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두루미, 결국 내 눈앞에 떼거리로 나타났다.2
■ 언제 : 2021. 2. 27.(토)
■ 어디로 : 충남 서산시 고북면 사기리
오늘 여정 : 서산버드랜드 - 서산시 고북면 사기리/홍성군 갈산면 - 예산 황새공원 - 예당저수지
■ 누구랑 : 아내랑
흑두루미 만나러 가는 길은 만만한 여정이 아니다.
일단 얘를 보자면 순천만이나
이맘 때쯤 북상하기 위해 일시 머무르는 천수만을 가야하니
내 사는 곳에선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자주 가는 주남저수지에는 재두루미가 많이 날아든다.
그 재두루미 무리 속에 흑두루미와 캐나다두루미가 몇 마리 섞여 있다.
그러나 가까이 접근하기 어렵고 흑두루미를 발견한들 망원렌즈가 내 것보다 더 고배율이 아닌 다음에는
찾아도 제대로 된 모양 얻기란 힘든다.
어렵사리 캐나다두루미 4마리는 그런대로 만족할 만한 모습을 얻었다만
흑두루미는 전혀 만족할 만한 상황을 연출할 수 없었다.
마음 먹고 먼 길 나섰다.
아내도 함께 나섰다.
정확한 지점을 알 수 없어 막연하나마 얘들이 머무르고 있다는 천수만으로 일단 기수를 틀었다.
대충 알고 간지라 어디 있는지 자신할 수는 없었다.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고 했으니 가보면 만날 수 있겠지.
그런 기대감 하나로 얘들을 찾아 나섰다.
만에 하나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다면
여행 한 번 잘 했다고 치부하면 될 일이다.
먼저 발 닿은 곳은 간월호 쉼터공원이었다.
공원엔 차박을 하는 캠핑족과 그 앞에 나타난 바다가 다다.
내가 봐도 여긴 아니다.
혹시 싶어 차박을 하는 사람한테 물어보니 흑두루미에 대해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고민 끝에 서산버드랜드로 갔다.
거기 가면 뭔가 알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버드랜드에서 매표하는 분에게 물었다.
다행히 이 분이 철새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
버드랜드 상공을 활공하는 독수리가 보였다. 한두 마리가 아니었다.
독수리떼를 보고 이 부근에 독수리가 머무르고 있는 지점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바로 인근에 있다고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덕분에 하늘을 유유히 날고있는 독수리와 벌판에서 편히 쉬고 있는 독수리까지 쉽게 촬영할 수 있었다.
흑두루미가 있는 곳은 이 부근이 아니었다.
흑두루미를 보자면 '고북면 사기리'로 가야한다고 했다.
더 정확한 지번은 그 분도 몰랐다.
정확한 지점을 입수하지 못한 터라 다소 막연했지만, 그 정도 안 것만 해도 불행 중 다행이었다.
일단 사기리로 가보자.
사기리는 드넓은 벌판이다.
우리가 근 30km 정도를 더 지나왔던 길이다. 왔던 길로 다시 되돌아 갔다.
막상 사기리에 당도하니 허허벌판에 얘들이 어디 있을지 당최 감이 오지 않는다.
일단 여기저기 헤집고 다니며 탐조에 들어갔다.
흑두루미는 간 곳 없고 인적조차 드물어 물어볼 사람도 없다.
우여곡절 끝에 지역 농민 한 분을 만나 물어보니 흑두루미에 대한 정보는 모르고
저기 가면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있다고 해 그쪽으로 갔더니,
그 사람들은 흑두루미와는 관련이 없고 아예 텐트까지 치고 낚시를 하는 사람들이 주류였다.
혹시 흑두루미 소식을 아는 사람이 있을지 몰라 물어봐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황량한 벌판을 바라보자니 그저 막막하기만 했다.
마치 망망대해에 돛단배 한 척이 표류하고 있는 느낌마저 들었다.
이 녀석들을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찾아야 할지 그저 난감하기만 했다.
버드랜드에서 오는 길에 간월도가 보이던데 거긴가 싶어 고개를 갸웃하기도 했지만,
일단 버드랜드에 근무하고 독수리 먹이를 준 분한테 들은 확실한 정보인 만큼
그 분을 믿고 서산시 고북면 사기리 일대 벌판을 헤집고 다니기 시작했다.
찾다보니 홍성군 갈산면까지 탐조하게 되었는데 갈산면에선 일단 보이지 않았다.
사기리를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쉽게 눈에 띄지 않았지만 볼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은 버리지 않았다.
벌판을 가로지르는 찻길 먼쪽에 한 무리의 시커먼 새들이 보였다.
덩치도 있고 무리 수도 많아 당연히 독수리이겠거니 생각했지만,
혹여하는 마음으로 차를 세우고 차 안에서 망원을 당겨봤다.
그런데 큰 기대감 없이 바라봤던 얘들은 허투루 생각했던 독수리가 아니었다.
망원 너머로 바로 그렇게 찾아다닌 흑두루미가 보였던 것이다.
고진감래라더니 드디어 흑두루미를 찾은 것이다.
일단 급한 마음에 농로 가장자리에 차를 세우고 녀석들 곁으로 다가갔다.
대중없이 가다보니 갈대밭을 헤집고 가야했다.
그런 길은 익숙하지 않아 가는 걸음이 더디기만 했다.
더 좋은 길이 있더라만 조급한 마음에 들어선 길이 결코 쉽지 않은 길이었다.
바람 부는 대로 나부끼는 연약한 갈대라고만 여겼더니
막상 헤집고 나가자니 뻗뻗하기는 대나무 같고, 키는 왜 그리 큰 지 당해보고서야 갈대의 실체를 알았다.
하지만 길이 험해도 상관없다.
대구서 여기까지 길이 어디란 말인가?
쉽지 않게 발견한 터라 얘들을 본 순간 일순 횡재한 느낌마저 든다.
길이 험한 게 문제가 될 순 없다.
녀석들이 날아갈새라 억센 갈대밭 사이를 비집고 조심조심 접근했다.
고맙게도 얘들은 날아갈 생각이 없다.
게다가 갑자기 어디서 날아왔는지 5~60마리의 흑두루미가 내가 있는 곳으로 날아든다.
"이게 웬 떡인가?" 휑했던 마음에 갑자기 부자가 된 느낌마저 든다.
급한 마음에 삼각대도 들지 않고 사진기만 챙기고 간 터라
일단 손각대로 마음껏 찍고 봤다.
실컷 찍고 난 후 더 잘 찍고 싶은 마음에 삼각대를 가지러 되돌아 나섰다.
얘들이 갑자기 '휙'하고 어디 멀리 날아갈 것 같진 않았다.
찍을 만큼 찍어서 그런지 포만감이 생겨 일단은 느긋해졌다.
느긋해진 마음에 삼각대 가지러 갈 땐 자그마한 못이 있는 논두렁길을 찾아 편한 길로 나섰다.
그런데 아내가 있는 곳으로 삼각대를 가지러 가는데
건너편에 또 다른 흑두루미가 수두룩하게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내는 내가 가고 난 뒤에 걔들을 봤기에 날 부른다고 불렀지만,
황량한 벌판에 몰아치는 바람에 묻혀 내겐 전혀 들리지 않았다.
휴대폰도 차에 놓고 왔다.
삼각대를 챙긴 나는 아내가 봤던, 내가 나오면서 봤던 또 다른 흑두루미가 모여 있는 곳으로 갔다.
역시 촬영하는 사람은 나 외 아무도 없었다.
촬영 조건도 날씨도 아주 좋았다.
모든 조건이 흡족했다.
실컷 찍었다. 동영상도 찍고 사진도 찍고 싶은대로 찍었다.
먼 길 와서 못보고 가는 건 아닌가 우려하지 않은 바 아니었지만,
그건 기우에 불과했고 신나는 여정만 내 눈앞에 펼쳐졌다.
독수리 찍던 곳에서 나보다 한 발 늦게 촬영했던 차량이 다시 내가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난 이미 실컷 찍었던 터라 나보다 늦게 나타난 사람한테 자리를 양보하고 흑두루미 곁을 떠났다.
예산 황새공원이 크게 멀지 않은 곳이라 거기로 갔다.
황새공원은 지난해 왔던 곳이었지만, 다시 가고 싶었다.
그런데 여긴 조류인플루엔자로 인해 전면 폐쇄 조치되어 있었다.
주변을 다녀봤지만 황새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괜히 마눌한테 한 소리만 들었다.
여기까지 온 김에 분위기 좋은 바닷가 횟집에서 회나 한 접시 하고 가자는 걸
말도 안 듣고 황새 보고 싶어 왔다가 이도 저도 못하는 꼴이 되었다.
속으로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여기까지 왔으니 예당저수지까지 갈 참이다.
가창오리가 메뚜기떼처럼 모여 있다는 것을 인터넷 검색을 통해 봤기 때문이다.
자기 생각은 눈꼽만큼도 안 한다며 투정을 부리던 마눌도
이미 물 좋고 전망 좋은 횟집은 물건너 갔는지 순순히 따랐다.
거듭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여기까지 와서 그냥 가기란 좀 그랬다.
예당저수지는 바다 같은 곳이다.
날도 어둑해지기 시작했다.
막상 욕심이 생겨 오긴 했다만, 바다 같이 넓은 저수지에서
가창오리떼가 어디 있는지 찾는다는 건 모래밭에서 바늘 찾기 같았다.
그냥 저수지 주변 한 곳을 따라 돌았다.
황새와 가창오리는 물건너 갔다.
하지만 당초 얘들을 겨냥한 건 아니었기에 크게 아쉽진 않다.
자기 생각은 안하고 내 욕심만 부린다며 투정하는 마눌한테
다음부턴 안 따라 다닌다는 원성만 들었다.
공주휴게소에 들러 순두부 한 그릇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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