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빼미
■ 언제 : 2022. 5. 27(금)
■ 어디 : 경기도 가평, 춘천 남이섬
■ 누구랑 : 혼자
■ 탐조물 : 뻐꾸기/공작/타조/동고비/오색딱다구리/올빼미
까막딱따구리 촬영하러 갔는데
아끼다 똥 됐다.
갈까 말까 망설이다 대전에 대학 동기들 모임이 있어
이때가 기회다 싶어 불굴의 의지를 불태웠다.
자는 둥 마는 둥 2시에 눈을 뜨고 2시 반에 출발해
6시 55분 현장에 도착하긴 했는데 어째 조짐이 심상찮다.
주차하고 곧바로 촬영 포인트로 접근하면서 '까딱'이 한 마리 앉아 있는 모습을 보기까지 했지만,
이동 중에 있어 사진기를 꺼낼 상황이 아니라 애써 걔를 무시했다.
많은 진사님들이 포진하고 있고 '까딱'이 울음소리도 들려
둥지로 바로 가는 것이 나을 것 같다란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걔도 둥지로 오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둥지에 도착한 난 삼각대를 펴는데 다른 진사님들은 오히려 삼각대를 접고 있다.
삼각대를 펴는 날 보던 이가 왜 펴느냐고 한다.
세 마리 유조 중 마지막 유조까지 지금 막 이소 했단다.
오늘 아침 어미는 둥지에 접근조차 하지 않은 채
세 마리의 유조가 모두 둥지 밖으로 날아갔단다.
이런 제기럴~!
이럴 수가 있나.
허~참 이런 경우도 있구먼...
재빨리 올라오면서 본 '까딱'이라도 찍으러 내려갔더니
아뿔싸 녀석도 사라지고 없다.
허무하기도 하고 발걸음이 쉬 떨어지지 않는다.
혹시 주변에 유조가 있을지 몰라 샅샅이 살폈다.
아무리 살펴도 보이지 않는다.
소리가 들리더만 그 마저 멀어진다.
30분쯤 주변을 살피는 사이 주차한 차량들이 하나 둘 떠나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나만 남는다.
조금 있자니 나보다 더 늦게 온 차 한 대가 다가왔다.
아끼다 똥 된다더니 오늘이 그날이다.
8시쯤 되었나.
대전 모임은 오후 4시다.
시간이 많이 남았다.
남이섬까지 몇 km 되는지 봤더니 38km밖에 되지 않았다.
38km라면 내가 온 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남이섬에 갔다가 대전까지 가는 길은 아랑곳없었다.
이 작가님한테 전화가 왔다.
전후 사정을 얘기하고 남이섬에 간다고 했더니
이미 남이섬을 다녀간 주변 사람한테 물어 올빼미가 어디 있는지 소상하게 알려주었다.
녀석이 있는 곳은 선착장에서 끝 지점이었다.
오늘 운수로 봐 볼 수나 있을지 의아심이 들었지만,
기대감만은 가득찼다.
지성이면 감천이랬다.
꿩 대신 닭이라더니 다행히도 욘석이 날 반겨주었다.
닭이라 했지만 닭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이 녀석의 가치가 너무 크다.
결코 닭이 될 수 없는 녀석이다.
난 아직 소쩍새와 올빼미는 본 적도 없다.
그저 보기를 소원하고 있을뿐이다.
올빼미를 본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얘를 어디서 어떻게 본단 말인가?
욘석도 보고 '까딱'도 봤다면 금상첨화이련만
그 복은 오늘 내게 주어지지 않았다.
만약 예정대로 '까딱'이를 봤다면
올빼미는 보지 못 했을 것이다.
'까딱'이를 찍고 있었다면 모임 시간이 있어 올빼미 볼 생각을 못 하고
대전으로 향했을 것이다.
어차피 난 둘 중 하나만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둘 다 귀한 녀석이라 다 봤으면 좋았겠지만
'까딱'이를 봤다면 올빼미를 볼 수 없었을 테고
올빼미를 선 겨냥했다면 '까딱'이를 볼 수 없었을 것이다.
'까딱'이 대신 귀한 올빼미를 알현했으니 난 오늘 그로서 충분히 만족한다.
먼길 빈손으로 보내지 않아 오히려 고맙기까지 했다.
올빼미 촬영 상황도 나쁘지 않았다.
유조가 옆가지로 날아다니기도 하고 두 마리가 나란히 앉아 주기도 했다.
어미도 두 마리 다 봤다.
많은 진사님들이 여기서 촬영하고 가셨겠지만,
이런 좋은 장면을 얻고 간 분도 그리 많진 않을 거다.
충분히 보상을 받은 셈이다.
남이섬에서 대전까지도 200km가 넘었다.
오늘만 500km 넘게 운전대를 잡은 셈이다.
올빼미를 알현하고 대전으로 가는 길이 유쾌하다.
잠을 설쳤지만 졸음도 없다.
가는 길이 막혀 약속한 시간보다 1시간쯤 지났지만
친구들은 당구를 치며 날 기다리고 있었다.
한 게임 거들고 싶었지만 내가 끼어들 시간적인 여유가 없다.
자글자글 익어가는 제주 흑돼지에 절로 군침이 감돈다.
소주와 찰떡궁합이다.
꿀떡꿀떡 잘도 넘어간다.
주고받는 술잔 속에 올빼미가 아른거린다.
어미
다른 곳에 앉아 있는 또 다른 어미. 얘가 암컷인가???
여기서부턴 털북숭이 유조들 사진