가이드가 회갑기념 케익을 선물했다.

케익을 가져다놓으니 우리 분위기랑 한층 더 잘 어울리기는 했다.

 

돈을 더 내건 말건 술잔이 도니 기분은 최상이다.

백두산 천지를 못 본 아쉬움은 더 이상 간 곳 없다.

술이 있고 안주 좋고 회갑을 맞이한 친구들이 있으니 더 이상 부러울 게 없는 모양이다.

게다가 성제가 부르짖는 건배사는 첫날보다 더 맛깔 난다.

근심 걱정 없이 세상 참 긍정적으로 사는 친구들이다.

 

실컷 먹고 마시고 나서 숙소로 왔다.

동기회 여행의 마지막 밤이다.

숙소 만찬장은 전날과 마찬가지로 우리 방이다.

모두 각자 가지고 온 어제 먹다 남은 술과 안주는 우리 방으로 다 모았다.

 

주고받는 술잔 속에 동기회의 밤은 점점 깊어갔다.

밤이 깊을수록 친구들의 취기도 심상찮아졌다.

새색시처럼 조용하고 온순하기만 하던 학창시절 내 짝 병0가 참하게 술이 올랐다.

이 친구는 워낙 온순한지라 취했어도 순둥이 냄새가 물씬 풍겼다.

취한 김에 재밌자고 슬쩍 병0한테 병권을 넘겼다.

 

드디어 유순한 병0가 병권을 장악했다.

잠깐이었지만 성향대로 유순하게 잘 이끌어 갔다.

그런데 전혀 예기치 않았던 복병이 느닷없이 나타났다.

0이가 혜성 같이 나타난 것이다.

이 친구는 졸업하고 처음 만났다.

만난지 40년이 넘었지만 예나 지금이나 유순한 성격은 변함이 없었다.

온순하고 유순함에 있어선 병0랑 쌍벽을 이룬다.

 

병권은 자연스럽게 점0이한테 넘어갔다.

한동안 점0이가 병권을 잡고 흔들었다.

말이 없고 점잖기만 했던 점0이가 휘두르는 병권에 모두 박장대소를 한다.

왜 그렇지 아니하겠는가?

원래 그런 친구였다면 비호감이었을지 모르겠으나

부처 같이 어질고 점잖았던 친구라 오히려 분위기는 배가 된다.

 

0가 술이 챘는지 자기 방 호수를 모른다.

인0의 짝꿍인 시우는 자기 방으로 가 인0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는데,

정작 이 친구는 자기 방을 몰라 내 침대에서 나랑 같이 잤다.

나랑 같이 방을 찾아 나섰다가 야심한 밤에 남의 방문을 두드려

애꿎은 여행객의 잠을 깨우기도 했다.

아무래도 방 찾는 것보다 우리 방에서 함께 자는 게 나을 것

결국 인0는 나와 같이 쪼그리고 잤다.

인0도 할 말이 많았는데 병권을 잡은 병0와 점0이로 인해 말하다가 말을 다 빼앗겼다.

 

3일차 연길에서의 마지막 아침이 밝았다.

이틀 밤을 설쳤지만 아침 새벽 식사 시간은 그런대로 잘 지킨 편이다.

그런데 다른 친구들은 우리보다 더 빨랐다.

참으로 대단한 친구들이다.

잠도 설쳤을 텐데 귀신같이 시간을 지킨다.

 

모든 짐 정리를 하고 숙소를 나섰다.

이젠 갈 일만 남은 것이다.

숙소에서 공항까진 지척이었다.

가는 길에 보니 하천부지에 전통 장이 선 모습이 보인다.

우리네 전통 장과 별반 다름없어 보였다.

하기야 연길은 우리나라나 마찬가지였다.


대다수가 조선족이니 이건 뭐 여기가 한국인지 중국인지 가늠이 안 될 정도다.

진달래 광장에서 지나 가는 사람한테 단체 사진 한 장 찍어 달랬더니

"하나 둘 셋"하며 사진을 찍는다.

훈철이가 한 마디 거든다.

"야, 여기 완전 우리나라네."

 

가이드가 우리 일행을 진달래광장으로 데리고 갔다.

광장 중앙엔 스테인리스로 만든 꽃이 활짝 핀 진달래 조형물이 커다랗게 서 있었다.

트램플린이 많이 설치된 것으로 보아 동네 놀이터 같아 보였다.

가이드도 딱히 우릴 데리고 갈만한 곳이 없었나 보다.

 

싱겁긴 했지만, 그래도 우린 누구 한 사람 이의를 달거나 다른 곳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그냥 유치원 아이들 마냥 데리고 가는 대로 졸졸 따라다녔다.

할 말이 있었겠지만 모두 동기회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았을 거라 사료된다.  

 

비행기 시간에 맞춰 연길백화상점회전슈퍼 한 군데와 농산물 판매점을 들렀다.

쇼핑샵에 가도 지금까지 물건 하나 안 사고 잘 버텼는데,

마지막 코스에서 결국 참지 못하고 사고 말았다.

동팔이나 정영0 만큼은 턱도 아니지만 그래도 나도 사긴 샀다.

죽통술과 목에 대면 혈액 순환에 좋다는 거 하고 두 개 샀다.

마지막에 간 우리나라 농협 같은 농산물 판매장엔 들어가지도 않았다.

 

경토 22회 동기회갑여행은 제 13호 태풍 링링과 함께한 여행이다.

태풍으로 인해 자칫 못 갈 수도 있었는데 다행히 비행기는 떴고

우리는 무사히 연길에 도착했다.

물론 이미 갈 때부터 백두산 천지 구경은 틀렸다고 봤다만,

그래도 태풍이란 악재를 이겨냈으니 혹시 하는 기대감은 버리지 않았다.

현지에 도착하니 볼 수 있다는 확률은 더 높아졌다.

비가 오락가락 했지만 이 정도 날씨면 천지가 열렸던 열리지 않았던 개방은 할 수 있다고 봤다.

 

그런데 바램과는 달리 결국 천지는 문을 열지 않았다.

링링이 우리 일행을 끝까지 방해한 것이다.

어쩌겠나. 하늘이 굽어 살피지 않음을.

백 번 와 두 번 본다고 해 백두산이라 하지 않던가?

쓴 웃음을 해맑은 웃음으로 승화한다.

 

마지막으로 경토 22회 동기회 회갑여행을 주선한 회장님과

본 여행의 처음과 끝을 추진한 박용0 친구한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애초부터 쉽지 않은 계획이었을 터

무리 없이 잘 끝나 참으로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행사를 주관하고 추진하는 것은 참으로 조심스러운 일이다.

모두 내 맘 같지 않기 때문이다.

두 사람, 참말로 수고 많았다.

복 많이 받기 바란다.

 

동기 여러분! 덕분에 참으로 즐거웠소이다.

지금처럼 늘 건강하고

언제까지 술 먹고 싶은 대로 먹을 수 있고

가고 싶은 곳 맘껏 갈 수 있는 체력을 유지하길 바랍니다.

늘 행복하소서.




북파산문 백두산(장백산)


연길공항에 내려 가장 먼저 방문한 도문. 두만강관광 배 타는 곳 안내도


1일차 가장 먼저간 도문 두만강관광부두. 추적추적 비가 내린다. 강 너머는 이북 땅이다.


강폭이 좁은 두만강 너머 북한의 남경시가 보인다. 비가 와 시야가 뿌옇다.


두만강관광부두 앞에서 단체사진 한 장 찰칵!!!


태풍 링링으로 두만강물이 많이 혼탁하다. 노래로만 부르던 두만강가에 서니 가슴이 절로 뭉클하다.



모터 달린 뗏목배로 두만강을 유람한다. 연맹 아이들 인솔해 단동으로 갔을 땐 억수같이 내린 비로 인해 압록강이 범람했었는데, 두만강까지 가보다니 정말 감개무량하다. 배를 탄 친구들의 모습이 회갑을 맞이한 나이 같지 않다. 건강해서 더 보기 좋다.


선착장으로 올라와 가이드가 공수해준 두만강 막걸리를 마시며 용호가 한 곡 뽑는다. 노래는 당연히 두만강 푸른물~♪♬


연길은 조선족이 점유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용두레우물이 있는 곳이다.


 龍井地名起源之井泉"용정(龍井) 지명의 기원이 된 우물"이란 의미다.


또 비가 내린다. 하지만 우려했던 폭우는 없었다. 맞아도 될 만큼 비가 내렸다.


용두레 우물은 가곡 <선구자>의 가사 속에 나오는 우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가곡 선구자가 일군을 찬양하는 노래였다니 안타까운 마음 금할 수 없다.



여기서도 단체사진 한 장 찍어본다.


2일차 아침이 밝았다. 아침에 눈을 뜨니 비가 오지 않아 백두산 천지에 대한 기대감이 컸었는데, 막상 북파산문에 당도하니 백두산 천지로 가는 길은 종일 봉쇄되었단다. 아까운지고~~~ 운행하지 못하는 가지런히 정리된 셔틀버스를 보니 마음이 짠하다.


북파산문에 있는 백두산으로 입성하는 관문이다. 우린 여기서 어정거리며 백두산으로 가는 길이 열리길 학수고대했다만 결국 천지는 물 건너 갔다.


백두산 기슭에서 가장 많이 본 나무는 자작나무다. 우리나라에서 자작나무 숲으로 가장 유명한 곳은 강원도 인제 자작나무 숲이 있다. 눈이 내린 인제 자작나무 숲은 환상이다. 아직 가보진 못했지만, 언젠가 가야할 곳임은 분명하다.


북파산문에 있는 "수성산신", 성스러운 물과 신령스러운 산을 뜻한다. 우리 백두산과 천지를 뜻함이다.


아쉬움에 자작나무가 가로수처럼 늘어선 길을 하염없이 바라만 본다.


천지는 물 건너 갔고, 차선책으로 "장백산동북호원"으로 갔다. 꿩 대신 닭이라고 백두산 호랑이를 보러 갔다.


참 잘 생겼다. 백두산 호랑이는 신령스러운 영물이라 한다.


철창 사이 렌즈를 밀어 넣고 당겨본다.




멀리 곤줄박이 한 마리가 날아 다닌다. 잠시도 가만 있지 않아 겨우 요만큼 건졌다.


백수의 왕 호랑이 신세가 처량하다.


새끼는 그저 이쁘기만 하다. 그래도 호랑이 새끼다.



남녘에선 다 지고 없는 노랑물봉선은 여기선 아직 한창이다. 가장 많이 본 야생화다.


가이드가 호랑이 먹이 쇼를 위해 닭을 한 마리 샀다. 저 놈은 괜히 우리 땜에 호랑이 밥이 됐다.


이녀석이 물고 가는 것을 보니 아마 우두머리인 모양이다. 


다 떨어지고 없는 산당화도 이제 열매를 맺었다.



싱그러운 자작나무가 시원스럽게 하늘을 향해 뻗어 있다. 


반달곰 한 마리가 사람이 오니 반가워 한다.


아예 물구나무를 하고 재주를 부린다. 곰이 부리는 재주는 능청스럽다.


튼실한 곰발바닥


다음 코스는 장백산화산지질공원이다. 금강대협곡과 비슷했지만 규모면에선 많이 미약했다. 그래도 난 이번 여행길에서 가장 좋았던 곳이 여기다.




협곡부석림. 이번 여행길에서 가장 마음에 든 곳.




까마귀밥나무의 빠알간 열매 하나가 탐스럽게 달려있다. 


붉은 천을 단 신당이 곳곳에 있다.


이건 뭐야? 멧돼지인가?


화산분출물이 굳어서 된 기암





지리바꽃, 백부자, 놋젓가락나물(이름이 불분명) 그 참! 이름 쉽지 않네.


우리랑 2박 3일 함께한 가이드. 물 맛이 좋단다.




노랑물봉선


진훈이가 멋있다고 찍으라고 한 나무 그루터기에 낀 이끼


과남풀. 내가 본 야생화 중 이 녀석이 그래도 모양이 제일 좋았다.


민둥인가목. 인가목이 흔치 않은데 부석림에선 심심찮게 이 녀석들과 대면했다. 백두산 기슭에 있다는 사실은 이 녀석들로부터 실감한다.




철홍이도 오랜만에 합류했다. 아프지 말고 좋아하는 테니스 끝까지 치고 살았으면 좋겠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모습


사진 찍느라 좀 늦었더니 단체사진 찍는다고 모두 모여있다. 빨리 달려가 단체사진 또 한 컷~


부석림을 떠나며 아쉬워 담아본 정경


2일차 마지막 코스 "빙수천"





샘이 솟는 가장 높은 곳에 장백산하제일천(長白山下第一泉)이란 팻말이 붙었다. 백두산 아래 첫 번째 샘이란 뜻이다.

수량이 풍족했고 물은 차가웠으며 물맛도 싱그러웠다. 천지에서 내린 첫 번째 샘인 만큼 가히 천하제일수(天下第一水)라 칭할 만하다.



속새. 이 녀석들도 부지기 수였다. 우리나라에서 애들을 볼려면 강원도에 있는 산까지 가야 본다. 내가 이 녀석들을 처음 만난 곳이 강원도에 있는 점봉산이다.



진훈이는 뭘 빌었을까?


난, 아들 딸내미 좋은 배필 만나게 해 달라고 빌었다.


분홍바늘꽃





각시취


과남풀


금불초


노랑물봉선




도깨비엉겅퀴


까마귀밥나무


박쥐나물(민박쥐나물?)



분취


분홍바늘꽃



산사나무


속새


수리취



각시취


진범


참당귀


조뱅이(큰조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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